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ea Market(벼룩시장)
'반려 벼룩'에 대하여
그와의 만남이 시작된 것은 서늘한 북풍이 불어와 가을이 여름을 서서히 물리고 있을 때였다. Flea Market, 이름만 거창한 현수막 위로 옅은 구름이 푸르른 하늘에 걸리었다. 끼니를 밥 먹듯 걸러야 했던 나의 정신은 아득했고, 따스한 햇볕만이 나를 애처로이 보듬어주었다. 당시 나는 볼품없는 잔재주로 연명하던 예술가의 볼품없는 애완용 벼룩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기라곤 고작 나의 키만큼 뛰어오르는 것. 벼룩 치고도 하등 보잘것없는 재주였지만, 그는 재주라고 할 것도 없는 이런 도약 질에도 일절 하대함이 없었다. 되려 내 키만큼이나 점프할 수 있음을 치켜세워주었는데, 한낱 미물에게도 그 존재의 가치를 찾아주는 그런 그가 좋았다. 퀭하고 속이 깊은 눈으로 나를 따사로이 바라봐주던,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촉촉했던 눈시울을 가슴 한편에 아스라이 그려본다.
스물여섯의 조촐한 예술가. 그런 그를 동경하면서, 또한 동정하던 나이다. 굳은살 가득한 손에 붓을 쥐고 화폭에 물감 한 점 남기기 위해서라면 그는 수 배는 많은 시간을 막노동에 헌사해야만 했다. 벽돌을 이고 시멘트 포대를 날라 겨우 하루를 연명하며 허름한 야상에 샛노란 땀방울로 화폭을 장식했다. 얼기설기 엉겨 붙은 머리털에 짠내 나는 그를 다른 벼룩들은 피했으나 나만은, 적어도 나만은 그를 이해해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크고 밝게 빛나는 예술혼의 성채, 그는 나의 집이요, 또한 일용할 양식이었다.
Flea Market, 다시금 이곳에서 그는 나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사람이 몰려 북적이는 여타 가게들에 비해 휑하니 바람만 날리는 우리 가게는 사실 나를 안도하게 하였다. 이는 예술가와의 이별을 원치 않음에서였고, 행여나 사람들이 테이블 앞에서 서성일 때면 예술가의 어깨 치에서 그의 눈치를 살피곤 했다.
간절한 바람에도 이별의 순간은 여지없이 찾아왔다. 그리고 우리 앞에 서 있는 그는, 예술가의 두 손을 앗아간 건설회사의 중역, 최 부장이었다.
"그 벼룩, 제가 데려갑니다."
"잠깐만..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한 평 남짓한 천막 아래서 정적이 흘렀고 예술가의 두 눈은 무심히 구름을 좇았다. 째깍째깍 초침은 말없이 제 갈 길을 갔고, 결국 무거운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한 나는 작은 발걸음을 옮겨 그의 콧잔등으로 향했다. 이윽고 벅찬 숨을 고르며 조그만 입을 떼어보았다.
"정리할 시간이 왜 필요한 거야. 배고픈 너에게 당장 한 끼를 제공할 수 있다면 난 기꺼이 팔려갈 거야. 난 하찮은 생명체일 뿐이야."
그는 야속하게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의 시선을 돌리려 이리저리 뛰어봐도 초점 없는 눈에는 내가 맺히지 않았다. 화가 나 그를 있는 힘껏 걷어도 차보고, 가능한 한 세게 콧잔등을 깨물어 주었을 때, 비로소 그의 커다란 입에서 자그마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행여 나를 팔지 않을까 조바심에 몸 둘 바를 몰랐지만, 그 한 끼의 식사가 피골이 상접한 예술가의 몸속에 신선한 피를 샘솟게 하고, 건강을 회복시킬 것이다.
벼룩에게는 어떠한 권한도 없었다. 그저 숨죽여 과묵한 주인을 바라볼 뿐이다. 그의 숨소리는 샛노란 노을을 타고서 유난히도 새근거렸다.
벼룩을 그렇게 보내고서 예술가는 받은 돈 5,000원으로 엽서와 볼펜 몇 자루를 샀다. 협소한 공간이나마 짧은 편지와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는 그런 엽서였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모든 것으로 여백을 채워 넣었다. 공사판 인부들이 힘겹게 땀을 흘리는 모습, 그들이 삼켜대는 소주 몇 잔에 다 담지 못할 그들의 고난과 힘겨움, 예술가는 그 모든 것을 자그마한 화폭에 담아내려 했다. 그리고는 한 편에 나지막이 편지를 남겼다.
'안녕 나의 작은 벼룩아, 내가 이렇게 편지를 쓰는 까닭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야. 나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내고서야 이렇게 하고 싶은 말들을 할 수 있겠구나. 내가 너에게 누누이 말했었지. 세상에 하찮은 것은 없다고. 너는 나에게 가장 특별한 친구였어.
네가 그를 원망하고 있는 것도 알아. 하지만 내 손이 이렇게 된 건, 나의 부주의 때문이지 그의 책임이 아닌 걸. 그는 부유한 사람이야. 그의 곁에서는 내가 채워줄 수 없었던,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잠들 수 있는 나날들을 보낼 수 있을 거야. 사랑한다. 나의 오랜, 자그마한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