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감자
한번 뒤틀린 삶이 온전히 제자리를 찾기까지 저는 잘 먹고 잘 자도록 부단히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자려니 근심이 없어야 하고, 근심이 없으려면 아무래도 돈이 있어야 할 것 같아 꾸준히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누려본 적 없는 호사가 이어지고, 삶이 안정화될수록 제가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험생으로서 내 자리가 여기가 아닌 것만 같고, 해야 할 공부들에 조바심이 듭니다. 아무래도 몸이 편해지니 마음에서 조급함과 불안이 돋아나는 것 같습니다. 정신은 제자리를 찾았는데 몸이 제자리를 찾지 못해 괴리감을 느끼나 봅니다. 혹은 이미 삶은 정상궤도에 올라섰는데 현실감각이 깨어나서 현재에 안주하려는 저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헤어진 전 여자친구는 항상 느긋하고 여유로운척하는 저를 보며, 조바심을 좀 갖고 살라고 말했습니다. 제 연기력이 얼마나 뛰어난 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평온함을 연기하는 저는 정작 조급함과 불안함의 경계에서 지냈는데 말이죠. 제 삶은 항상 올인(All in)이어야 했습니다. 전 국민을 힘들게 했던 IMF, 할아버지의 빚보증과 아버지의 교통사고까지 고난은 이어졌고 제가 가진 것을 순간순간 걸어야만 했기에 위태로운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이해한 것은 잘 까먹지 않는 공부에 적합한 재능이라도 있어 학업에서 두각을 보였고, 제가 정말 공부에 재능이 있다고 도취하게 만들기 충분해서였을까요? 제 학업은 대학원 생활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항상 달리는 경주마 위에서 앞만 보고 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꿈이 그곳에 있었으니까요.
저는 행복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교통사고 이후 엄마와 누나가 돈을 벌더라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의료비로 쓰이는 일이 잦았습니다. 저도 지난한 가난으로부터 도망쳐보려고 덜자고 덜먹으면서 더 많이 움직이고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습니다. 가족 모두가 독기를 품고 살았다고 할까요? 저는 꼭 성공해서 엄마와 누나의 부담을 덜어주고 아버지를 부양하는 든든한 기둥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서 높디높은 학업의 벽을 느끼는 순간 첫 번째로 좌절했고, 인생의 목표였던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면서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무겁게 짓누르던 아버지의 존재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그곳을 공허함이 메꾸었습니다. 갑작스러운 현실에서 저는 그동안 가족이 대신 짊어져야 했던 부양의 의무와 가슴에 박아왔을 대못이 미안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특히 아버지 가시는 길에 드릴 노잣돈 한 푼 없는 텅 빈 주머니가 괴로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 뒤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과 학업을 병행하겠다는 어중간한 각오로 2번의 변호사시험에 낙방하였습니다. 이제 저에게는 3번의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가 남아있습니다. 시험에 집중하면 현실감각이 돋아나서 호흡을 불편케 하고 잠을 설치게 하지만, 그래도 다시 뛰어보고 싶습니다. 배수의 진을 치며 불안에 떨어야 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마음 편하게 남은 기회를 즐겨보고 싶습니다. 제 오랜 꿈이 성공이었던 이유는 누군가에게 교훈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이유도 있습니다. 제 걸음걸음이 누군가에게 이정표가, 혹은 그 끝에 제 실패가 있더라도 반면교사의 역할이라도 해보고 싶습니다. '개천에서 나는 용이 되길 꿈꾸며', 고난의 끝에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기를 오늘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