갑상선 항해일지

갑상선암에 대하여

by 감자
▲ 갑상선 항해일지, (2016년작)
▲ 어린 양의 기도, (2016년작)


▲ 응 시, (2016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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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대학생활의 마지막 여름방학이 도래했다. 저마다 뜻깊은 계획을 세우고 방학을 학수고대하는 이 시점에, 나는 홀로 다른 마음가짐으로 방학을 기다린다. 다음 학기가 지나면, 더는 대학생활의 낭만을 누릴 수 없다(그래야만 하기에). 하지만, 그동안 대외활동과 학점, 아르바이트로 사상누각을 지었기에 당연히 불안감은 어쭙잖은 스펙보다 높게 쌓여있다. 허나 이마저도 잠시나마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우리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여름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대외적으로는 헬렌 켈러라 말하였지만, 속으로는 항상 '우리 엄마'를 외쳤다. 어릴 때 홍역을 앓아 녹아버린 고막, 여섯 동생을 삯바느질로 키워내느라 나빠진 시력으로 40년 가까이 안경을 끼고 계신다. 4대가 사는 집의 맏며느리였던 터라 호된 시집살이를 하면서 눈물짓는 날이 많을지언정 딸과 아들에게는 항상 부은 눈으로 미소를 지으시던 우리 엄마.


내 편이 아니라 남편이라던가. 막일로 생계를 꾸리던 남편은 다정했지만, 소주 냄새를 풍기며 돌아온 그는 그렇지 못했다. 매서운 말과 행동들이 엄마의 가슴에 비수가 되었을 터. 이런 남편일지언정 믿고 따랐고,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선고를 받은 남편을 15년 넘게 병시중하고 계시는 헤로인이시다.


영화 같은 그녀의 삶이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무비와 아주 작은 차이가 있다면, 그녀의 삶은 결단코 비극이라는 것이다.


"갑상선이 많이 부으셨네요. 수술이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유방 쪽 조직도 이상이 발견되었습니다. 검사를 해보도록 하죠."


건강검진 결과를 조심스레 말해주던 의사 선생에 철렁했을 그녀는, 몸도 마음도 약한 아들이 타지에서 알게 되면 너무 걱정할까 봐 큰딸한테만 살짝 말했단다. 결과적으로는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고, 태연한 척 전화를 끊자마자 두 눈은 연신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고는 책상 앞에 앉아서 억지로 책을 펼쳤다. 책은 눈물로 얼룩지고 펜은 허공을 휘젓지만, 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나는 엄마 인생의 등불이기에.


아빠와 함께 가족이 무너져 내린 날에는 너무 어려서 가족에게 힘이 되어줄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 컸는데도, 분명 다 자랐는데도 아직 어리고 여린, '어른이'라는 게 소름 끼치도록 싫다. 정말 하늘을 더는 용서할 수 없을지 모르기에 나쁜 생각은 최대한 안 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어대는 요즘이다.


엄마는 가지무침을 좋아하셨다. 하지만 그 이질적인 비주얼과 식감을 좋아하는 식구가 없어, 식탁에 가지가 오른 적은 열 손가락에 손꼽힌다. 항상 자신의 안위보다 동생들,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가 우선이었던 그녀의 삶에 기쁨이 있기는 할까.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희생하게 하였을까. 답을 내리지 못할 질문들은 오늘도 새벽녘을 수놓는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이번 한 번만 더 굽어살펴주시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망원동에 진짜 맛있는 가지 튀김 요릿집이 있다던데, 부디 내년 초 졸업식에 엄마 손 꼭 쥐고 맛있게, 한 조각, 한 조각 음미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엄마한테 학사모도 씌워드리고 싶고 엄마를 등에이고 사진도 찍고 싶다. 엄마의 등만 보고 걸었던 소년이, 이제 그의 너른 등에 엄마를 짊어질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좋겠다.


(2016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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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졌다.

지금 우리 엄마는 무척 건강하시다.

그땐 정말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는데,

간절했던 그 순간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사랑하는 엄마와 소중한 추억을 계속 쌓을 수 있는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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