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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Jun 22. 2021

둥지에서 나온 다큰고라니

30s 독립일기


"나 집 구할 거야"



부모님께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것은 허락이 아닌 통보였다. 엄마 아빠는 황당한 표정이었다. 그간에 몇 번 독립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꺼냈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당황한 것 같았다. 그에 비해 나는 자세한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으면서 당당하게 통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대학생 때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했으며, 10년 이상 직장생활을 한 30대이기 때문이다.



이직하면서 통근시간이 편도 1시간 반이 되었다. 힘들긴 하지만 할만할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몇 년 전에 강남-인천 통학을 3년 동안 한 경험이 있었다. 왕복 4시간 거리에 비하면 왕복 3시간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내 나이였다. (...) 강남-인천을 왕복할 때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20대였다. 아마 그래서 버틸 수 있었겠지. 하지만 30대가 되어서 할 짓은 못되었다.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느끼다가 난 충동적으로 결심했다. 자취하자.



하지만 자취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우선 나는 집에서 부모님과 사는 게 편하다. 평생 맞벌이를 하신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 결정하고 혼자 진행하는 것이 익숙했다. 그런 나를 부모님은 인정하고 존중해 주셨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내가 다니고 싶은 학원이 있으면 부모님께 통보한 뒤 학원 등록을 하러 가는 아이였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독립하자 부모님은 나에게 잔소리도 별로 하지 않으셨다. 나를 성인으로 인정해서인지, 알아서 잘한다고 믿어서인지, 말을 해봤자 고집이 세서 들어먹질 않을 거로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마지막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



집에서 엄마가 따스한 밥 해주지, 청소와 빨래도 해주시지, 부모님은 잔소리도 안 하시지, 솔직히 독립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런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오로지 교통체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을 결정했다. 그리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솟아올랐다.



자취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 직방 앱 내려받기. 직방에서 내가 살고 싶은 동네 몇 군데를 설정하고 예산을 설정한 뒤 집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실망했다. 나름 돈도 열심히 모으며 직장생활을 했는데 내가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집은 이 수준밖에 안되는 것인가. 월세 살기는 죽어도 싫으니 전세를 살아야 하는데 모은 돈을 탈탈 털어도 대출은 필수다. 어쨌든 대출을 최대한 적게 받기로 하고 최소한의 예산으로 방을 둘러본다.



친구들에게 이제 자취를 할 거라고 선언하자, 친구 중 현 자취러가 조언을 해줬다. 자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꿀 같은 정보였다.



1. 부동산을 가라. 직방은 아무 쓸모 없다. 진짜 좋은 매물은 직방에 올라가기 전에 나간다.

2. 부동산에 가서 네 예산을 다 말하지 마라. 1억을 얘기하면 1억2천을 보여주며 유혹한다. 예산의 80% 수준을 이야기해라.



집을 진짜로 구해보니. 결과적으로 두 가지 모두 다 맞는 말이었다.



에피소드 하나.

직방을 통해 부동산 업자에게 연락해서 집을 보기 시작했다. 이 일도 만만치 않았다. 회사와 집이 멀다 보니 주말에 회사 근처까지 갈 수가 없었다. 아니 갈 수야 있지만 가기 싫었다. 그래서 일이 끝나자마자 튀어나가서 집을 보러 다녔다. 몇 명의 부동산업자를 만나고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동산업자를 선택했다. 나랑 동갑인 젊은 남자 중개인이었는데 친절하고 적극적인데 요즘 사람답게 선을 지켜가면서 영업을 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부동산 업자들의 목표를 어쨌든 집을 중개해서 돈을 버는 것이기 때문에, 개중에는 빨리 결정하도록 종용하고 유도하는 때도 있다고……. 말만 들었지. 실제로 경험할 줄이야.



부동산 업자와 집을 보러 다닐 때였다. 요즘에는 부동산끼리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임대인 부동산과 임차인 부동산이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때도 다른 부동산에서 가진 매물을 보기 위해 부동산업자의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그때 상대방 중개인이 내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운전을 하던 중개인은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손님 모시고 가고 있습니다. 5분 이내에 도착합니다."

"어어 여기 근처에 있으니까 오면 연락해줘요. 이 집 괜찮아"

"네 그렇습니까. 거기 !#$@%가 있나요?(대충 건물 하자 문제에 관해 물어봄)"

"우선 와 보세요"

"아 네. 손님이 좀 명확히 알고 싶어 하셔서요"

"아 우선 보여주고 잘 꼬시면 되지. 집 한두 번 팔아봐. 일 진짜 못하네!"



중개인은 순간 당황하더니 얼른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옛날 분이라 좀 그러신 거 같아요."

"그렇네요. 요즘 사람들 이런 거 싫어하는데"



이런 걸 다 들었는데 그 집이 마음에 들 리가 없지.


사실 그때 본 집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시작부터 선입견을 품고 보니 단점이 다른 집보다 더 세세하게 눈에 들어왔다. 결국, 다른 집을 선택했다.



고르고 골라 집을 구하고 싶었지만, 선택지가 많이 없었다. 나는 전셋집을 구하고 있었고 전셋집은 나오기 무섭게 계약이 체결됐다. 보고 고민할 시간이 없다. 두 세 개 집을 가지고 저울질할 시간도 없다. 매물이 나왔다. 뭐 딱히 좋진 않지만, 딱히 나쁘지도 않다. 그러면 계약을 해야 한다. 1~2시간 망설이면 바로 다른 사람이 채간다. 정말 마음에 들었던 한 집을 그렇게 날리고 나서야 빨리 선택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친구 조언 1은 참 맞는 말이다. 직방에 올라오지 않는 매물들이 참 많더라.



그리고 집을 여러 개 보다 보니 눈이 높아진다. 중개인은 내 예산에 맞춰서 집을 보여주는데 매물이 많이 없다 보니 내 예산을 조금 초과하는 집도 보여주겠다고 한다. 나도 집을 한번 보고 싶으니 집을 보러 가본다. 역시 돈 백이라도 더 붙은 데가 더 좋다. 그러다 보니 내 예산을 초과한다. 처음 생각했던 금액보다 훨씬 큰 금액인데도 삶의 질이 눈에 보이는데 더 낮춰서 갈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친구가 한 조언 2번은 너무나 맞는 말이다. 내 예산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집 저집 보다 보면 결국 개중에 제일 크고 좋은 집을 선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내가 원한 입지에 내가 원한 크기의 집을 구했는데. 예산은 한참 초과했다.



계약할 때도 어찌나 긴장되던지. 전세라 금액이 높고 또 어떻게 알았는지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게 전 세사기에 대해 알려주기 시작했다. 네일도 어찌나 자극적이던지. 계약금 백만 원을 걸어놓고도 끊임없이 확인하고 되새겨보고 불안에 떨었다. 이게 사기면 어떡하지? 이런 상식은 당연히 알면 알수록 좋은데 한편으로는 아니까 더 불안했다. 이제 자취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95%는 마음을 놓았지만, 나머지 5%의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에 있다. 이래서 사람은 내 집에 살아야 하나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가서 계약하고 왔다는 말을 꺼냈을 때, 엄마 아빠는 착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많아 보였다. 사기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반, 드디어 애가 독립을 하는데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느낌 반인 것 같았다. 내 성격대로 한번 결정하면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독립을 서두르는 것 같아서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집을 구한 것이 끝이 아니다.


집을 구한 것은 시작일 뿐이고. 자취를 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은 무궁무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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