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형 Dec 15. 2020

제10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2부)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2부) 목차 

1화 300 

2화 이런 수사관은 처음이지? 놀랬다면 미안해.

3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 

4화 다키스트아워(Darkest hour)  




제3화. 더 기버(The giver) : 기억전달자.   




경찰에서 나름 실력 있다는 수사관들은 대부분 서로 만나기 마련이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2011년 말 경찰청 내에 범죄정보과와 지능범죄수사대를 만들었다. 김헌기 지능범죄수사과장이 지능범죄수사대를 지휘했다. 지능범죄수사대는 고위공무원 비리, 경제사범과 같은 대형사건을 인지해 수사한다.  


당시 뽀로로(2화)를 포함한 전국에서 실력 있는 수사관들이 다 모여들었다. 이들은 지능범죄에서 가장 높은 단계 수사를 맡는다. 그중 하나가 바로 뇌물 사건이다.  


SBS 방송 캡처. 2019.11.23



“공무원 뇌물사건 검거에 얼마나 큰 노력과 투지가 들어가는지 일반인은 잘 모르지요. 뇌물인데 돈 주고받은 증거가 어디 있어요? 공무원에게?”   

김헌기가 수사2계장이던 시절은 공무원 뇌물 사건이나 기업 횡령, 주가 조작 같은 사건은 검찰 전유물이었다.


당시 자금추적 영장 신청서를 제대로 작성하거나 영장을 받아 집행할 수 있는 경찰은 드물었다. 자금 추적은 지능수사에서 기본이지만 생소한 금융용어와 자료 압수 개념이 어렵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수사관 중에는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저는 은행 직원에게 물어봤어요. 이런 내용을 압수하고자 하는데 영장에 어떤 내용을 기재해야 하느냐? 그리고 가끔 검찰 기록이 우연히 하달될 때가 있어요. 그런 게 내려오면 보면 메모하고, 그런 게 쌓인 거지요.” 


수사관 경험과 지식을 보편화하려면 자금추적 실무 매뉴얼이 필요했다. 이를 만들려는 수사관도 있었다.  


“제가 태스크포스팀 꾸려서 자금추적 실무 매뉴얼을 만들 테니 윗분들에게 인원 조금만 해달라고 해도 관심 있는 분이 없었어요. 그런 게 아쉬워요.”  


이 수사관은 2012년 김헌기 지능수사과장을 만나고 자금추적 매뉴얼을 만들게 됐다.  



물론 김헌기에게 이 일을 맡기며 예산을 주는 이는 없었다. 어떤 이는 고위간부가 치적을 내세우기 가장 좋은 방법이 매뉴얼 편찬이라고 했다. 김헌기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수사관이 모든 분야에 능통할 수 없다. 판사도 전문 분야에 감정인 제도를 둔다. 검찰은 회계 추적, 자금추적 시, 증권사나 세무사 직원과 함께 수사한다.  


경찰은 회계사 세무서에 주고 조언을 받아서 수사를 진행했다. 이 경우 자문비용이 부담이고 수사기밀유지 보장도 어려웠다. 경찰 회계·자금추적은 한계에 부딪혔다.  


조현오 청장은 지능범죄수사대를 만들어 그중 한 개 팀을 자금추적수사팀으로 운영했지만 실패했다. 


“수사관 처지에서는 자금추적이 남 뒤치다꺼리나 하는 거잖아. 자기도 모양새 나는 수사를 하고 싶지. 생색이 안 나고 의욕도 없고 남에게 자료 제공하는 것은 빛이 안 나잖아.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현실에서 적용이 안 되면 실패거든.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지. 그래서 결론은 매뉴얼이라도 만들자.” 

김헌기는 자금추적 매뉴얼 편찬 팀에게 당부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지 마라. 시작이 반이다. 첫 작품을 만드는데 의의가 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증보판을 내는데 훨씬 쉽다 ” 


이 일에 관여한 수사관은 다음 증보판에는 주가조작, 외국계좌 이용한 자금세탁, 몰수보전 등을 넣고자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관심을 보이는 지휘관을 만나지 못했다.   





2014년 강력범죄수사과장이던 김헌기는 전국 주요 사건을 살펴봤다. 검거 해결에 가장 주요한 방법은 CCTV 수사였다. 하지만 CCTV를 활용한 수사 역량은 지역마다, 개인마다 천차만별이었다. 이 역량을 일정 수준으로 보편화해야 했다.  


YTN 방송 캡처



김헌기는 전국 CCTV 고수를 불러 모아 매뉴얼 작성을 진행했다. 이들은 범인이 특정되지 않은 형사 사건을 비롯해 고난도 사건을 해결하며 역량을 축적했다. 나중에 강호순이 범인으로 밝혀진 2007년 1월 7일 경기서남부 부녀자 실종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매뉴얼에 대한 현장 평가는 어떨까? 일선경찰서 한 형사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매뉴얼 잘 만들었지. 그런데 직원들이 잘 안 보는 게 문제야.” 


형사과장은 본청 노력을 충분히 알았다. 각 직원에게 매뉴얼도 전달했다. 문제는 활용도가 높지 않았다는 것이다. 형사과장 결론은 이렇다.  


“현장에서 매뉴얼을 활용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형사과장이 매일 업무 중에 맞닥트린 현실은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컴퓨터 내부망으로 결재가 이뤄진다.  

직원들 서류를 중간 팀장들이 한 번 결재하고 형사과장에게 올라간다. 서류를 보면 갑갑함이 밀려왔다. 범죄사실 작성만 봐도 수사관 내공이 보인다. 피의자는 3명인데 범죄사실에는 2명밖에 안 보이는 일도 있다. 그러면 해당 수사관을 불러 묻는다. 


“한 명은 어디 갔니?” 


결재 중간 단계에서 거름망 역할을 해야 할 팀장 역량이 약하다는 것을 느꼈다. 퇴직과 가까워질수록 블록체인이나 최신 신용카드 판례, 최신 사이버 사건에 관한 관심은 현격히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수사 현장에서 고민이 시작됐다. 뒤늦은 공부를 할 때 이런 매뉴얼이 큰 도움이 됐다. 물론 수사에 필요한 배경지식을 갖추려는 일선 과장들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2013년 인천지역 경찰서에서 근무하던 수사과장 기억이다.  


23명이 있어야 할 경제팀 인원이 17명뿐이었다. 그것도 대부분 경력이 1년 정도여서 현장에서 역량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내부망으로 수사서류를 결재할 때마다 현실이 갑갑했다.


그래서 이 수사과장은 일주일에 한 번 팀원을 모아 두 시간 정도 강의했다. 따로 책이 없었고 부딪히는 범죄 유형별로 설명했다.  


“민원인이 고소장을 들고 왔다 할 때 맨 먼저 어떤 것부터 체크해야 하나?” 



그는 칠판에 ‘1) 죄명, 2) 피해 날짜, 3) 공소시효 계산’이라고 쓰고 설명했다.  


“일단 제일 먼저 죄명부터 본다. 피해자는 사기를 당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횡령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파악해라. 두 번째 피해 입은 날짜다. 그걸 모르고 고소장 쓰는 사람이 많다. 마지막으로 공소시효를 계산해야 한다. 가령 모욕죄는 공소시효가 5년이다. 하지만 고소 시간은 6개월 이내다. 이게 지나서 오는 사람도 많다.” 


수사과장은 이 형식적인 조건 세 가지를 모두 통과해야 조사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 총론이고 전산으로 결제하면서 서류를 보고 작성자를 다시 불러서 강의했다. 직원이 이해하지 못해 한 시간 넘게 걸린 사건도 있다. 


수사과장은 어느 날 밤늦게 울고 있는 직원을 봤다. 가정에서도 늦게 들어온다고 이해를 못한다고 했다.  


경제팀은 밀려오는 사건은 많고, 왜 사건을 빨리 처리하지 않느냐고 타박하는 상부에, 밖에서는 민원인에게 시달린다. 지능수사는 수사관이 성과를 내면 특진도 하고 보상도 따랐다. 이 같은 환경 차이는 경제팀 이탈로 나타났다. 


경제팀 인원 조정과 배치 등 행정 업무는 경찰청 수사국이 맡는다. 하지만 2012년 김헌기가 경찰청 지능수사과장일 때는 다들 자기 업무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당시 김헌기는 이러다가 망한다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어느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경찰서 일선 수사과장은 할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나아질 기미가 없던 2015년 어느 날 전화가 왔다. 김헌기 인천지방경찰청 2부장이었다. 김헌기는 경무관으로 승진하고 2015년 인천지방경찰청으로 왔다.  




“거기 경찰서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 내가 이것을 개선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2015년 김헌기가 인천2부장으로 오자 자신이 부임한 인천에서라도 조직 체질 개선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김헌기는 인천지방경찰청장 결재를 받아 속도감 있게 밀고 나갔다. 당직을 없애고 평가제도를 바꿨다.  




김헌기는 2015년 12월 경찰청 수사기획관이 된다. 경찰청 지능수사대와 범죄정보과 등을 지휘하면서 수사국이 맡은 중요 사건에 수사 업무를 챙기는 자리였다. 김헌기는 수사기획관이 되자 강신명 경찰청장 승인을 받아 전국 경제팀 활성화를 더 요란하게 밀고 나갔다.  


무전취식 사건은 경제팀이 아닌 형사팀에서 처리하도록 했다. 경제팀은 원래 양반처럼 조사하고 형사들은 강절도 등 험한 수사를 많이 해서 무전취식범을 잘 다룬다는 시각도 있다. 한 형사과장은 힘든 사건은 모조리 형사에게 넘긴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경찰 내부망에도 형사는 왜 챙겨주지 않느냐는 글이 올라왔다. 




‘행정 달인’ 김헌기는 개혁에 앞서 반대 세력을 고려한 대안을 생각한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욕하지 못하도록 구상한 것은 뭘까? 형사들은 욕하기에 앞서 ‘김헌기 잘한 점’이라고 반문하더니 바로 답했다. 



“나는 데이트 폭력!”  



(계속해서 마지막 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1부) 목차.

제1화 만국의 운전자여 단결하라.

제2화 분노는 나의 것

제3화 미스터 계장들

제4화 윤재옥 의원이 키아누리브스였어!

제5화 송무빈을 위한 자리는 없다.

제6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제7화 김헌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9화 이런 수사관은 처음이지? 놀랬다면 미안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