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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쿵타쿵띵!찰찰찰찰!

BC 603

by 달게

타타타타타타타타 띵!

한 줄 다 쳤으니 줄 바꾸라는 소리 띵!


타쿵타! 타쿵타! 타쿵타! 타쿵타!

받침 칠 때 나는 소리 쿵!


찰찰찰찰찰찰찰찰!

반 아이들 동시에 타자기로 합주하는 소리 찰찰찰찰!


타자 실습실에서 타자기 소리는 흡사 봉제공장과도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엄마 친구분이 하는 교복공장에 자주 놀러 갔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재봉틀 소리가 그랬다.


미리 말해두지만, 1989년이었고, 워드프로세서가 보편화되기 전이었고, 전자계산기보다 주판을 더 많이 사용하던 때다.


옛이야기 속의 시대를 관통하는 인류애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그러자니 옛날 물건을 설명하지 않을 수가 없다.


'타쿵타!'는 받침을 칠 때 나는 소리인데, 왜 '쿵'이냐 하면, '런'자를 친다면, 초성 'ㄹ'을 친 후 받침 버튼을 누르고, 중성 'ㅓ'와 종성 'ㄴ'을 쳐야 하는데, 이때, 받침 버튼이 종이를 감고 있는 둥글대를 살짝 들어 올렸다 내려놓으며 내는 소리다. 타자기로 친 원고의 글자들이 윗부분이 나란하고 아랫부분이 들쭉날쭉한 이유가 여기 있다. 사실, 지금 키보드에 익숙해진 지 오래되어, 저렇게 복잡하게 타자를 쳤었나 싶을 정도로 새삼스럽다.


어쨌든, 상업고등학교에 왔으니 타자 격증을 취득해야 했다.

타자 과목은 자격증 취득이 목표였기 때문에 대부분이 실습수업을 했다.

당연히 속도는 빨라야 했고, 오타 없이 정확해야 했다. 정확하지만 완성을 못 했거나 완성은 했지만, 오타가 있다면 감점 처리되고, 기준 점수에 못 미치면 탈락이다.


특히 회사에서 쓰이는 문서 양식도 외어야 했는데, 가령 제목은 몇 타를 들여서 쳐야 하는지, 본문까지 몇 줄을 비워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본문에 표를 그릴 때는 볼펜을 썼는데, 어이없게도 볼펜의 똥이 점수의 감점을 결정짓기도 했다. 볼펜 점검은 필수였고, 볼펜 똥을 닦을 휴지도 필수였다. 똥이 없는 수성펜을 사용하면 되겠지만 수성펜은 잉크가 종이에서 번지기 때문에 '내친구'볼펜을 살살 달래가며 쓰는 것이 큰 실수를 피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워드프로세서가 없을 때 이야기다.


수업 시간은 이렇다. 선생님이 연습용 갱지를 나눠주시면, 앞뒤로 빽빽하게 타이핑 연습을 해, 수업을 마칠 때 제출하는 것이다. 지금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으로 사용하는 회색의 거친 종이인데, 가로 폭은 타자기 사이즈이지만 세로 길이는 A3 정도 된다. 시험공부 깜지를 만들듯이 타자기로 깜지를 만드는 것이다.


수업에 충실한 아이들은 진정성 있는 원고를 타이핑해 제출했지만, 나는 수백 개의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어머니가방에들어가시다'를 앞뒤로 쳐서 제출했다. 선생님이 혹여 자세히 보실까 봐 다른 친구들이 제출하는 틈바구니에 끼워내곤 했다. 그러면 수업 시간에는 뭘 했냐고? 나와 같은 몇몇 아이들은 서로 쪽지를 주고받았다. 쪽지가 좀 크긴 했지만 아무 말이나 타자를 쳐서 친구에게 전달하면, 그 친구가 또 그 종이에 타자하고, 이 종이는 몇몇 아이들에게 전달되면서 여러 명의 아무 말이 쌓여 다시 내게 돌아왔다. 타자로 쳤던 아무 말 중 제대로 된 말도 있었다.


이제 다시는 생각 마요 그때 그 일들은 잊어버려요

하늘을 보면 문득문득 그때 생각에 눈물이 나요


기나긴 날들 내 곁을 스쳐도

어렴풋이 남아 있는 그때를 잊곤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은 삶을 살다 보면

가끔씩은 그때 그 친구가 그리워져요


I miss you my friend

I miss you my friend


B.C 603 이승환 오빠의 '친구에게' 가사를 타자기로 쳐서 친구에게 쪽지를 돌렸다.

수업 시간 중에도 내 앞에 있는 친구가 그리웠고, 2분단 둘째 줄에 앉은 친구도 그리웠다.

왜 꼭 수업 시간만 되면 그렇게 그리웠을까?


'말처럼 쉽지 않은 삶을 살다 보면' 이 가사를 그때 내가 이해했을까?

하긴 돌쟁이 때는 직립보행이 말처럼 쉽지 않았을 것이고, 8살 초등학교 들어가자, 선생님이 내 말만 안 들어주는 것 같아 억울했고, 14살에는 원하든 원치 않든 몸이 자꾸 변해 적응하는데 힘들었고, 열여덟에는 어른 흉내 좀 내보려는데 법적으로 미성년이라는 사실이 힘들었다. 알건 다 알았다. 딱 그 나이만큼만.


친구는 그때마다 서로의 응원봉이 되어주었다.

타자 실습실에서 내 시를 받아 준 친구에게 DM으로 말을 걸었다.

"새핸데 우리 함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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