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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서

좌석공유개념을 배우다

by 달게

종로는 시간이 흘러도 퇴색하지 않는 곳 같다.

종로가 핫플레이스가 아닌 적이 있었을까?

오랜만에 가 본 종로는 역시나 였다.

여전히 사람이 모여들어 붐비는 곳.

종로는 다양한 세대가 누리는 공간이다. MZ부터 X세대, 전후세대, 우리 엄마와 같은 해방 전후 세대까지도 만날 수 있다.


1989년 종로도 그랬다. 나와 같은 고등학생, 재수생, 대학생, 취준생, 직장인, 그냥 어른들, 연령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품는 장소가 종로였다.


사실, 종로 가까이 사니까 종로가 제일 좋은 줄 알고 살았다.

그래서 학교와 학원을 제외하고 자주 갔던 곳이 종로 2가였다.


종로 하면 주로 종로서적, YMCA, 금강제화 앞에서 만남을 약속했는데, 나는 종로 2가 맥도날드 앞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날도 맥도날드에서 만났다. 우리는 가장 저렴한 치즈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당시 빅맥은 감히 꿈도 못 꿀 때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알아주는 메뉴가 있어 좋았다. 맥도날드는 갈 곳 없는 십 대에게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주말 맥도날드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3층까지 앉을 자리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자리가 비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길목마다 서 있었다. 우리는 좀 오래 버틸 수 있는 구석진 곳이지만 창이 있어 거리가 보이는 곳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친구와 내가 먹은 치즈버거 세트는 아무리 천천히 먹으려 해도 30분이면 다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우리는 빨대 꽂힌 빈 컵에 연신 바람을 불어넣으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안식처를 좀 눈치껏 이용해야 했는데, 두 시간이 넘자 결국 올 것이 왔다.


직원이 우릴 눈여겨봤었나 보다.

"저희 맥도날드는 좌석 공유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식사를 다 마쳤다면 다른 손님들을 위해 좌석을 비워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앉은 자리 벽면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맥도날드는 좌석 공개념을 지향합니다. 공공의 좌석이니 양보 바랍니다.' 뭐 이런 문구였다.

문장이 정확하진 않지만, '좌석 공개념'이란 단어는 잊을 수가 없다.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우리를 쳐다봤다.

우리는 너무 창피해서 도망치듯 나왔다.

그 후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맥도날드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아지트를 찾았다.


롯데리아!

경희궁 근처에 있는 롯데리아는 사람들 발길이 뜸했다. 점주 입장에서는 좋을 게 없겠지만.

우리에게는 천국이었다.

데리버거 세트는 최애 메뉴였다.

그곳에서는 두 시간도, 세 시간도 좋았다.


이제는 잘 안 먹는 패스트푸드지만, 오늘 저녁 메뉴 맥도날드로 정했다.

빅맥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 이게 빅? 맥이라고?


좌석 공개념을 곱씹으며 스몰 같은 빅 버거를 먹었다.


p.s. 종로2가 맥도날드와 경희궁 부근에 있던 롯데리아는 없어졌다. 종로서적은 자리를 옮겨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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