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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Sep 10. 2019

감나무 흔들기

무당이 말해준 비답

모든 직장인에게는 369법칙이 존재한다는 말이 있다. 과학적 법칙이 아닌 사회적 법칙에는 항상 예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법칙은 정말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어느새 직장인이 된 지 10년 차. 올해를 지나면 진짜 10년을 채우게 된다. 지난 10년간 나는 3년, 6년, 9년마다 회사생활의 위기를 경험했다. 아니 경험하고 있다.


회사 생활을 돌아보면 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프로듀스 꼰대 101이 생긴다면 Top11안에 랭크가 될 만한 팀장을 만났지만 1년을 견디니 그가 승진을 해서 다른 부서로 넘어갔다. 싫어하는 사람의 승진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내심 망하기를 바랐는데) 10년 직장 생활 중 1년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간이 아니어서 그런가. 꼰대는 내 회사 생활을 아주 잠시 힘들게 했을 뿐, 날 위기로 몰아넣지는 않았다.


좋은 선배, 후배, 동료들을 만났고 회사 문화도 좋은 편이어서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는 참을 만했다. 하지만 업무를 계속하다 보면 날 괴롭게 하는 것들이 반드시 하나씩 생기곤 했다. 3년 차에는 업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겪는 일들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했다. 내가 열심히 해서 바꿀 수가 없는 외부 요인이었기 때문에 더 했다. 처음부터 이런 스트레스는 있었지만 매번 잘 넘기며 지내왔는데 3년 차가 되니까 이 스트레스가 깊은 피로감으로 변했다. 내가 하는 업무가 많은 장점이 있고 심지어 내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지만 그 요인 하나 때문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었다. 그렇게 턱 밑까지 퇴사 욕구가 올라왔을 때, 회사는 나를 본사로 발령을 냈다.


6년 차에는 육체적인 피로가 심했다. 본사는 강남에 있었고 집은 인천이었는데 출퇴근이 왕복 4시간이었다. 처음 1년은 힘들지만 다닐만했고 2년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정시퇴근을 해도 집에 오면 9시가 되어 기절하기 일쑤였다. 3년이 되었을 때에는 진지하게 자취를 고민했다. 나는 돈을 모으기 위해 자취 대신 통근을 선택했었는데 돈 모으려다가 내가 죽을 것 같았다. 월급으로 월세를 낼 생각을 하며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회사가 본사를 이전해 버렸다. 편도 1시간 거리로. 만세!


남들처럼 3년 차, 6년 차 때 큰 위기가 왔지만 그때마다 의도치 않게 나를 둘러싼 환경이 변화했다. 3년 차에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업무를 맡아서 스트레스 요인을 제거할 수 있었고 6년 차에는 회사가 본사 건물을 바꿔버렸다. 누군가에게 요청하지도 않았던 일이 생겨서 자연스레 나의 위기는 사라졌다.


그리고 9년 차였던 작년,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이번 위기는 나에게 회사 생활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 내가 취직을 하기 전 생각했어야 했던 것. 아니면 신입사원일 때 빨리 결론을 내렸어야 했던 것. 이 일이 나에게 과연 잘 맞는가? 대학 갈 때도 내 적성을 몰랐는데 취업할 때 알 리가 있나. 알았어도 취업난에 우선 꽤 괜찮아 보이는 회사에 붙었으면 다녀야 하는 거다. 그때는 그랬다. 아마 다시 돌아가더라도 날 유일하게 합격시켜준 이 회사에 들어왔을 것이다.


적성에 맞지 않은 일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이제는 업무는 능숙하게 하지만 그저 일을 쳐낼 뿐, 즐겁고 보람 있지가 않다. 3,6년 차 때 그런 것처럼 환경이 변했으면 좋겠는데 그러기엔 나는 더 이상 신입사원이 아니다. 회사를 10년을 다닌 나는 어느덧 중간관리자가 되어 한 파트를 책임지고 있다. 내가 쌓아 올린 전문성을 포기하고 다른 부문으로 가고 싶어도 실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파트장을 누가 받아주나? 이럴 땐 다른 부문에 내가 공들여 닦아놓은 일명 '라인'이 하나 있어야 하는데, 업무 외 의전은 숙맥인 나에게 그런 게 있을 리가.


문제는 이 위기 상태가 1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이 바뀌지 않으니 위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이직? 아니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난 이 일을 더 이상 하기 싫어. 그만두고 1~2년 정도 공부를 해서 직업을 바꿔볼까? 매달 내야 하는 아파트 대출금은 어쩌고. 진퇴양난이다. 이번 위기는 회사의 문제가 아니다. 직업의 문제다. 10년 간 경험한 이 직업이 이젠 싫다. 난 어떻게 해야 되나요?








그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점집을 찾았다. 우스운가?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특별히 점에 대해 부정적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집을 찾아갈 정도로 긍정적이지도 않았다. 아마 절박함이 없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인생에 큰 위기가 몇 차례씩 왔지만 내가 노력해서 극복하거나 3,6년 차처럼 때에 맞게 환경이 변해 벗어날 수 있었다. 이번 위기는 내가 무엇도 선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1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다. 회사일이 싫어지니 매사에 의욕이 사라진다.


생전 처음 가본 점집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소형 아파트였다. 아주 용하다며 친구가 추천을 해주었는데 오피스텔 같아 보이는 아파트 문이 열리니 생각보다 젊은 여자가 나를 반겨주었다. 40대 초반 같아 보이는 여자의 집은 꽤 평범해 보였다. TV에서 보면 다들 이상한 화장과 화려한 한복을 입고 있던데, 수수한 얼굴에 옷차림도 평범했다. 큰 창문으로 석양의 색이 아주 잘 보이는 집 한구석에 자그마한 신당이 있었다. TV에서 보던 것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처음 경험하는 내게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그 집에는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다. 나도 고양이와 함께 사는 집사인지라 왠지 모를 친근감이 들었다. 한 마리는 러시안 블루로 그분이 점을 치는 동안 내 앞 탁자에 앉아 신비로운 파란 눈으로 날 응시했다.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석양빛을 온전히 받고 있는 방 안에서, 무당이 키우는 고양이가 나른하게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 그 와중에 날 향해 조용히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 바람이 이 몽환에서 날 현실로 끌어내렸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점괘는 좋은 것도 있었고 나쁜 것도 있었다. 좋은 것은 정말 좋았고 나쁜 것은 정말 나빴다. 하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었지만 하나는 원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녀는 나의 기질과 타고난 운명을 보아하니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말을 덧붙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공부하고 노력해야 해"


무당의 입에서 인생을 위해 계속 노력하라는 말을 듣다니.


"네가 지금 느끼는 이 무기력함은 꽤 오랫동안 계속될 거야. 그걸 잘 넘기면서 지나가야 해. 그러면서 계속 준비하고 있어야 해. 그래야 기회가 올 때 잡을 수 있어"


아.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고 있으면 감이 떨어져? 나무를 흔들어서 따먹어야지!"


아.


이상하게도 그 순간, 위로받은 느낌이었다. 점을 본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내 인생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건, 점집을 찾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도 점집을 찾은 것은 막막했기 때문이다. 앞뒤, 양옆이 벽으로 꽉 막혀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날 모르는 누군가가 내가 결국 원하는 걸 얻게 될 거라고 확신에 가까운 어조로 "그걸 얻기 위해서 노력해"라고 말을 해주었다. 여전히 길은 없고 막막한데 불편했던 마음속이 가라앉았다.


하고 싶은 게 있지만 지금 이 현실을 박차고 나갈 용기는 없는 나에게 누군가 할 수 있다고 말을 해주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끝내는 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아마 나는 이 말을 원했던 것일까. 내가 갖고 있던 이 답답함은 누가 섣불리 조언을 해주기도 애매하고 내가 나 스스로를 타일러봐도 상투적인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일이 힘들어? 취미를 가져보자. 일이 하기 싫어? 그럼 다른 공부를 하며 미래를 준비해보자. 근데 일 끝나고 집에 오면 파김치야. 과연 공부를 꾸준히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과 의심들이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나를 계속 자극했다.


점집을 다녀온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해주었다. 그들은 내 점괘에 신기해하면서도 무당의 말이 너무 막연하다고 얘기했다.


"진짜 네가 그렇게 된대? 그래서 그렇게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하래?"

".... 계속 공부하래"

"에이, 그게 뭐야"


사람들은 점을 보면 '정답'이 바로 딱 나오길 바라나? 난 처음이라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난 '점'이라고 하는, 우리의 운명은 사실 정해져 있다는 개념을 그다지 믿고 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점을 보는 내내 즐거웠다. 무당이 풀어주는 나의 먼 미래가 비록 내가 원하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흥미진진했다. 이왕이면 나쁜 것이 사라지고 좋은 것만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그래도 감나무를 열심히 흔들며 그 인생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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