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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ke J Oct 13. 2017

가난한 예술가의 사랑

낙원의 가족 - 이중섭

그림에 관해 설명하고자 하면 화가의 생애를 빼놓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은 곧 화가의 일생에서 발현된 정신이며 가치관이다. 또, 그림에서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고, 화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그 예로 이중섭의 은지화를 보면 어떠한 삶을 살았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중섭은 종이를 살 돈이 없어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릴 정도로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빈곤한 삶을 살았다. (마치 가난한 예술가 고흐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가난하다고 사랑을 못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만 있으면 어디든 그렸던 이중섭의 창작 욕구와 열정은 예술혼의 상징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중섭이 그린 여러 은지화 중 「낙원의 가족(Family in paradise)」이라는 은지화는 현재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서 소장하고 있다. 1955년 이 작품은 서울에서 열린 이중섭 개인전에 출품되었다. 당시 이중섭의 작품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미국 문화공보원장 아서 맥타가트는 3점의 은지화를 구입해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 기증하였고, 그중 하나가 「낙원의 가족」이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현대미술관 중 가장 알아주는 미술관으로 즉, 은지화가 이 미술관에 소장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중섭의 그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이중섭은 300여 점에 달하는 수많은 은지화를 그렸다. 은지화는 이중섭이 직접 창안한 기법으로, 담배를 싸는 종이에 입혀진 은박에 뾰족한 도구로 그림을 그리고 긁힌 부분은 음각이 되어 그 위에 물감을 다시 바르고 닦으면 물감이 파인 부분을 메꾸는 방법으로 작품이 완성된다.


독특한 방법으로 그려진 은지화는 이중섭의 생활고를 대변하는 그림이기도 하지만 그가 소망하는 삶이 나타나기도 한다. 대부분의 은지화에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비, 새들도 등장하는데 이 모습은 서로 부둥켜안고 얽히고설켜 행복하게 뛰어노는 모습이다. 또 다른 은지화에는 눈을 감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듯 꼭 안고 있는 모습도 있다. 그림에 비치는 모습들은 이중섭의 헤어진 가족을 떠오르게 한다. 한국전쟁 이후 가난한 생활고로 인해 헤어진 부인과 두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다시 만나기를 소망했던 모습이 나타난다. 우리에겐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 화가 이중섭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상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을 한 보통사람이라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그 어느 것도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바라는 평범한 삶,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는 삶을 그리는 것이 그에겐 가난보다도 더 중요했을지 모른다. 그는 은지화를 밑바탕으로 거대한 벽화를 그리는 것이 꿈이었다. 비록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은지화를 통해 가족을 한없이 사랑했던 따뜻함 느낄 수 있고, 궁핍한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예술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세상에 나만큼 자신의 아내를 광적으로 그리워하는 남자가 또 있겠소.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또 만나고 싶어서 머리가 멍해져 버린다오. 한없이 상냥한 나의 멋진 천사여!! 서둘러 편지를 나의 거처로 보내주시오.
-1954년 11월 10일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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