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봐서 아는데
Y 여고에서 MAR SING-OUT 경연대회가 있었다.
전국이었는지 서울 지역이었는지 아쉽게도 내 기억을 뒷받침할 자료를 찾지 못했다. 이래서 기록이 중요하다. 진즉 일기를 좀 쓸걸.
전국연맹 회원인 한 선배가 SING-OUT 율동을 동작 하나하나 전수해 줬고, 1학년은 그저 열심히 따라 하면 되었다. 모이라면 모이고, 집에 가라면 가고, 연습하라고 하면 연습하는 말 잘 듣는 성실한 단원이었다. 가끔 결석하고, 복장이 불량한 두어 명의 단원 덕에 단체 기합도 성실하게 받았다.
땡볕 아래, 흙먼지 풀풀 날리는 운동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연습에 매진했던 것은, 기합이 무섭기도 했지만, 그보다 대회에서 상 하나라도 꼭 받아오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불량하다고 소문난 우리 동아리의 명예를 되찾고 싶었다.
비장한 각오에 비해 진도는 지지부진했다. 복잡한 안무를 만들어 놓고 선배들 간에 의견이 분분했음에도 잘 따라 하지 못한다고 1학년을 혼냈다. 또 하나의 난관은 대회 때 입을 단체복이었다. 아래위 한 벌의 교복 같은 단복을 만드는 데 돈이 많이 들었다. 단복 비용은 단원 모두에게 부담이었다. 교복보다는 적은 돈이었지만, 일회성 단복을 위해서 지출하기에는 큰돈이었다. 단복비용 때문에 대회 참가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도 했다. 고민한다고 돈이 생기는 건 아니었지만, 엄마한테 일부를 받고, 일부는 용돈을 모아 마련하느라 내가 제일 늦게 맞춘 것 같다.
선배들은 그런 사정을 알기에 저렴한 비용으로 재단할 곳을 찾았다. 단가에 맞는 옷감과 재단사의 실력은 완성된 옷에서 그대로 보여줬다. 옷감이 형편없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품이 안 맞는 상의는 율동할 때 제약이 따랐다. 팔을 쭉쭉 뻗는 동작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여민 단추가 풀리거나, 겨드랑이 박음질이 뜯길 것 같았다.
결전의 날, 아슬아슬하게 만들어진 단복을 입고 우리는 Y 여고에 도착했다. Y 여고 교정은 대학교같이 넓었다. 축구 골대가 있는 운동장에는 스탠드도 있었다. 운동장과 학교 건물을 에워싼 동산은 나무가 우거져 아름다웠다. 운동장의 대각선 길이가 가까스로 백 미터인 우리 학교와 비교돼 부러웠다.
스탠드에는 여러 학교가 듬성듬성 사이를 띄우로 오와 열에 맞춰 서서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내가 봐도 멋있었다. 커다란 깃발을 펄럭이며 우렁차게 노래하는 어느 남고, 한 몸처럼 움직이는 어느 여고, 곁눈질로 구경하느라 연습이 잘 안 됐다. 그들의 기세에 눌려 의기소침해져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대회장에 서보기도 전에 이미 승패가 정해진 것 같았다. 선배들은 정신 차리라고 혼을 내기도 하고, 연실 파이팅을 외치며 기운을 북돋으려 애썼다.
드디어 우리 학교 차례가 돼 단상에 올라섰다. 지휘하는 선배를 따라 구호를 외치고, 피아노 연주에 맞춰 노래와 율동을 시작했다. 박자가 자꾸 빨라지는 것 같았고, 시선은 공중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다. 다음 동작을 기억해 내느라 내 몸은 깡통로봇이 된 것처럼 뻣뻣했다. 어느새 두 곡을 다 부르고 서둘러 단상에서 내려왔다. 뭐? 수상? 비등비등해야 기대라도 할 텐데, 차이나게 잘하는 학교들이 많아, 상에 대한 미련은 애저녁에 접었다.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른 학교 경연을 편하게 구경했다.
경연대회 참가한 학교들 사이에는 서로 응원해 주는 상도덕이 있었다. 가령 자기 학교 순서가 끝났으면, 무대 아래 객석으로 돌아와 박수와 환호성을 외쳐주는 것이다. 대체로 남고는 여고에, 또 여고는 남고에 응원 교환을 약정했다. 간혹 응원 교환하기로 한 학교가 그냥 대회장을 나가버리기도 해 보험처럼 여러 학교와 약속했다.
대회가 모두 끝나고 강당에서 쏟아져 나온 학생들로 운동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대절 버스나 정류장으로 바삐 이동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무엇을 기대하는지 더딘 발걸음으로 운동장을 배회하듯 걸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처음부터 대회의 목표는 다른데 있었던 것 같았다. 연습으로 보낸 지난 여름방학도, 귀한 돈으로 맞춘 허접한 단복도, 기죽이던 학교 교정도, 그리고 불과 두세시간 전 로봇춤도 새까맣게 잊었다.
우리 학년 총무는 선배로부터 해방되자마자 미팅할 남자고등학교를 찾아 나섰다. 총무는 우리 학교 얼짱 중 탑 10에 드는 친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총무가 우리가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오는데, 그 애 뒤에 수십 명의 남학생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아! 섭외에 성공했구나! 동물의 왕국을 보는 것 같은 재밌는 광경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와 그들은 서로 마주할 공간을 찾아 우왕좌왕하다 학교 뒤 동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단체미팅 장소치고 좀 거칠어 보이지만, 양 떼 몰듯 교내 남겨진 학생들을 몰아내려는 Y 여고 선생님들을 피해서 갈만한 곳이 당장은 뒷동산뿐이었다. 그러나 정작 동산에 들어서니 우리와 같은 학생들이 저쪽에 한 무리, 또 이쪽에 한 무리, 운동장에 있던 학생들이 모두 산으로 온 것 같았다. 학생들이 단체로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돈도 없었고, 늦었고, 이곳에서 결판을 봐야 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눈에 띄었다. 선생님들도 대번에 우리를 발견했다. 호루라기 소리가 가까워지고, 플래시 빛이 몸에 스치자 너 나 할 것 없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남학생과 여학생은 야산까지 숨어들어 어떻게 해서든 만나려고 하고, 어른들은 또 거기까지 쫓아와 그렇게 떼 놓으려고 했다. 자연의 이치를 왜? 어째서? 거스르냐는 거다.
학교를 빠져나온 우리는 무작정 길을 걸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몰랐고, 정해진 장소도 없었다.
그렇게 걷다가 도착한 곳이 바로 육교였다. 육교 위 한쪽 난간에는 우리 학교 여학생들이 줄지어 섰고, 맞은편 난간에는 남학생들이 주욱 늘어섰다. 남학생이 늘어선 길이가 우리 학교의 세배는 돼보였다. 3대 1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육교 위에 켜진 가로등 아래 서 있는 수십 명의 까까머리 남학생들을 힐긋 쳐다보는 것이 유일한 대화였다. 그렇게 몇 분이나 서있었을까? 나는 수줍고 민망함에 점점 몸이 꼬였고, 꽈배기가 돼서 집에 왔다.
3대 1의 확률은 정량적으로나 정성적으로나 모두 빗나갔다. 수학을 좋아할 수 없는 이유만 또 하나 추가했다.
육교미팅 내가 해봐서 아는데, 아무것도 안된다.
육교 위에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나만 안된 건가? 에이!
<사진출처: tvN 드라마 도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