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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언화가 Dec 06. 2022

농사일기] 인심(人心)과 인심(忍心) 사이

아직 배우는 중입니다.

지난 주, 1000포기라는 격한 김장 탓에 일주일간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을 맞이했다. 배추를 자르고, 절이고, 씻고, 양념을 하는 모든 과정 속에서 생전 써보지 못한 근육들이 제 몫을 하느라, 아우성을 친 것이다. 잠을 자도 씻기지 않던 피곤은 약 1주일의 시간이 지나서야 서서히 풀려갔다.


피곤이 사그라들 쯤, 밭으로 향했다.

김장 때, 너무 작아 뽑지 못한 배추들을 정리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배추가 모두 사라졌다. 크기가 작은 배추들이 분명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모두 사라져버렸다. 배추들이 제 발로 걸어나갔을리는 없다. 몇 십 포기는 족히 될 만한 배추들이 고스란히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배추에 대한 아쉬움도 그 자리에서 비웠다. 이곳에 살기 위해서는 그러려니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시골 인심이 후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후한 시골의 인심을 믿어보기로 했었다. 하지만, 이곳에 온지 2년.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시골 인심이 있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어디까지 마음을 비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번 배추 사건도 그렇고, 지난 고구마 일도 그렇다. 올 가을, 밭에서 고구마 작업을 하다가 지나가시는 동네 할머니께 고구마 한 봉지를 드렸다. 그리고 밭을 지나가시던 다른 할머니께는 고구마 한 상자를 드렸다. 한 봉지와 한 상자라는 용기의 차이 때문에 할머니께 혼이 났다. 일부러 양의 차이를 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고구마를 담을 수 있는 게 상자와 비닐뿐이었다. 비닐에 고구마를 담아가신 할머니께서 보행기에 고구마 상자를 싣고 오신 다른 할머니를 보고 따지러 오신 거다. 이유는 왜 자신을 덜 주었냐는 거다.


"... 그럼, 더 가져가실래요?"

"그려, 더 줘야지!"


고구마는 어떤 보상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간식으로 드시라고 드린 선물이었다. 선물을 드리고, 이토록 혼이 난 건 처음이었다. 상추와 미나리를 심은 텃밭이 공공의 텃밭이 되는 일도 다반사다.


텅 빈 배추밭을 보며, 시골 인심에 대해 떠올려 본다. 어쩌면, 내가 이곳에서 배우게 되는 건, 시골 인심(人心)이 아니라 참는 마음인 인심(忍心)이 아닐까?!


배추에 대한 마음을 글로 담고 있는 나를 보며 시골 생활 7년차에 접어든 엄마가 한 마디 덧대신다.


"그러려니 하며 사는 거지.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난 아직 인심(人心)과 인심(忍心)에 대해 배울 게 많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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