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월간감자

by 감자

첫 문단을 모조리 지웠다. 대강 내가 정리 정돈을 잘한다는 내용이었다. 쓰다 보니 깨달은 바가 있어서 내용을 수정할 필요를 강하게 느꼈다. 나는 정리 정돈을 잘하지 못하는 부류에 가깝다. 아무렇게나 쌓여가는 일상과 산적한 해야 할 일들이 그 증거이다. 당장 글만 해도 내용이 정돈되지 않아 꾸준히 쓰는 게 버겁다. 글뿐만 아니다. 모로 쌓은 젠가(jenga)처럼 이제는 정리되었으리라 믿었던 일상이 작은 바람 한 번에 쉬이 흔들린다. 기초 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순살' 글쓰기는 결국 결론을 지어야 할 글들을 와르르 무너트리고는 한다.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 문장과 문장을 뒤로한 채 손으로 꾸역꾸역 단어들을 적어 내린다. 단지 머리를 비워내야겠다는 일념으로 머릿속을 부유하는 단어들을 끄집어내고 그중에서 글(text)로 엮어낼 의미 덩어리를 발견한다. 유레카(eureka)! 채로 사금을 걸러내듯 하나하나 내뱉다 보면 쓸만한 말이 튀어나온다. 만세(hooray)! 그럼 그것만 남기고 지우는 과정을 반복한다. 수고스럽고 고통스럽지만 다시 읽어보면 어느 정도 성취감이 든다. 이 낯선 성취감이 나를 구원(salvation)으로 인도하리라.


지난 몇 년 동안은 하루하루가 위태위태했다. 수험 법학을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가는 길이 옳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끊임없이 솟구치는 의구심이 안에서부터 나를 갉아먹었고, 결국에는 내 삶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안간힘을 써도 뒤로 밀리는 느낌이 싫고, 삶이 좌초되는 느낌이 싫어서 스스로 흔들릴 때마다 술에 의지했다. 알코올(alcohol)의 알싸함이 현실의 흔들림을 잡아준다고 생각했다. 빠른 속도로 쌓여가는 술병은 그다음 날을 더 크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지난한 도태의 연속이었다. 누구나 단번에 나의 오작동(malfunction)을 알아봤지만, 누구도 나를 바로잡아주지 못했다. 나는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구원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했고, 종교와 믿음을 소망했다. 사랑에 의지하려는 시도도 부지기수였다. 결국 돌고 돌아 깨달은 사실은 작게는 수험에서 크게는 삶 전반에 있어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자신 뿐이라는 사실이다. 지금이라도 그 사실을 깨달아서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미루고 방치한 숙제를 꾸준히 해나가는 과정 끝에는 의미 있는 결말이 함께이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도피했던 과거의 나를 현재에 붙들어 앉힌다. 이런 나라도 사랑하자.


여기쯤 와서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시작한 이상 글을 어떻게든 한 편의 글을 이루고 말겠다는 강박에 휩싸여있다. 빛바랜 과거 또한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내일도 이름 모를 교회를 찾아 회원 등록도 헌금도 없이 도둑 예배를 드릴 테다. 아낌없이 주시는 나무의 그루터기에 앉아 사색할 것이다. 가끔은 알아듣지 못할 예배를 좇다 보면 졸음을 쫓기도 해야 한다. 나는 이것 또한 일종의 '신성한 멍때림(holy spacing out)'이라고 명명했다. 성스러워야 할 한 주의 시작에 지극히 불경스러운 태도로 함께 하는 내게도 그분이 함께하심이 영광스럽다. 졸음이라는 멍에조차도 함께 짊어주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도, 진짜 먼저 하늘에 가신 아버지께도 죄스럽고 보고 싶다. 심사가 복잡하니 살아계신 어머니에게 잘해야겠다는 터무니없고 지극히 당연한 결론으로 생각이 모아진다. 나의 어머니는 남은 세 줄의 공간으로 표현하기에는 형용할 수 없는 고난을 지고, 기적을 행하고, 어지러운 내 삶을 항상 정리와 정돈으로 이끌어주신 나만의 방주(the ark)이시다. 술과 나태함으로 얼룩진 과거마저도 끌어안아 주시는 유일한 피난처(the sanctuary)이시다.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항상 굳건하기를. 오늘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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