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월간감자

by 감자

내향인 중의 내향인인 나에게는 신체 자체가 오래된 노트북과 같다. 배터리(battery)가 방전된 노트북은 최고 성능을 위해서 충전기를 꽂아놓고 사용해야 한다. 나 또한 수시로 이부자리에서 나를 충전해야 한다.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사부작 거릴 경우 배터리가 급격히 소모된다. 일어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워도 눕고 싶다. 가뜩이나 연비도 나빠서 일상을 지탱하는데 체력에 곁들여 정신력도 소모되고는 한다. 집을 나서면 이 증상이 한결 심해지는데 숨만 쉬어도 힘든 내가 지난주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라산 설산을 등정하고 오게 되었다. 고난하고 고단했던 한라산 등정기는 훗날로 미룬다.


일종의 성장통일까. 한라산에서 한계를 경험하고 온 이후 정신력과 체력의 그릇 자체는 커졌지만 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던 하이브리드(hybrid) 체계가 깨졌다. 일상을 지탱하던 것이 체력과 정신력의 복합적 에너지(energy)였는데 지난주 가파른 눈길을 등반하다 보니 체력도 정신력도 바닥이 났다. 마냥 기운이 나기를 기다릴 수 없어 보양식도 먹고 머리도 하고 체력과 정신력을 채워나간다. 설산에서 보고 느낀 명경지수(明鏡止水)를 실생활에 적용해 보자. 나는 잡념이 없는 산이요, 물이다. 헛된 욕심 없이 깨끗한 나를 이루자.


한번 바닥을 찍은 에너지는 서서히 차오르지만, 내 성에는 안 차나 보다. 헛된 욕심은 버려야 하건만. 아직 시간과 돈에 쓰임에 대한 교통정리가 덜 되었나 보다. 이는 인간관계를 비롯 삶의 전반에 있어 치명적이다. 기껏 잡은 지인들과의 약속들이 마음의 부담으로 다가오고, 삶에 필요한 유지비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사념은 분명 한라산에 다 두고 왔다 생각했는데 말이다. 물론 좋은 사람을 만나면 잔잔하게 남는 여운이 가슴속을 가득 메운다. 긍정적인 여과와 정제의 과정을 거치면 나 또한 그 사람을 머금어 더 나은 사람이 되고는 한다. 형, 누나, 친구, 동생들에게서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최근에는 까칠한 나를 받아주는 사람, 내 '가시'가 아닌 내면의 '가치'를 봐주는 친구가 곁에 생겼다. 스스로 부족함이 부끄러워서라도 그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다. 아등바등 노력하는 덕분일까. 그도 아니면 특별한 사람 덕분일까. 웃음이 늘고 일상이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나에게 비타민(vitamin)이 되어주는 당신을 위해, 나는 당신의 포도당이 되고자 한다. '당신 또한 나를 필요로 하기를. 당신이 숨 쉬는 동안 작고 소소한 기쁨이라도 되기를. 우리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또 격려하기를. 이 깨우침이 온전히 나를 당신처럼 나은 사람이 되게 하기를. 바람(wish) 하고 바람(no wind)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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