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2부)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2부) 목차
3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
4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제2화. 이런 수사관은 처음이지? 놀랬다면 미안해.
K 경감에게 경찰 후배들이 찾아왔다.
"큰 사건 많이 했다는데 그리고 잘 썼다고 하는데 이런 걸 잘하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요?"
"나는 문장력이 없다. 수사기록을 작성할 때 상대방이 알아먹기 쉽게 쓰려고만 했다. 문장이 후지더라도 글을 보는 사람이 헷갈리지 않게 빨리 이해하는 방향이었다. 예를 들어 '내일 같이 갈 사람이 있어요.'라고 쓰면 내가 '내일 누군가를 데리고 오겠다'는 말도 되지만 상대에게 '한 명 데리고 올 수 있냐'는 의미도 있다. 나는 절대로 이런 말은 안 쓴다. 수사기록 양이 많아지면 내용 정립이 안 된다. 상대방이 쉽게 이해하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 내 목표다."
말이 쉽다. K 경감(이하 펭수)이 경찰 입문 후 수사 내공을 연마하는 과정을 더 살펴봐야겠다.
- 이하 지명과 인명은 모두 가명 처리 -
펭수는 90년대 후반 순경으로 입문했다. 첫 수사 근무는 2000년 빙하경찰서 조사계다. 오늘날 경제팀으로 여기에는 피해를 호소하며 회복을 요구하는 고소·고발·진정·탄원 등 4가지 형태 소가 들어온다.
사람을 불러 조서를 작성하는데 교육이 따로 없다. 시민이 실전 연습 상대고 헌법 판례를 많이 찾아보는 방법뿐이었다.
펭수는 2005~2014년 서울 참치경찰서 지능팀에 근무했다. 이곳은 EBS사장을 뽑는 방통위원장을 내정하는 청와대가 있는 관할 경찰서다. 펭수는 선배 중에 기가 막히게 조서를 쓰는 뽀로로를 만난다.
막내인 펭수는 뽀로로가 쓴 서류를 자주 살펴봤다.
그를 닮고 싶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실력에 닿지 않았다. 결국 따라가기를 포기하자 펭수 스타일이 나오기 시작했다.
펭수가 반한 뽀로로 실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뽀로로는 뽀롱 경찰서 경제팀에서 조사를 배웠다. 신입 교육은 조장이 맡는다. 조장은 처음에는 간단한 고발장을 맡겼다. 도로법, 과적행위, 향토예비군설치법 등을 위반한 내용이다.
다음에는 고소장을 맡기며 물었다. 적용해야 할 죄, 핵심적인 증거, 증거 수집 방법, 조사 대상 선정 등을 확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내용을 바탕으로 '범죄사실'을 작성하라고 요구한다. '범죄사실'은 법 위반 내용을 6하 원칙에 맞게 쓴 것으로 검찰이 쓰는 공소장에 해당한다.
민원인이 낸 고소장을 보면 자기가 당한 게 사기인지 횡령인지 배임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처벌을 요구한다.
뽀로로는 법 적용 능력을 갖추고자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마다 형법, 형사소송법, 행정법 등을 읽었다.
암기 과정에서 뽀로로 나름대로 분류법이 있다. '바퀴 달린 것' 기본법은 자동차관리법과 도로법이다. 거기서 파생된 법이 도로교통법, 도로교통 특례법이다. 여성이 등장하는 사건은 대개 형법에 해당한다.
물론 법을 암기해 법을 적용할 줄 안다고 끝이 아니다. 이를테면 사기사건은 한층 복잡하다.
"사장님, 돈을 빌려가서 왜 안 갚았어요?"
"회사 형편이 어려워서 못 갚았어요. 사기 칠 의도가 아니었어요."
회사 형편은 회계장부에 나타난다. 회사 재무제표에서 재무상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회계장부에는 재무제표를 구성하는 세부 항목이 있다. 뽀로로는 이런 세부 항목을 포털을 검색하며 공부하면서 전산회계 2급 자격증까지 땄다.
회사 장부를 읽어내면서 뽀로로는 회사가 저지르는 횡령 범죄를 잡아낼 수 있었다. 횡령은 경제사범 수사에서 핵심인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가는 길목이다.
뽀로로가 설명하는 흐름은 이렇다.
"200억 회사 돈 먹었어. ➀ 횡령했으면 소득이 생겼겠지. 그럼 세금을 안 낼 거 아냐. 그럼 ➁ 조세범 처벌 위반이지. 회사에서 돈을 빼먹으면서 장부를 분식했을 거 아네요. 그럼 ➂ 분식회계지. 그다음에 숨기기 위해서 장부를 가짜로 썼을 거 아네요. ➃ 공인회계사법 위반이지. 그리고 회사 장부를 검사하는 회계사들이 있어요. 그 회계사를 속였잖아요. ➄ 외부감사에 관한법 위반이지. 회사는 감사보고서를 공시를 해요. 공시를 하면 허위공시가 되지. 일반인이 그 공시된 내용을 보고 주식을 사잖아요. ➅ 자본시장법 위반이지."
뽀로로는 이 과정을 모두 범죄 사실화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게 지능범죄 수사요원이라고 강조했다.
뽀로로는 서울참치경찰서 지능팀에서 신입 펭수를 만났고 가르침을 줬다. 하지만 아무리 따라 하려 해도 펭수는 뽀로로가 될 수 없었다.
펭수와 뽀로로는 성향이 달랐다. 뽀로로는 꼼꼼하고 매사 조심스럽지만 펭수는 성실하면서 낙천가다.
술 한 잔 하면 유치환 시인이 쓴 <깃발>을 읊을 줄 아는 낭만가다.
"저 푸른 해원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하지만, 그가 8년 동안 있었던 서울참치경찰서 지능팀은 치열한 곳이었다. 집회시위사범은 지능팀 업무다. 이 경찰서는 집회시위사범을 다른 경찰서보다 많이 다룬다.
집회 시위 조사를 하다 보면 큰 골격 안에 다양한 변주가 발생한다. 펭수는 집회에서 이상행동을 하는 이들을 많이 봤다. 특히 깃발은 대중을 흥분시킨다.
한 암컷 물범은 자신이 신었던 날카로운 하이힐 굽으로 경찰관을 때렸다. 어떤 수컷 북극곰은 한 손에는 콜라를 든 채 자가용을 타고 주한 미국 대사관으로 돌진했다.
펭수는 집회시위 조사는 일반 다른 강력사건과 성격이 다르다고 했다. 살인사건은 사건 발생 날 정점을 이루고 범인을 잡은 후에는 급격하게 떨어진다. 하지만 집회시위 범죄는 살인사건과 반대다. 초기에 미미하게 시작되나 끝날 때 정점을 이룬다.
펭수는 그 후 남극경찰서 지능팀에서 근무했다. 펭수는 공룡친구 단체가 주도한 집회시위 대형 불법 사건들을 맡았는데, 사실 처음부터 펭수 담당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둘리 위원장이 저지른 아주 미미한 현행법 위반 건이 남극경찰서에 이첩되기 시작한다.
집회 관련 법규를 살펴보자. 도로교통법, 집회시위에 관한법률. 형법에 일반교통방해죄. 폭행, 상해, 공무집행방해가 있다. 공무집행방해를 하면서 다치게 하면 공무집행방해치상, 여럿이 하면 특수가 붙어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이 된다.
펭수는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국밥 먹을 때 맛있다, 맛없다로 평가 하지 여기에 들어간 소금 괜찮은데, 설탕 괜찮은데 하지는 않잖아요. 판결을 할 때는 제일 주가 되는 것을 보니까 죄명을 다 붙여도 큰 의미는 없어요."
후배들은 골치 아픈 사건 배당 처리를 펭수에게 부탁했다. 이 후배에게 하나 받고 다른 후배에게 하나 받으면서 사건은 쌓였고, 쌓이면서 커졌다. 펭수는 검찰에 둘리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피의자 처지에서 둘리가 영장 내용을 읽으면 이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읽기 전) 내가 뭐 때문에 구속되고 지랄이야? (읽은 후)아! 씨발, 다 내가 한 이야기네'.
가령 이런 거다. 백남기 씨는 2015년 11월 14일부터 2016년 9월 24일까지 중태 상태였다.
백 씨가 중태 상태일 때 둘리가 시위대들에게 투쟁을 촉구하며 물대포를 맞은 백남기 농민이 죽었다고 외친 말까지 찾아낸 것이다.
실제로 공룡친구 단체 측에서는 둘리 선고형량에 대해서 문제는 삼았지만 영장 청구 내용이나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 표현에 대해서 문제 삼은 것을 들은 기억은 없다.
펭수 수사는 성실함이 기반이다. 둘리와 관련된 관련자들 회의록 내용, 언론 인터뷰, 조직 기관지 내용을 모두 찾아냈다. 이런 자료는 오래전부터 집회를 구상하고 계획한 근거가 됐다.
펭수는 집회에서 폭력집회로 변질시키는 사람들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죄명으로 치면 약하지만 죄질이 좋지 않다고 했다. 물건 하나 살 때도 품질을 보듯 법도 마찬가지다.
구속 여부는 죄명이 아니라 죄질로 결정된다. 한 가지 예를 보자.
"공룡친구 단체원 도우너가 마스크를 쓰고 경찰버스에다가 줄을 묶어놓고 빠져요. 그렇게 분위기를 만들어놓으면 잡아당기라고 권유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다 잡아당겨요. 그러면 결국 엉뚱한 사람들이 벌금을 내는 거예요. 10명이면 3000만 원이예요! 그럼 처음에 경찰버스에 줄 묶어놓고 빠진 사람들을 잡아야지요."
그 수많은 인파가 북적이는 집회 현장에서 어떻게 그들을 찾아냈을까. 펭수는 집회 채증사진과 동영상이 담긴 CD에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공룡친구 단체 경기도지부'라고 적힌 깃발 부근에서 도우너가 맴돌았다.
펭수는 중얼거렸다.
"저 푸른 해원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그 깃발 앞쪽에 주로 서 있다면 직책을 맡을 가능성이 컸다. 다음에는 그 지역 신문을 검색해 직책이 소개된 도우너 사진을 찾아냈다.
나는 펭수에게 당시 김헌기 수사기획관뿐만 아니라 경찰청 계장들 사이에서도 펭수 실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평을 전해줬다. 펭수는 수사에서 무엇보다 공정성을 가장 중시한다고 했다. 그에게 공정성 하면 떠오르는 이가 누구인지 물었다.
펭수는 강부영 판사(사법연수원 32기)를 언급했다.
강부영 판사는 2017년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 판사로 검찰이 최서연(최순실)과 공모관계로 신청한 정유라 구속영장 청구를 두 차례 기각했다.
"내가 최서연(최순실) 이해해주고 싶은 생각은 하나도 없는데, 엄마가 대통령에게 말만 하면 다 되는 사람인데 고등학생 딸과 공모를 했겠어요? 고등학생 정도면 부모와 공모할 이유가 없어요. 그냥 딸을 데리고만 다닌 거예요. '너 여기 앉아 있어라. 그리고 좀 있다가 끝나고 나와라'. 부모들이 다 그런다고요. 공모하려면 자식이 서른 살 정도는 돼야지. 그런데 검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몇 차례 기각하는데 저 판사 대단하다, 저 판사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지요."
(다음 제3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1부)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