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고 매일같이 베란다 정원을 들락거리는 일이 시들해지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여름이 문턱에 와있다
무더위가 다가와서 식물이 시들해지는 건지,
내 발길이 뜸해져서 식물이 시들해지는 건지 알 수 없는 요즘.
날씨가 좋을 때는 조금은 늦장 부리며 살림해도 괜찮지만
이렇게 더워지고 나면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 편하다는 걸
살림의 시간이 쌓일수록 깊게 느껴간다
지난주에 다가오는 여름이 무서워서
소창행주를 삶고, 소창수건을 삶고,
세탁기를 청소하며 조금 부지런을 떨었더니
이번 주에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우리 식구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
그래서 가장 아늑하게 만들고 싶은 부엌의 따뜻한 불을 탁, 켜고 나면
차 한잔부터 해야지, 생각하고 들어섰다가도
나도 모르게 눈에 보이는 주방살림을 자꾸만 정리하기 시작한다
살림을 정리한다는 건, 내 마음이 정돈된다는 것.
어쩌면 나는 나를 살림하기 위해 나의 집을 살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작은딸이 좋아하는 보리차를 끓여내어
차갑게 만들어두는 것.
아침마다 큰 딸의 커피 한 잔을 만들어주기 위해
그 아이가 좋아하는 원두를 채워 놓는 것.
나보다 가족의 시간이 조금 더 포근하라고
내 시간을 포개어 감싸두는 시간이
나의 살림의 시작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차 한 잔.
내가 좋아하는 책 한 권.
내가 좋아하는 노래 한 곡.
조금만 여유를 꺼내
나에게도 살가운 인사를 건네는 시간
바로 오늘도 나를 살림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