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나서서 한마디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이 나서지 않으려 하며, 그 상황을 피하거나 외면하려 합니다.
동료가 피해를 입고 있어도, 아는 누군가가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못 본 척 해 버리는 경우는 꽤 많죠. 시시비비에 휘말리지 않으며 사는 게 고요하고, 일단 내 신상이 평화로우니까요. 하지만, 이 세상은, 비난 섞인 말 '왜 저래'를 듣더라도, 꼭 한마디를 해서, 불합리함과 부조리함을 알리려는 사람들 덕에, 그나마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꼭 한마디 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 헤로데가,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 결혼을 하자,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는, 굉장히 의롭지만,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을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당대에 굉장히 유명한 예언자였으며, 수많은 제자를 거느렸고, '세례자'라는 이름이 붙은 걸 보더라도, 예수님께 세례를 드린 유일한 인물이니, 그 명망과 권세가 얼마나 컸는지 가늠 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왜! 하필! 왕의 사생활, 가정사, 연애사에 참견했는지, 잘 이해는 안 됩니다.
결국, 왕비 자리를 지키고 싶은 헤로디아는 어떻게든 세례자 요한을 없애려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았음이 여러 문헌에 드러납니다. 세례자 요한이 워낙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라, 심지어 헤로데왕까지 그를 보호해 주었다는 거죠.
그러던 와중에, 그 유명한 세기의 팜므파탈이 등장합니다. 바로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
살로메는 헤로데왕 생일에 과감하고 파격적인 춤을 춰서 헤로데왕과 손님들이 넋을 놓게 만들고, 결국, 헤로데왕은 살로메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청하면 너에게 주겠다'라고 얘기합니다. 심지어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라고 맹세했다니, 헤로데왕은, 아내의 딸에게 도대체 무슨 마음을 먹고 그런 건지 황당하기도 합니다.
살로메는 그 순간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가서 무엇을 요구해야 되냐고 묻죠. 그러자, 헤로디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라고 시킵니다. 그렇게 살로메는 왕에게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주기를 청했고, 헤로데 왕은 몹시 괴로웠지만, 경비병들을 시켜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게 합니다.
이 이야기는 수많은 미술가들에 의해 그려졌고, 뮤지컬, 영화로도 만들어졌죠.
귀도 레니가 그린 그림에서, 살로메가 무심하게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들고 쳐다보는 모습은 섬뜩하게 느껴집니다. 의로운 얘기 한마디 했더니 목이 잘려버리는 상황. 이처럼 진짜 목이 잘리는 게 아닐지라도, 이와 비슷한 일은 우리 사는 사회에서도 종종 일어나죠. '그건 옳지 않습니다'라고 한 마디 했다가, 온갖 비난 다 받게 되거나, 조직에서 쫓겨나거나 하는 일. 의롭다는 건 참 외로운 일인 듯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외롭지만 의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 압니다. 저는 비록 그렇게 용기가 없고 의롭지 못하지만, 그 의로운 사람들이 여러 차례 보여주는 생각과 말과 행동에 귀를 기울이며, 반 만이라도, 반의 반 만이라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의로움에 박수를 보내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하고, 여러차례 말하였다. (마르 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