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명 '키싱 구라미'

영화 쉬리 / 감독 강제규 / 1999

by 달게

영화 개봉 때 극장에서 보고, OTT에서 26년 만에 다시 본 '쉬리'는 나를 1999년으로 데려갔다.

오프닝 크레딧부터 한 시간 정도까지는 출연 배우의 앳된 모습, 과거 서울의 지형, 지물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고 나서는 몸이 비비 꼬이고,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추억여행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싶었는지, 리모컨에 시선이 갔고, 급기야 스킵을 하기 시작했다.


줄거리를 아는 게 병이지, 나는 명현(김윤진 배우)과 중원(한석규 배우)이 서로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장면이 기다려졌고, 그보다 명현의 신분이 언제 발각되는지 궁금했다.


스킵 기능은 극장에서 두 시간 내외의 시간을 버텼던 나의 체력과 정신력을 점점 약화시켰다. 영화에 몰입할 힘을 기를 기회도 앗아갔다. 부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재미없는 영화에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좋은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아낀 시간이 내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십 년을 극장영화를 경험했고, 즐긴 세대로서 ott서비스에 너무 쉽게 물들어 가는 것이 조금은 걱정스럽다. 편한걸 편하게 누리지 못하는 께름칙한 마음으로 영화를 본다.


우리는 시간과 경쟁하며 살고 있다. AI도 결국 광대한 정보를 이용해 시간을 벌겠다는 것 아닌가. 영화에도 당연히 속도가 있다. 어떤 영화는 상영시간을 통틀어 하루를 기록했으면서도 엄청나게 빠른 진행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어떤 영화는 수십 년을 다루면서도 보는 이는 정적으로 보이게 연출하기도 한다. 밥 먹으면 배부르다는 말을 길게 했다. 영화를 전개하는 속도가 있을 것이고, 영화를 보는 매체의 속도가 있을 것이다. 후자는 기술발달과 함께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리고 당대에는 알 수 없는 시대의 속도라는 것이 있다. 시대의 속도는 미래가 현재가 됐을 때, 과거가 된 현재에서 찾을 수 있는 속도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쉬리를 처음 접한다면, 지금의 속도를 기대면 안 된다는 얘기다. 당시의 시간 개념이 투영됐으니 감안하고,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끝까지 재밌게 볼 수 있다.


영화 쉬리는 북한테러범이 남한의 평화를 위협하는 테러행위에 대해 우리 국가기밀요원이 소탕한다는 게 주된 줄거리다. 거기에 언더커버의 로맨스, 요원 간의 브로맨스, 북한 공작원의 악랄한 훈련과정, 그리고 어마어마한 스케일(그 당시)의 폭파 장면이 더해져 영화가 풍성하고 꽉 차 있다. 그때도 그랬지만,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되면 돈 값을 제대로 했다는 생각이 든다. 푸짐하게 뷔페를 즐긴 기분 말이다.


재밌는 포인트를 하나 꼽자면, 총격을 입어 죽는 장면이다. 1999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20세기 죽음 신을 부디 꼭 찾아보기 바란다. 함께 재밌고 싶어 설명은 하지 않겠다.


최고의 관객수, 최초 블럭버스터, 많은 기록을 남긴 쉬리가 재개봉을 넘어 리메이크되면 좋겠다.

지금의 촬영 기술, 연출, 시대에 맞게 각색된 시나리오가 합쳐진다면, 007 혹은 미션임파서블에 버금가는 영화가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영화가 새로운 기준이 될지도 모르지.


리메이크 영화 제목을 생각해 봤다.

'암호명-키싱 구라미'


빰! 빰!- 빰빰!

빰! 빰!- 빰빰!

빰! 빰!- 빰빰!

빰! 빰!- 빰빰!

빠라라~ 빠라라~ 빠라라~

빠밤!

(힌트: 미션 임파서블 메인테마 곡 첫 부분, 한국 액션 영화에 길이 각인될 메인테마곡도 하나 나와준다면...)





대문사진: 영화 '쉬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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