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에서 시작하는 겨울 살림

by 담아든

언제나 한결같이 느껴지는 살림에도 1월은 있다.

느리게 흘러가는 나의 집은 작은 행주를 만드는 일처럼 사소한 것으로 시작한다.

내 손 끝부터 시작하는 나의 살림.

그래서 그 작은 출발도 손수 만들어서 시작한다.


아마 빨갛고 동그란 토마토 무늬의 행주로

구석구석 닦아낼

일 년 동안의 나의 작은 부엌.

아마 올해의 부엌은 토마토 무늬로 기억될 것 같다



방학이 시작되면 작은 부엌은 다시 분주해진다.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식탁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차려졌다 치워진다.


방학이 시작되기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부엌에서 보내다 보면

새해가 되어했던 많은 다짐들이

피곤함에 물들어 어느새 퇴색해버리고 만다


아이들과 보내는 수많은 방학을 지나오며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치지 않게 밥을 하는 것'


엄마의 리듬은 집의 리듬이고

그것이 곧 아이들의 리듬이 된다

엄마가 지치면 집이 지치고

그것이 곧 아이들이 지치게 된다


아이들이 커나가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고

그것에 발맞춰서 살림도 조금씩 변화한다.

아이들이 혼자 꺼내 먹을 수 있게 미리 요리를 준비하고

아이들이 요리할 수 있게 미리 재료들을 준비한다



조금이라도 부엌의 시간을 줄이려면

미리 소고기 육수를 만들어두고

순식간에 맛을 낼 수 있게 맛간장을 만든다

간장이 너무 맛있어지니,

작은 딸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간장달걀밥을 혼자 해 먹었다.



모든 요리가 그렇듯,

언제나 실패를 경험하는 순간이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

아이들의 옷을 만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하고

살림과 육아에 온 힘을 다하던 시절.

커다란 솥에 간장을 끓이다가

설탕을 태워 맛간장 만들기에 실패했던 적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육아만 해도 지치던 시절이었는데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 맛간장까지 만들었던 건지.


아마도 큰 아이가 아파 잘 먹지 못했던 것이

엄마인 내 탓인 것만 같았던 작은 죄책감이

큰 돌덩이가 되어

내 마음에 들어앉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자란 만큼 내 마음이 자라고 나니

온통 아이와 살림으로 뺵빽했던 나의 가슴이

조금씩 비워졌다

한 끝의 여유도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그때의 나는 아이들에게

인색하게 맑은 마음을 보여주지 못했던 건 아닐까

요즘은 작은 후회가 되어 한편에 흘러간다.


모든 게 내 마음에서 나온다는 걸

일찍 깨달았더라면

조금은 게으름을 부려 내 마음을 토닥였을 텐데.


너무 잘 해내려다 보면 금세 지치고

여유를 잃은 집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진다.

이제야 깨닫게 된 나는 살림 사이사이에

나만의 작은 쉼표를 꾹꾹 눌러 담는다.



잠깐의 따뜻한 차 한 잔,

아무 생각 없이 창 밖을 바라보는 몇 분,

소소하고 작은 나만의 여유.


연말에는 동생이 집에 다녀갔다.

나이가 들며 유행과는 서서히 멀어져 감을 느끼다가도

작은 선물에 크리스마스 선물 받은 아이처럼

발그레 기쁜 마음이 든다.


요즘 이게 뭐 그렇게 난리일까.

너무 달 것만 같아 작은 조각으로 잘라 입에 넣으니

생각과는 다르게 바삭바삭 맛이 있다.

아, 그래서 아이들이 그리도 좋아한다는 거구나.



초콜릿이 가득한 간식들 사이에

엄마의 잔소리가 담긴 간식도 슬그머니 놓는다


오이를 갈아 소금에 절여 꾹 짜내고

그릭요구르트와 섞어 만드는 차지키 소스.


초콜릿이 가득한 쿠키를 이겨내지는 못하지만

사랑을 가득 넣었으니 아마 조금은 더 맛있을 거야.


편식이 심한 작은 딸에게는

겨울 과일로 간식을 준비한다.


달콤한 딸기가 순식간에 없어지는 마법이 시작된다.

딸기가 달콤해질수록 점점 깊어지는 겨울.


문득 나의 어린 시절,

겨울방학이면 긴 겨울 간식으로

엄마가 사다 둔 귤 한 박스.

따뜻한 이불속에서 하나씩 껍질을 까먹던 귤이

얼마나 달았던지.



까만 어둠이 집 안으로 들어와서

부엌까지 삼켜버릴 때가 되면

애써 불을 밝혀

지친 살림을 붙들지 않는다



내가 정한 나의 퇴근 시간.

내일의 살림을 위해 깔끔하게 부엌을 정리하고


오늘 첫 출근한 토마토 행주를

살뜰하게 빨아내어 물기를 꼭 짜낸다


새하얗게 시작될

내일의 또 다른 나의 살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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