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같이 살기로 했습니다

'불안'에 대하여

by 감자


불안 주머니


나에게는 불안을 담을 수 있는 ‘불안 주머니’가 있다. 평소에는 가슴께에 위치한 이 주머니에 차곡차곡 걱정, 부담, 공포 같은 감정들을 저장한다. 이렇게 불안을 숨겨 놓고서 평온한 사람을 연기한다. ‘나는 침착하다. 침착해.’ 계속해서 자기 암시를 건다. 불안 주머니는 용량이 적다. 골목을 쌩쌩 다니는 자동차를 보거나, 횡단보도를 건너도 조금씩 차오른다. 외출 후 만원 지하철을 탄다거나, 사람이 많은 백화점에 간다거나 하면 금세 속이 꽉 찬다. 가득 찬 주머니는 댐에서 물을 방류하듯 불안을 방류한다. 가슴이 답답하고, 조바심이 나고, 화장실을 자주 찾는다.


강박은 살짝 더 무거운 부담이다. 뭐든 일단 시작하면 잘하고 싶다. 어설픈 완벽주의로 스트레스를 받고, 결과물을 받아 들고는 좌절한다. 오늘만 해도 역량은 안 되는데 글을 쓰려다 보니 창작의 고통 속에 자꾸만 불안해져서 주머니가 다 채워졌다. 이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작가들은 매일 반복하는 걸까. 하루치 불안을 해소하려면 하루는 꼬박 이불속에 몸을 뉘어야 한다. 공부에 대한 조바심에 창작의 고통이 더해지니, 이번에는 이틀은 투자했는데 당최 불안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불안에 좋은 캐모마일 차를 우려 마시고, 포근한 이부자리 속에 자주 드나들었다. 이런 내가 연비가 나쁜 자동차 같다고 생각한다. 뿌연 공해 대신 멀건 한숨을 배출하는 꼬마 자동차.


어릴 때는 불안 주머니가 콩알만 했는지, 자꾸만 넘쳤다. 엄마를 졸졸 쫓아다니지 않으면 불안해서 별명이 엄마 꼬랑지였다. 궁여지책으로 보낸 태권도 학원은 다섯 살짜리한테는 너무 가혹했다. 낯선 형이랑 누나들이 우렁차게 외치는 고함도 무섭고, 호랑이 사범님의 얼차려는 더 무서웠다. 무서워서 내내 엄마를 찾으면서 울었다. 하루는 태권도장에서 낮잠을 자다가 오줌을 쌌다. 울보를 달래느라 쥐여준 포도 봉봉 음료수가 사범님을 배신했다. 이윽고 초등학생 형아의 여벌 도복을 빌려 입고 검은 띠를 매고 귀가했다. 흰띠 아이에게 검은띠를 쥐여주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아는가? 체험판 검은띠에 마냥 신나서 온 동네를 쏘다니며 자랑한다. 세상에나, 오줌싸개 아들이 느꼈어야 할 부끄러움은 오롯이 엄마 몫이었으리라.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쁘실 때면 혼자서 잘 놀다가도 엄습하는 불안에 무방비로 놓이고는 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 경미하게 경기(驚氣)를 했다고 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어린아이가 경련을 일으키고 발작하는 병이라고 한다. 혼자 있을 때 이런 부류의 불안이 올 때는 옷장에 들어갔다. 깜깜한 그곳에서 겨우 웅크리고 누워 옷감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콩닥이던 심장이 안정되었다. 탈취제 향이 가득 한 옷장에서 이내 옷가지를 덮고 잠들고는 했다. 다행히 옷장에서 실례한 적은 없다.


‘불안 주의보’는 진행형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괜찮은 척 살아가는 게 힘들다. 부담은 부담대로 쌓여서 가끔은 숨쉬기도 힘들다. 인간관계도 갈수록 힘들다. ‘이게 대인기피구나!’ 깨달을 정도로 피하고 싶은 사람도 만나게 되었다. 지뢰 찾기 같은 인생이라니. 지뢰를 찾고 나면 기뻐해야 할까. 이런저런 불안을 피할 수 없다면, 테트리스처럼 차곡차곡 예쁘게 쌓아서 긴 막대 모양 치료제로 한 번에 터트릴 수 있으면 좋겠다.


불안과 같이 사는 법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기분이 괴롭고 어디 털어놓지 못해 외롭고 답답해서. 그냥 불안과 같이 살기로 했다. 불안에게 마음의 방 한편을 내어줬는데, 월세도 못 받는다. 이 불안이라는 세입자는 정말 손이 많이 간다. 호불호도 강해서 카페인을 싫어하고 트랜스 지방이며 인공감미료며 가리는 게 많다. 그러면서 공복은 또 피하라니 까다로운 존재 같으니. ‘나 아니면 누가 너랑 친구 하냐?’ 이 대꾸 없는 친구를 달래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첫 번째 방법은 ‘될 대로 돼라.’ 마음먹기다. 세상에 완벽한 존재는 없다. 완벽을 고민하고 스트레스받는 시간에 그냥 될 대로 되라고 주문을 외운다. 유의할 점은 절대 포기하거나 회피하란 소리가 아니다. 포기하면 당장 마음은 편하지만,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오니까.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두 우리 존재를 걸고 인생이라는 도박판에 홀로 선 타짜다. 영화 <타짜> 속 “딴 돈의 반 만 가져가”는 고니가 되어서 불안과 긴장을 반만 가져가 보자. 대 놓고 하는 밑장 빼기에 불안이 조금은 가신다. 아수라발발타.


두 번째 방법은 ‘현재에 집중하기’다. 불확실한 미래도, 과거로 얽매임도 현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이 많아 머릿속이 복잡할 때 저마다 생각을 털어내고 현재에 집중하는 방법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이어폰을 끼고 생각 없이 들어도 되는 노래를 틀어 놓는다. 둠칫 둠칫. 리듬을 타다 보면 이 순간만큼은 세상 제일의 낙관론자가 된다. 디즈니 만화영화 <라이온 킹> 속 티몬과 품바처럼, 내 마음속 아기 사자가 “근심과 걱정을 모두 떨쳐버릴” 때까지. 하쿠나 마타타.


또 하나의 방법은 ‘체온 조절해주기’다. 진지하게 자신을 변온동물이 아닐까 생각하고는 한다. 사시사철 수족냉증에다가 추위는 또 어찌나 많이 타는지 한여름에도 수면양말을 신고 겨울 이불을 덮고 잔다. 가끔은 독서실에도 수면양말 신고 간다. 발이 차면 이상하게 집중이 안 되더라. 친구들은 하나 같이 기겁하고는 하는데, “수면 바지랑 기모 후드티는 그래도 놓고 왔다.”며 너스레를 떨고는 무반주로 문워크를 춘다. 이 정도면 불안도 부끄러워서 잠깐 사라져 주는 모양이다.


이윽고 찾아오는 불안은 정말 끈질긴 친구다. 나를 미워하는 듯하면서 또 나를 사랑하나 보다.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주인공이 외치는 듯. 불안도 내게 외치고는 한다.


“불안은 돌아오는 거야!”


기왕 함께 할 거라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와 함께 해주라. 그렇게 생각하면 덜 외로워서 불안 주머니를 탈탈 털지 않는다. 평온과 불안이 공존하는 ‘우리’. 우리의 불협화음은 마침표 이후에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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