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頂上)과 정상(正常)의 상관관계
정상에 대하여
어느 월 어느 날 어느 시,
같은 날 나고 자란 정상과 정상이 우연히 주막에서 만났다.
둘은 몇 마디 말을 텄고,
척 예의 바른 둘 사이에는 곧 주거니 받거니 술잔이 오갔다.
점점 커지는 언성과 쌓여가는 술독에
정상은 주변의 시선이 창피했으나,
정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정상이 먼저 말을 꺼낸다.
- 정상, 오늘은 많이 취했소, 오늘만 날이 아닙니다. 이만 돌아갑시다.
"무슨 소리 하는 게요. 정상?
우리가 다시 언제 만날지 모르는데,
가게에 있는 술동이는 다 비우고 가야지요, 정상."
- 그럼 얼른 비우고 가십시다. 정상.
"안주도 조금 음미해보시오. 정상."
- 탁주 안주는 이야기지요. 이런 나물 몇 가지가 아니라.
"그도 그렇지요. 정상."
- 그럼 나부터 이야기해보리다.
내 일찍이 부모·형제 손을 떠나 잡초처럼 컸습니다. 정상.
맞아가며 동냥을 하고,
빼앗기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먹고,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지내려 무엇이든 배웠습니다.
남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법,
사람 말을 알아듣는 법,
사람이 지켜야 할 선을 보는 법,
또 그 선을 넘지 않는 법,
조금 먹고도 배가 부르는 법,
몸을 부풀리는 법,
들키지 않고 거짓말하는 법,
남의 돈을 축내는 법 등을 말입니다.
정말 가리지 않고 배웠습니다.
귀동냥, 눈동냥, 손짓·발짓, 다해가면서 말입니다. 정상.
"고생이 많았군요. 정상."
- 그런데 말입니다.
하루는 관아에서 시험을 준비해보라고 하지 않습디까?
나 같이 굴러먹던 놈들도 벼슬을 할 수 있답니다.
서책 몇 권과 엽전 몇 관을 꿔주기에 덥석 받아와 버렸습니다.
관직에 올라 금의환향할 생각에 들떠서 말입니다.
"좋은 일이군요. 축하합니다. 정상."
- 아니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하루 벌어서 하루 먹던 걸 이야기했던가요?
받아온 서책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만 못하며,
아등바등하는 사이에 그 엽전 몇 관이 이자에 이자를 뭅디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소, 정상?"
- 어느덧 서책은 뒤로하고 이자에 이자를 갚기 위해 부역만 하고 있더이다.
이거야말로 주객전도가 아니오?
'솔직히 자신이 벌인 일 아닌가.'
"음 나는 잘 모르겠소. 정상.
어쨌든 기회를 받았으니 된 것 아니오.
천천히라도 돌아가 봅시다. 정상.
황새를 쫓다 가랑이가 찢어져도 뱁새는 날 수 있지 않소?
조금만 더 해봅시다. 정상."
'씁, 이번에도 이해받지 못했구나.'
- 네 그래야지요. 정상.
사실 생각보단 할 만합니다.
그냥 제대로 된 공부가 처음이라 조금 더 잘하고 싶어서 그랬나 봅니다.
내 욕심이 과했고, 내 배부른 소리가 길었습니다.
이젠 정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오.
너무 내 푸념만 한 것 같소. 정상.
"그 이야기는 이미 다 들려주었지 않았습니까.
정상, 오늘은 많이 취했소. 오늘만 날이 아닙니다. 이만 돌아갑시다."
- 정상 말이 항상 옳습니다. 그럽시다. 정상.
-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