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은 온기로 기억된다

by 담아든

이제 정말 가을인가 보다

햇살이 거실 한가득 들어오면

더워서 힘들기보다

그 따뜻함이 좋아 자꾸 창가에 머물게 된다

코로나 시절에 해외부터 국내까지 이어지는 생활을 했던 우리는 그 시절을 뼈아프게 겪었다

격리돼서 끼니를 거를뻔 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혹시 떨어질까 무서워서 몰래 눈물짓기도 했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는 그 시간은

밝고 활발한 큰 딸에게서 수학여행이라는 추억을 빼앗았다


어렸을 적부터 유독 많이 아팠던 큰 딸.

혹시 엄마인 나 때문은 아닐까 많이 자책하고 눈물지었던 시절.


해맑게 밝고 싱그러웠던 아이는

그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고 눈 깜짝할 사이에 훌쩍 커버렸다


엄마가 처음이라 늘 서툴렀던 나를

온전히 사랑으로 받아준 나의 보물같은 아이.


외향적인 아이라 첫 수학여행을 준비하는 아이는 너무 기대되고 행복해 보였다

온전히 수학여행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가득해 보여서

걱정이 되어 잔소리도 많이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수학여행이 얼마나 설렜을까


오래전, 집 밖을 나가면 아이가 언제 어지러울지 몰라,

나는 가방 가득 봉투를 가지고 다녔다.

그래서 아이가 혼자 여행을 하게 되면

나의 걱정은 어쩔수 없이 넘치기 시작한다

혹시 몰라 아이의 가방 안에 비상약을 잔뜩 챙겨주고

한구석에 그때처럼 봉투를 가득 넣는다


이젠 엄마품에서 떠나

혼자서도 뭐든지 잘할 수 있는 아이.


그런데 엄마의 눈에는

아직도 늘 아팠던 아가의 모습으로 아른거린다


수학여행 떠나는 날의 새벽


혹시나 속이 불편할까 걱정이 돼서 새벽부터 감자수프를 끓인다


양파를 다져서 중불에서 충분히 볶아내야

수프의 감칠맛이 살아난다


식감이 살아나게 다진 감자를 넣어 살짝 볶아내고


생크림을 넣으면 맛있지만 혹시나 속에 부담될까 봐

우유와 물을 반반 섞어서 뭉근히 끓여낸다


오늘은 호로록 마시기 편하게 조금 묽게 끓여냈다


수프를 저어주며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아이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가 혹시나 그때처럼 아플까 봐

끓여내는 나의 따끈한 수프.

아이는 엄마의 사랑으로 기억하겠지


소금, 후추, 그라나 파다노, 치킨파우더로 간을 하면 완성이다


따끈하게 수프를 담아냈는데

아이는 예쁘게 준비하느라 엄마의 수프를 다 먹을 시간이 없다


남은 건 텀블러에 담아 가면서 먹으라고 보낸다

집 밖으로 나서기 전,

아이는 나를 꼭 안아주며 마지막 잔소리를 한다

"건강하게만 다녀오면 돼"







By Damadun





토요일 연재
이전 03화살림의 빈틈은 나로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