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

월간감자

by 감자

"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깊은 심호흡과 멍 때리는 행위 비슷한 명상으로 글감을 정하고 써 내려간다. 가끔 과하지 않은 음주도 준비운동에 도움이 되고는 한다. 글을 쓰라고 강제로 노트를 갖다 줘도 못쓰기도 하는 게 어쩔 때는 준비운동을 하다가도 다음 구절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러니 손가락 스트레칭이라도 하자.


기분 좋은 반주를 마치고 친구들에게 끌려 나오다시피 바닷가 카페로 오게 되었다. 여기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파도 풍경을 보다 보니 가슴이 요동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원샷 하다시피 마시고 얼음을 뽀작뽀작 깨 먹으며 파도를 바라보자. 파도와 소나무는 해장에 좋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바닷가를 걸어도 보자. 감기 기운이 솟구치도록 걷다 보면 후회와 비례하게 어떠한 영감이 솟구칠지 모른다. 내리는 비는 방울방울이 영감이다.


소주 방울방울에 실수가 자주 더 해지는 요즘이다. 이제는 내 술잔에 무슨 글이 담기는지도 모르겠다. 육하원칙에 의거하여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무슨 실수를 어떻게 왜 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이른 나이에 알코올성 치매인지 뭔지, 유사해져 가는 나에게 애도를 표한다. 애도를 표하는 김에 위로주를 건네보자. 좋은데이 혹은 그 무언가를 한잔하고 자주 가는 뼈해장국집에서 정성껏 발라 놓은 고기 살을 국물과 함께 떠 넣으면. 캬. 이 맛이다. 내가 도대체 무슨 글을 쓰고 있었더라. 디지털치매가 더해진다. 괴로운 일이다.


오늘 이렇게 취해서 주저리주저리 주사를 늘어놓는 것은 어떠한 괴로움 때문이다. 근래 초등영어학원 강사를 하는데 고학년 애들이 장난이 짓궂어서 당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때는 내가 부모여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내성이 쌓였던가, 대학교 때 복수 전공하려 했던 아동가족학을 전문적으로 마저 수강했던가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왜 이리 짓궂은 아이들이 많은지. 내가 이 초등학교 고학년들을, 중학교 당시 나를 괴롭혔던 무리들로 잘못 키워내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들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무조건적으로 해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데, 나는 이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주고 있는 것일까. 이래서 선생님은 위대한 직업인가 보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설리번 선생님이라도 되려는 것일까. 감자는 고민이 많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도 준비운동이 필요한 걸까. 매일 수업 시작 30분 전에는 도착해서 미리 예상 진도와 수업 내용을 상기하고 다른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의견을 나누어도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다. 상담가가 고위 상담가(supervisor)에게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듯, 내일은 수업 시작 전에 해당 사항에 대해서 원장 선생님께 조언을 구해야 할 것 같다. 내일은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원장 선생님께 꼭 이 사안에 대해서 전달해야겠다. 흡.. 후.. 흡.. 후.. 심호흡은 했으니 마음의 준비운동이 얼추 끝나간다. 이 글도 어서 끝을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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