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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Sir

with love

by 달게

담임선생님은 칠판에 큼직하게 이름 석 자를 쓰셨다.

아담한 체형의 담임선생님은 우렁찬 목소리, 선명한 눈빛을 가지셨다. 그리고 단호하지만 따뜻한 언어로 나를, 우리 반 아이들을 감쌌다. 우리는 금세 선생님께 푹 빠져들었다.


담임은 국어 선생님이다. 나는 국어 과목을 좋아하지 않았다. 성적이 늘 좋지 않았고, 재미도 없었다. 그동안 정말 재미없는 국어 시간을 보냈었다. 법 중에 가장 어려운 법이 문법이라고 지금도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은 그동안 국어수업과 너무 달랐다. 말을 많이 시켰다.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각자의 생각을 말하게 하면서도 비판하거나 지적하지 않았다. 어떤 의견이든 존중해주셨다. 책상 배열도 소그룹으로 만들어 토론을 자주 했다. 자율적인 토론 분위기가 좋았다. 국어 점수는 아주 조금 올랐다. 아마 문법만 어려웠던 건 아니었나 보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미술이었다. 실기 점수가 많이 반영되는 미술은 그동안도 효도 과목이었다.

미술 선생님은 말씀을 그리 많이 하지 않으셨다. 몇 마디 안에 뼈와 살이 심오하게 들어있었다. 늘 칠판에 한두 개 단어를 쓰고, 느릿하게 알듯 모를듯한 은유의 언어로, 시선은 가끔 나한테 대놓고 말하는 것 같다가도, 먼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뭔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지만 다 말할 수 없는 냉가슴이 전해졌다.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삼켜야 했던 말, 미술 선생님을 떠올리면 딱 그런 모습이 생각난다. 우린 그 말할 수 없는 말을 그림으로 그렸다.


처음 한동안은 모든 과목이 재밌었다. 선생님마다 신입생을 대하는 태도는 다양했다. 부드럽게 혹은 무섭게. 그러나 두 번 정도 수업을 겪은 다음에는 부드럽다고 해서 마냥 좋은 선생님도 아니었고, 무섭다고 우리를 이해 못 하는 선생님도 아니었다.


호기심 많은 우리들은 학교 선생님들 사이에서 흐르는 이상한 기류도 포착해 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설을 앞두고 뜻을 같이하는 선생님들이 학내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거나, 그보다 더한 처우로 받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대부분이 우리가 좋아하는 선생님들이었다. 결국 그분들 중 몇 분은 전근을 가셨고, 미술 선생님은 학교를 그만두셨다.


며칠 전에 본 영화 하얼빈에서 '지금 나의 생은 앞서간 동지들의 것'이라고 한 안중근 장군의 말과 작년 12월 계엄군의 총구 앞에서 두려움 없이 막아선 젊은이가 울면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선배들께 고맙다 한 말, 그리고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의 말까지 모두가 이어져 있었다.


안중근 장군과 같은 영웅을 감히 흉내 낼 수는 없지만, 작은 불빛 하나는 내 손으로 밝힐 수 있다.

내가 가진 빛을 어디에서 빛내야 하는지 알려주셨던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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