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늘 넘칠 듯 말 듯 하다가 지나간다.
몸도 마음도, 그리고 나의 다정한 집도.
한 해 동안 미뤄두었던 마음을
한꺼번에 꺼내놓았던 시간들.
이제 고3이 되는 큰 딸이 있어서 그런 걸까.
다른 해보다 조금은 잔잔하고 조용했던 연말.
늘 함께 요리를 하고 시끌벅적했던 파티가
이번에는 조용하게 지나갔다.
모두 바빴던 크리스마스이브,
그냥 지나가면 아쉬울 것 같아서
혼자서 소박하게 요리를 했다.
늦게 올 것 같던 식구들이 연락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저녁 시간이 되자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큰 아이는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당연히 맛있는 것들을 해놨을 거라고 생각하고
테이블에 올려놓을 크리스마스 장식을 사 왔다
함께하기 위해 이렇게 모인 시간은 참 따뜻했다
뜨겁게 보내고 난 뒤의 1월은
어딘지 모르게 비우고 싶어진다
열정의 시간 끝에 오는
잠깐의 쉼표 같은 시간이 아닐까
시작한다는 건,
아마도 비움의 끝에 오는 게 아닐까.
아침에는 라디오부터 켠다.
아주 작은 습관으로 시작하는 하루는 나비효과처럼
하루를 펼쳐내는 힘을 가진다.
소소한 말소리와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와
내 마음을 적시기 시작하면
한 구석에 있는 큰 바구니를 들고
어제의 시간이 남기고 간 물건들을
하나씩 치우기 시작한다.
매년 새해의 다짐을 써놓았던 종이를 꺼냈다
이상하게도 작년 새해에 적었던 다짐들이
올해 내가 해야겠다 생각한 마음과 똑같았다
하고 싶은 것은 늘 같았고,
이뤄내고 싶은 것도 늘 같았다.
두꺼운 플래너가 아니라
종이 한 장에 올해의 모든 시간을 담아보기로 한다.
너무 많은 목표와 너무 많은 다짐들에게 허덕이며
스스로에게 다그치고 채찍질하는 시간이 아니라
작고 소소한 행복들을 지켜내고
나만의 속도로 버텨내 보는 시간을 가져보련다
가볍고 유쾌한 출발,
그 신남에 잠시 마음이 소녀처럼 설렌다.
방학과 함께 시작된 1월은
쉽게 루틴이 흐트러지기 쉽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집에 머물다 보니,
정리를 해도 금세 어질러진다.
예전에는 이런 모습들이 참 버거웠다.
단정하지 못한 집을 보며 나의 체력을 한탄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의 시간이 무르익고
그만큼 다정한 집도 나이가 들었다
그만큼 집의 얼굴이 느리게 바뀐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집도 함께 시간이 흐른다는 걸 알지 못했다.
어질러진 집의 풍경조차 그 시간 속의 한 추억이었음을 이제 서서히 깨닫게 된다
너무 완벽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게 내가 1월 이맘쯤 가져야 할 마음가짐.
흐트러진 집의 풍경 또한
아이들과 함께한 열정의 시간임을 잊지 않는다.
아침의 풍경을 즐기며 바구니에 전날의 시간을 담는다.
그게 내가 하는 최소한의 정리다.
깔끔해지지 않는다고 해서
스스로를 너무 야단치지 않는다.
그 마음 대신 아이들의 시간에서
얼마나 사랑스럽고 얼마나 행복한 얼굴을 했었는지를
한 땀, 한 땀 떠올리며 마음에 새긴다.
아직도 12월을 떠나보내지 못한 나의 부엌.
군데군데 열렬하게 뜨거웠던 이야기를
여기저기 남겼다.
1월이 되자마자 하나씩 정리를 시작한다.
잠깐 숨 고르고, 어제의 먼지를 털어내면
나의 부엌은 다시 고요해지고
그만큼 마음도 단단해진다.
애써 모른척했던 낡은 살림살이도
1월이라는 핑계로 슬그머니 바꿔 들여놓는다.
아무리 다른 좋은 것들을 사두어도
자꾸만 헌 나무 수저를 집어드는 식구들.
매번 잔소리하다가 이제는 내가 깃발을 들어 버렸다.
우리집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와 큰 딸.
이런저런 책이 읽고 싶어서 한참을 찾아보고 있는데
큰 딸도 요즘은 철학책이 읽고 싶다 한다.
1월에는 모두의 마음 속에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
꿈틀대는지도 모른다.
매번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 다짐만 했지,
한번도 깊게 느껴보겠다는 생각은 안해본 것 같다.
중요한건 양과 속도보다 깊이였는데,
어쩌면 오랜 시간동안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달려 왔는지도 모른다.
올해에는 적은 책을 읽더라도 여운을 느끼면서 읽어보기로 다짐해본다.
1월이면 매년 떠나는 우리집 '쉼표 여행'
작년 한 해를 되돌아보고, 다음 한해를 다짐해보는
우리집만의 여행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던 것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 시간이 쌓이고
우리집의 가장 중요한 행사가 되어버렸다.
엄마는 빈 공간이 가득한 종이와 펜을 준비하고
아빠는 작년의 시간을 모은 사진을 준비하고
아이들은 시간을 함께할 설레임을 준비한다.
유독 바쁜 요즘, 모두의 시간을 쪼개
어렵게 온 쉼표여행.
작년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사진을 함께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떤 점이 참 좋았고,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금방 깨닫게 된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지 않아서
사진 한 장, 한 장에 우리는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아쉬워한다.
가족이라는 건,
시간을 함께하는 것.
사람들이 가끔 궁금해한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지난 나이에도
어떻게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지.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을 곰곰이 하다보면
내가 힘들었던 시간이 남편이 힘들었던 시간이었고
곧 아이들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함께 힘들었던 시간에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는 것으로
의지하며 이겨냈다.
그 어려움을 알아주는 것만으로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건 아닐까.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는 건,
그만큼 더 잘 이해하고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미안한 일이 생기면
아이들의 두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엄마가 어제는 너무 미안했어.
앞으로 엄마가 그렇게 안하려고 노력할게."
사랑스러운 일이 생기면
"정말 사랑해."
라고 진심을 다해 외쳐주는 일.
비록 커다란 바다에서 작은 조약돌을 던지는것만큼
사소하게 작은 일이라할지라도
작은 일렁임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너의 마음에 나의 사랑을 알려주고 싶다.
우린 1년이란 시간이 지나면
또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있을까.
소란하고 화려한 날들이 오지 않는다해도
어제와 같은 모습처럼 내일이 그렇다해도
지금의 날들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리고 함께할게.
늘 그랬던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