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보다 먼저, 나를 품는 하루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으로
정말 가을인가 싶다가도,
거실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볕은 여전히 따가워서
아직 시원함이 그립기도 한 어느 날,
오전 살림이 끝나면 하루를 지키기 위한 작은 루틴 3가지를 시작한다
매트를 펴고 스트레칭을 한다
몸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는데
나이가 들수록 몸이 무거워지며 어쩌면 마음도 무거워지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팽팽히 당겨졌던 마음까지도 사르르 풀어지는 시간.
조용히 팔을 벌려 하루를 맞이하는 기분을 느낀다.
스트레칭이 끝나면 바로 명상을 시작한다.
보통은 아침 10분 명상을, 때에 따라서는 더 길게 하기도 한다.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기 시작하면
어지럽던 생각들이 물결처럼 잦아든다
호흡에 집중하고 나면
고요함 속에서 그 순간만이 온 마음을 채운다
그렇게 비워진 자리에 평온함이 가득해진다
하루 종일 바쁠 예정인 월요일 오전에는
조금이라도 힘을 내보려고 좋아하는 진한 커피를 한잔 만든다
버튼 한 번으로 단숨에 만들어지는 커피 한 잔보다는
번거롭게 커피 원두를 갈아 드립커피를 만드는 이유는
나를 위해 정성을 쏟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커피 향기가 집 안 가득 은은히 퍼지고
그 온기가 월요일 아침을 감싸고 나면
월요일의 고단한 아침의 시간이 포근해지는 기분이다
진한 커피를 마시면서 하는 세 번째 루틴은 독서.
명상으로 비운 마음에
독서는 무언가를 채우는 느낌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점점 빠르게 느껴지는데
책장을 넘기는 순간은 하루의 속도가 잠시 멈추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의 사유가 내 안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순간.
살림의 무게 속에서도 마음의 자리를 다시 찾아주는 시간이 된다
이렇게 작은 루틴을 지켜내는 이유는
살림의 빈틈마다 채워 넣어야 하는 것이
결국, '나를 돌보는 시간'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기 전에 미리 저녁밥을 한다
오늘은 저녁에 수업이 있어서 아이들 저녁을 차려주고 서둘러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시골 텃밭에서 난 고구마 줄기는 미리 데쳐서 얼려두었던 거라
훌훌 데쳐내서 양념해 볶는다
별거 아닌 나물이 별미인 반찬이 된다
냉동실에 있던 멸치를 바삭하고 달콤하게 볶아내고
아이들이 좋아해서 서로 먹겠다고 싸우는 달걀말이를 한다
결혼하기 전, 남편은 기숙사에 혼자 살았는데
점심을 먹으러 가면 달걀프라이가 나온 곳이 있으면 얼른 달려가 그쪽에 줄을 섰다고 한다
그때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한편으로는 웃기고,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던 기억이 난다.
너무 흔하지만 혼자 기숙사에 사는 사람에겐 언제나 먹을 수 없는 반찬.
그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이렇게 이런저런 요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그래서 달걀말이를 서로 먹겠다고 싸우는 딸들을 낳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커가는 시간만큼 나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언젠가 내 품을 떠나갈 아이들을 위해서
엄마의 시간을 나의 시간으로 조금씩 돌려놓는다
아이들이 떠나가고 나면 텅 비어질 마음을 너무 섭섭해하지 않게
나의 시간으로 채워지길
하나하나 정성이 깃든 육전까지 부쳐낸다
저녁이 바쁜 날은, 자꾸만 손이 더 가는 음식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미안하고 걱정되는 엄마의 마음인가 보다
그렇게 오늘도 집밥에 사랑과 정성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