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 꿈꾸는 중, 청춘은 힘내고
'나'에 대하여
인동초
‘나’라는 주제로 글을 시작하는 건 정말 어렵다. 오랫동안 고민하다, 예전에 썼던 메모장을 뒤적거렸다. 2016년에 나의 이십 대를 ‘인동초’라고 표현했던 게 눈에 들어왔다. ‘이거다!’ 싶어서 인동초부터 풀이해보려 한다. 인동초는 ‘겨울을 이겨내는 풀’이라는 뜻이다. 그때는 인동초의 다른 이름인 금은화처럼, 겨울을 이겨내고 꿈을 이뤄 황금빛 꽃을 피우리라 하는 열망이 가득했었다.
이십 대 초반에는 학점, 아르바이트, 대외활동까지 세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밤을 새우기 일 수였다. 수업이 없는 날은 배가 고파 어지러울 때쯤 일어났다. 아뿔싸. 즐겨 가는 패스트푸드점의 특별 할인 시간을 놓치면 하루가 고단하다. ‘열매를 맺으려면 거름을 잘 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 후다닥 준비해서 달리듯 걸어가는 발걸음은 수업에 지각할 때보다 바쁘다. 어쩌다 두시를 넘긴 날은 그냥 매장 밖으로 나와서 근처 김밥가게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구시렁구시렁. 식전 운동은 충분했다. 가장 저렴한 김밥을 한 줄 시키고, 단무지와 따뜻한 국물로 배를 채우면 한 끼가 뚝딱이다. 김밥가게에서 김밥이 한 줄에 천 원이던 때부터 먹었으니, 김밥과 함께한 역사는 나름 내 삶의 일부인 셈이다.
처음부터 김밥을 사 먹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김밥은 뭐니 뭐니 해도 엄마가 싸준 김밥이 제일 맛있다. 특히 차게 식은 김밥은 탄산음료랑 같이 먹으면 꼬들꼬들한 밥알의 식감과 탄산의 목 넘김이 너무 좋다. 이 맛을 처음 맛보게 된 계기를 표현하자니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진다. 초등학교 3학년 가을소풍을 앞두고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당했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가해자는 아빠고, 피해자는 전봇대였다. 응급수술을 진행하는 동안 가족은 아빠의 안위를 걱정했지만, 나는 당장 소풍에 가져갈 도시락을 걱정했었다. 내게는 그게 더 중요했나 보다. 새벽 내내 발을 구르다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식탁에 도시락이랑 김밥 꼬투리가 놓여있었다.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김밥이었던 그날 느꼈던 안도감과 행복감은 그 뒤로도 가슴께를 쿡쿡 찌르고는 한다.
꿈꾸는 중
꿈을 꾸는 건 공짜지만 꿈을 이루는 건 대가가 필요하다. 여태 꿈꾸는 건 차근차근 이루어왔는데, 가족의 희생과 조력이 컸다. 부모님은 본인들의 꿈을 강요한 적이 없으셨다. 언제나 묵묵히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내 욕심은 끝을 몰랐고, 스물여덟에 로스쿨에 입학하게 되었다.
로스쿨에 처음 진학해서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벌써 변호사라도 된 것처럼 마음이 들떠서 전국의 수재들이 어떻게 간절하게 공부하는지 보이지 않았다. 첫 학기 성적은 처참했고, 겨우 그들만큼 간절해졌을 때쯤 졸업이 찾아왔다.
혼자서 꾸역꾸역 시험을 준비하고 있으면서 서울에 위치한 유명한 학원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선배들과 동기들의 소식이 부러웠다. 그때부터 조바심이 나서 학원비를 모은다는 명목 하에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했다. 솔직하게 학원까지 가는 건 언감생심이다. 삶의 난이도가 갑자기 가파르게 상승한 기분이었지만 내가 선택한 일이니, 악으로 깡으로 버텨냈다.
엊그제 엄마가 식사 중에 갑자기 흙수저라 미안하다고 사과하셨다. 어디서 이런 말을 알게 되셨을까. 자식에게 이런 일로 사과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너무 마음이 아팠다. 수저를 만지작거리다가 어렵게 입을 뗐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그걸로 너무 감사하다고. 그리고 구태여 사족을 붙였는데, 굳이 따지자면 우리는 나무 수저쯤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잃을 게 없는 나무 수저는 오늘도 도전 중이다. 간절함을 더해서.
청춘은 힘내고
혼자서 힘내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궁리 끝에 최근에 전자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독하지 않은 향으로 뽀끔뽀끔 빨아서 뭉게뭉게 구름을 뽑아낸다. 한숨 섞인 구름에는 후회와 미련, 되돌리고 싶은 과거 등이 담겨 있다. 이게 뭐라고 후련해지는 걸까. 열람실 앞 흡연장에 사람이 그득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공부하느라 머리 잔뜩 굴리고 난 뒤 한 모금 담배는 마음대로 되는 유일한 낙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아빠가 담배를 태웠던 이유에 대해서도 조금씩 이해할 것 같다. 가장의 무게를 혼자서 짊어지려 했기 때문이려나. 아니면 나처럼 철이 없어서였으려나.
아빠는 애연가였다. 차에서도 방에서도 담배를 달고 살았는데, 담배 심부름도 곧잘 시키셨다. 거스름돈으로 과자를 살 수 있어서 우리 남매는 서로 심부름하러 가려고 했다.
하루는 어린이집에서 담배는 몸에 해롭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문제의 숙제를 내주셨다.
“집에 가면 담배를 피우는 부모님께 담배는 몸에 해롭다고 알려드리기로 해요!”
말을 과하게 잘 듣는 나는 집에 오자마자 쪼르르 아빠에게 달려가서 담배를 태우던 아빠를 붙잡고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아빠. 담배 피우면 죽는데요!”
그날 아빠한테 아빠 죽으란 거냐고, 실컷 혼나고 구석에 가서 손들고 있었다. 다 커서도 그때 이야기를 하면 아빠는 멋쩍게 웃으셨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그러셨나 보다.
혼자서 힘내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술 한잔 기울이는 것도 가끔은 괜찮다. 적어도 아빠와 나에게는 혼술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던 것 같다. 새벽녘 아빠가 술 냄새를 풍기며 귀가하시면 나는 자다가 일어나서 아빠랑 술을 대작해야 했다. 왜 아빠들은 술 먹고 들어오면 자녀들을 깨우는 걸까. 아빠는 또래보다 작고 말랐던 나를 본인 다리에 앉혀놓고 술을 마시길 즐겼다. 술은 본인 입에 붓고, 안주는 내 입에 넣고. 나는 그렇게 오물 쪼물 받아먹다가 낑낑대며 빠져나와서는 베개를 아빠 다리에 앉히고 쪼르르 자러 갔다. 피식. 나를 보내주던 아빠 입가에도, 아빠를 보내주는 내 입가에도 미소가 걸린다.
혼자서 힘내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꿈을 곱씹어 보는 것도 좋다. 이제 내 꿈은 모두의 건강과 행복이다. 주변에서 선배님들 변호사 합격 소식부터 또래 친구의 결혼 소식, 아기 엄마, 아빠가 된 친구의 소식이 들리면 너무나 행복하다. ‘좋아요정’이 되어 SNS상에 연신 좋아요를 누르고 축하와 건강을 기원하는 댓글을 남긴다. 방긋 웃는 사진 속 친구를 따라 행복해지는 기분이랄까. 좋은 동기부여가 된다. ‘다음은 내 차례구나. 내가 행복할 차례구나. 나도 행복해도 되겠구나. 꼭 행복해져서 행복한 이야기를 전해야지.’ 하는 열망이 생긴다. 국가대표 쫄보인 내가 지레 겁먹고 포기하고 싶다가도 정신이 번쩍 든다.
혼자서 힘내기 어려울 때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주변의 도움을 청해 보는 것도 좋다. 비슷한 길을 경험한 형, 누나들에게 조언을 구하고는 한다. 하루는 선배님 한 분께 술에 취해서 수험을 택한 날을 후회한다고,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버겁다고 말씀드렸다. 힐난이나 꾸중이 두려워 조심스럽게 꺼낸 이야기였는데, 선배님은 덤덤하게 인생 명언으로 삼을 만한 말씀을 해주셨다.
“뒤를 돌아보며 달리면 속도를 낼 수 없다. 앞만 보고 달려라.”
‘선배님도 비슷한 고민을 했었고, 그걸 딛고 앞으로 나아갔었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더 이상 공부하는 자신이 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는 나를 옭아매던 과거를 뒤로하고 다시 달려보려 한다. 목표에 도달해서 행복한 소식을 전할 때까지 주변인의 건강과 행복을 같이 바라본다. 모진 겨울을 이겨낸 인동초가 꿈을 이루는 그날까지. 힘내라. 청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