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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형 Aug 11. 2020

제7화 국회의원 볼모 네트워킹

대한민국 네트워킹 종결자들








<대한민국 네트워킹 종결자들> 제7화 국회의원 볼모 네트워킹    


2011년 4월 11일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서울에서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몇 달 전 강남에 작은 사무실을 빌려 시민사회단체 간판을 달았다. 대한민국 특정 연령층의 권익향상을 내용으로 하는 단체였다. 그 연령층에 화두가 되는 질문지를 국회의원 후보자에게 보냈다. 질문지는 수도권 대학에서 관련 전공 분야 교수들을 참여시켜서 만들었는데 프로젝트를 원하는 교수를 모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질문지를 발송하면 후보자는 선거운동 때문에 바빠서 주로 정책 담당 비서관에게 전화를 계속한다. 이 시민단체는 지역구가 없이 비례대표로 당선된 국회의원은 제외했다. 오직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자들에게 응답을 받아냈다.  


후속 작업은 언론플레이였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 중앙언론 기자들과 유대관계를 맺어둬야 한다. 설문에 응답한 후보 가운데 일부는 국회의원에 당선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받아낸 답변을 모아 언론에 공표한다.  






이번에는 부산의 움직임을 보자.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방분권 실현을 위한 부산시민회의라는 단체가 출범했다. 부산 시민단체들을 비롯해 정관계, 예총, 민예총 직능단체, 약사회, 변호사회, 노무사회 등을 망라해 이름을 올렸다. 부산시민회의는 부산지역 총선 후보자에게 10가지 시민의제를 만들어 발송했다.  


그 의제에 대한 공약 채택 여부를 물었다. 부산 사상구에 출마한 문재인, 손수조를 포함하여 지역구 18곳에 출마한 60명이 넘는 후보자에게 약속을 받았다. 지방분권형헌법개정,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 지역정당 설립 등 지역정치결사 자유권 확대보장 등이 눈에 띈다.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이란 프랑스가 2003년 3월 17일 지방분권 개헌안 통과시켜 헌법 1조를 ‘프랑스는 지방분권형 국가이다’라고 바꿨던 것처럼 우리도 지방자치단체의 고유 법률과 재정 독립을 추진하고 지역을 헌법상 기구로 격상하자는 것이다.


부산시민회의는 이런 취지에 동감한 국회의원 후보자 답변을 각 언론기관에 배포했다. 모두 부산지역 후보자였기에 대부분 부산일보를 비롯한 지역 언론에서 보도가 나갔다. 


여기까지는 서울이나 부산이나 다름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부산시민회의는 국회의원 당선자에 대한 점검 단계에 들어가지 못했다. 대선 국면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에 있던 시민단체는 움직임이 더욱 분주해졌다. 바로 신문 창간으로 돌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답변을 받아낸 국회의원들에게 창간 축사를 부탁했다. 처음에는 새누리당 의원 8명, 민주통합당 의원 2명이 축사를 보냈다. 단체 대표는 민주통합당 비서관에게 전화했다. 


“새누리당은 8명인데 민주통합당은 2명밖에 참여 안 하셨네요. 이 연령층 표를 버리는 건가요? 앞으로 대선도 있는데!” 


그렇게 여야 게임을 붙이자 축사를 보낸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수는 12명이 됐다. 대표는 다시 새누리당 정책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주통합당은 이렇게 적극적인데 지금 당신들 당에서는 뭐 하는 건가요?” 


그렇게 시소게임으로 가면 조직이 커진다고 했다.  



이 작업으로 대표는 양당 의원 25명씩 모두 50명에게 축사를 받아냈다. 이 단체 회원 수는 축사 수보다 적다고 했다. 대표는 국회의원 축사가 광고와 정기구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기구독은 각 지역구에 있는 계도지 예산에서 충당될 것이다. 


지역 언론은 지역단위에서 행정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 역할을 한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계도지 예산이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이다. 계도지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 정권에 유리한 여론 조성을 위해 정부가 구매해 지역 통·반장들에게 제공하던 신문을 말한다. 
 

경상남도는 0원인데 반해, (2015년 기준) 서울 25개 구청이 중앙·지역지 등을 포함해 구독하는 신문 대금은 연간 130억 규모이다. 


이렇게 된 것은 서울시도 홍보만 있지 제대로 된 지역 언론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시민단체 대표에게 조중동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대표는 권력유착 체계는 비슷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조중동은 방향성이 ‘편파적’이지만 자신들은 단지 권력과 가까이할 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역에서 어떤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일까? 


지역에서 유지들은 늘 끈끈한 관계망을 이룬다. 이 가운데 소위 콧방귀를 좀 뀌는 사람들 일부가 구의원, 시의원, 국회의원으로 간다. 지역 작동원리가 서울이라고 다를 게 없다.  



서울 지역 활동가들 견해는 비슷했다. 지역 단위로 갈수록 ‘당 이외에 뭐가 다를까?’라는 생각이 앞선다.  





그런데 진화론에서 등장하는 ‘종’처럼 지역 유지나 토호 또한 실체가 있는 개념일까? 이런 유지를 연구하는 학자로 지수걸 교수가 있다. 그가 1992년 공주대학교에 부임했을 때 누구나 인정하는 A급 유지에게 공주 유지가 총 몇 명인지 물었다. 


“한 백여 명 되지.”


지수걸 교수는 유지가 무슨 명패라도 있나 싶었다. 하지만 얼마 후 명패를 발견하게 됐다.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내무부가 매년 발간한 <도세일반>이라는 책자에는 충남도내 유력자와 자산가 숫자가 기록돼 있다.


1998년 공주시가 발행한 ‘도지사 순방 시 초청계획’에도 초대 인사 명단이 수록돼 있다.  


서울에서 도지사, 군수, 경찰서장, 법원 지원장 등이 새로 지역에 부임하면 지역 유지들과 만찬회를 연다. 친목 활동을 하다가 임기가 끝나 떠날 때에는 이들에게 전별금을 받기도 한다. 이런 네트워크는 모두 중앙정부가 필요해 만든 것이다. 


이 집단은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일제강점기 지역 유지라는 이름으로, 조선시대에는 지역 양반 사족 집단, 고려시대는 호족과 연결된다.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 왔지만 늘 존재했던 것이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 이승만 정권 시기를 거치면서 교회에서 유력한 유지를 배출하기 시작한다. 이른 시기에 교회가 자리 잡아 학교, 영아원, 병원 등을 만들어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힘을 키워나간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유지가 아닌 경우에 힘을 키워나가는 활동 방식을 살펴본다. 



한-칠레 FTA 관련하여 2003년 6월 농민회 고속도로 봉쇄 투쟁 때로 돌아가 보자. 


농민들은 다양한 고속도로 봉쇄 활동을 했고 그 결과 경남에서는 117명이 입건됐다. 출석 통보서를 받은 농민들은 당황했고 김순재에게 처신을 묻는 전화는 빗발쳤다. 김순재는 경남경찰청 정보과장을 만나러 갔다. 


정보과장은 의자에 앉는 김순재를 본척만척했다. 


“내가 과장님을 징계해서 해직시킬 수도 있습니다.”

“내가 옷을 왜 벗어?”  






“노무현 대통령 아버지 선산이 김해 진영에 있는데 우리 집에서 오토바이 타고 10분이면 가는 거 알지예? 오늘 저녁 그 맷동(산소)을 파고예. 내가 팠다는 증거를 남기면 경찰이 나 잡으러 올 거 아인교. 와 팠노카면 과장님이 파든지 말든지 니 알아서 해라 했다고 고래 진술하거니 누가 죽는지 보자. 내 3년 살면 될 거 아이가.” 


김순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김 처장 와 그라노?” 


정보과장은 김순재를 달랬다. 결국 조사받는 사람 수를 줄이는 것으로 합의했다.  





농민 입건 문제는 그렇게 처리했지만 한-칠레 FTA 문제는 그대로였다. 그 해 12월 한나라당 박관용 국회의장이 고 김윤환 전 의원의 빈소를 찾았다. 그곳에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를 비공개 투표로 강행할 뜻을 내비쳤다.  


김순재는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정보를 모으고자 전국농민회 총 연맹 정보망을 활용했다. 


곧 한나라당 대표였던 최병렬의 아버지 산소가 진주에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남해군 농민회에서는 박희태 전 한나라당 대표 부모님 묘소가 남해에 있다고 알려왔다. 한나라당 주요 인사였던 안상수는 선산이 함안이었다. 한나라당 최고위원인 이강두 선산은 거창이었고 국회의장 박관용 선산은 충청도에 있었다. 한-칠레 FTA 통과에 힘을 미칠만한 인사들에 대한 정보가 어느 정도 파악되자 김순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제목은 ‘한-칠레 FTA 통과시키면 파뿐다’였다. 이 내용은 지역 언론을 통해 유통됐다. 하지만 정보 생산 과정에서 활용한 유통망보다 지역 언론 유통망은 허약했다. 


2004년 2월 16일 한 칠레 FTA가 국회 비준을 받는다. 농민 출신 국회의원이 단 한 명도 없는 현실에서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절감했다. 이는 농민들의 ‘정치세력화’로 나타났다. 농민회 출신들이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다. 


강기갑은 17대 총선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를 받아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강기갑과 함께 활동했던 김순재는 2010년 2월 창원 동읍 조합장에 당선됐다. 


지역 헤게모니가 공고한 지역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킹을 적절히 활용하는 방법을 필요로 했다.  



(다음 8화 김순재 네트워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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