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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농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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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언화가 Apr 10. 2023

벌써 1년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야

농사를 시작한 지 벌써 1년.

엄밀하게 말하면 11개월이다. 지난 4월부터 시작해 내 땅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된 것이다. 땅을 가졌지만, 빚도 가졌다. 남들은 영끌을 해서 아파트를 산다지만, 나는 영끌해서 땅을 샀다. 금리가 올라가는 시대에 빚의 무게도 무거워졌다. 이런 번외 편의 이야기는 뒤로 두고, 우여곡절 많은 농부의 삶이 벌써 1년이나 되었다. 


1주년에 해야 하는 건, 밭을 정비하는 거다. 이번에는 돼지감자를 심기로 했다. 겨우내 숨어든 잡초의 뿌리를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잡초 제거라고 하면 하나씩 풀을 제거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한나절도 안 지나 무릎이 아작이 날 것이다. 잡초와 모든 잡동사니들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갈아엎는 거다.


농사의 시작은 지난 시간의 흔적을 없애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 홀로 밭을 정비할 수는 없으니 이웃집 아저씨께 도움을 요청한다. 아저씨로 말할 것 같으면, 없는 농기계가 없는 대농이시다. 그러기에 마을 사람들이 예약을 하기 전에 먼저 일정을 조절해야만 한다. 밭을 평평하게 하고, 두둑을 올리고 비닐을 씌우기 위해 일정을 맞추었다. 이 모든 과정은 기계로 가능하다. 비닐을 씌우는 것도 모두 기계로 가능하다. 농사짓기가 예전보다 편해진 이유다.


로터리 치기를 하는 날. 부모님과 함께 온 가족이 밭으로 출동한다. 아저씨께서 밭을 갈아주시기 전에 틈틈이 심어둔 쪽파를 캐낸다. 땅을 평평하게 하고, 두둑을 만든다. 두둑에 비닐을 씌운다. 첫 해에는 낯설었던 것들이 이제는 익숙해진다. 뭐든 익숙하면 능숙해지는 거다. 


농사를 지으며 생각해야 하는 건, 지난해 결과에서 얻을 것은 얻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것이다. 지난 것에서 교훈은 얻되, 미련을 두지 않는 것. 그걸 기념하듯 밭을 모두 갈아엎었다. 이제 새것이 된 땅에 새로운 걸 심는다. 일 년의 농사 중 가장 기분이 좋으면서도 설레는 순간이다.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벌써 1년.

1년마다 필요한 건 새로운 마음을 갖는 것이다. 마치 갈아엎은 땅에 새로운 농작물을 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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