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의 추억 : 마의 구간 넘기
몸매만큼은 물개
30대 초반을 지나면서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하다가 포기하는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 말고 정말 즐겁게 취미 삼아 할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직장인이 취미로 꾸준히 운동하기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다. 물론 헬스나 필라테스는 돈을 내고 내가 꾸준히 나가기만 하면 되지만, 일단 그 `꾸준히`가 정말 함들다. 퇴근하면 안 그래도 힘든데 굳이 지루한 운동까지 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은 대부분 누군가와 함께하는 운동이다. 배드민턴, 테니스, 서핑, 스키 등등. 요즘에는 소모임 앱이 잘 되어 있어서 동네마다 이런 모임들을 잘 찾아서 나갈 수 있다던데. 태생이 아싸인 나에게는 무리다. 낯선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어색하게 웃고 친해지려고 오바육바쌈바를 추는 나의 모습. 상상만 해도 불편하다. 이런 소모임에는 차가 필요할 때가 많은데 아직 차를 사고 싶지는 않은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심각한 운동치라는 거다. 몸이 삐거덕거려서 무슨 운동을 하든 잘하지 못한다. 남들과 함께 운동할 땐 다른 사람과 어느 정도 실력을 맞춰야 한다. 안 그러면 다른 사람들을 나를 배려해주고 기다려주면서 운동하게 되는데, 모임 속 민폐쟁이가 되는 것은 너무 끔찍했다.
그래서 낸 타협안이 수영이었다. 마침 회사 근처에 꽤 괜찮은 수영장이 있었다. 이 몸에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는 게 부담이었지만 수영장에서 누구에게 잘 보여야 할 것도 아니고, 매번 러닝머신에 올라타서 지루하게 걷는 것 보다는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더 재밌을 거 같았다. 거기에 살도 빠지는 건 덤이고.
초급반에 등록하고 월, 수, 금 회사가 끝나자마자 수영장으로 뛰어갔다. 발차기부터 시작해서 귀에 팔을 딱 붙이고 옆으로 누워서 앞으로 나아가기, 팔 돌리기 등등 자유형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초급반에서 자유형, 배영, 평영까지 배우고 2달 만에 중급반으로 올라갔다. 초급반에서부터 같이 시작한 사람들과 안면도 익혀서 같이 레인에 줄을 서며 스몰 토크를 하는 여유도 생겼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의지로 시작한 운동. 나는 수영을 하면서 운동이 내 몸에 발휘하는 영향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수영장은 레인이 50m였는데 한 30m까지는 발이 땅에 닿고 나머지 20m는 상급자용 코스로 발이 닿지 않는다. 중급반 초기까지는 매번 30m까지만 왕복을 했는데 어느 날, 강사님이 한 번에 50m를 왕복으로 다녀오라고 시켰다. 그전까지 30m 왕복을 무리 없기 했기 때문에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결과는.... 난 50m를 찍고 돌아오는 길에 비참하게도 수영장 레인에 매달렸다. 숨이 너무 차서 도저히 돌아갈 수가 없었다. 다들 힘들어하면서도 어떻게든 50m를 찍고 돌아오는데 나는 발이 바닥에 닿지 않으니 레인을 붙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내 뒤에 오던 수강생들이 나를 지나쳐 갔다. 젠장.
30m까지는 중간에 힘들면 잠깐 발을 땅에 내릴 수가 있는데 30m를 다 가고 추가로 20m를 더 가니 몸이 항의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잠깐 쉬지도 못하고 다시 발이 닿지 않은 채로 20m를 가야 하니, 30m에 길든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니 다음번 수업이 걱정되었다. 이번에 50m 왕복을 했으니 강사님은 당연히 다음 수업 때도 50m 왕복을 시키겠지. 또 꼴사납게 레인을 잡고 이동해야 하나. 수영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수업에 가기 싫어졌다. 나는 왜 몸이 이 모양이어서 재밌게 운동도 못 하나. 나중에 아이를 낳게 되면 꼭 어렸을 때부터 생활 체육을 시키리라. (결혼도 안 했으면서) 깊은 갈등이 있었지만, 여기서 그만두게 되면 이제 수영이랑은 영영 작별이다. 창피해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에게 주문을 외워본다. `남은 나에게 관심이 1도 없다. 너도 남에게 관심 없잖아.`
이 주문은 꽤 효과가 있어서 아직 내가 부족한 것 같아서 망설여질 때 그 마음을 떨치고 일어서는 촉매제가 되어준다.
그렇게 임한 다음 수업, 역시나 수업 시작하자마자 강사님은 50m 자유형 왕복을 시켰다. 창피하면 어때. 이번에는 저번보다 더 늦게 레인을 잡아보자. 남들은 몰라도 나만이 아는 지점에서.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레인을 잡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게 시작한 50m 왕복 수영. 그런데 이럴 수가? 난 너무나 수월하게 50m를 왕복했다. 발 안 닿는 구간에서도 한 번도 레인을 잡지 않고 통과했다. 100m를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발이 바닥에 닿은 것은 단 두 차례. 상급자용 코스를 들어가기 전과 나오고 난 이후였다.
너무 놀랍고 기쁘고 대견하고, 여러 감정이 몰아쳤다. 그리고 수영을 하면서 이러한 경험을 여러 번 할 수 있었다. 평영을 시작했을 때에는 처음엔 쉬워 보였는데 자세를 유지하면서 레인을 왕복하기란 쉽지 않았다. 발차기에 힘이 부족하다 보니 앞으로 잘 나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 힘들어도 꾹 참고 애써 자세를 유지하며 한 바퀴를 돌면, 그 다음 날은 더 수월하게 한 바퀴를 돌았다. 접영은 자세부터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생전 안 하던 자유 수영을 하러 나와서 매번 접영을 연습했다. 자세를 잡으려 노력하면서 힘겹게 물살을 가르자 어느 순간 수월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운동이란 이런 거구나.
이래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하는 거구나.
그렇게 나는 거의 10개월간 수영을 했다. 한 가지 운동을 이렇게 오래 한 것은 처음이었다. 살이 빠지길 기대했지만, 수영이 끝나고 나면 극심한 허기가 찾아와 몸무게는 거의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일명 `러브핸들`이라고 하는 뱃살 옆부분이 좀 줄어들었다. 다이어트는 운동보다 식이라더니, 아마 수영 후 뭘 먹지 않았다면 몸무게도 줄어들었겠지. 하지만 그 허기는 다른 허기와 비교할 수 없었다. 예사로운 허기가 아니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수영은 완전히 중단했다. 한번 흠뻑 빠졌다가 중단하고 보니 어떻게 매번 퇴근하고 수영복을 챙겨서 수영장으로 갔나 싶다. 수영 전후로 씻는 것도 정말 일이고, 수영은 50분 하지만 전후로 준비 시간이 많이 드니 비효율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은 귀찮아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내가 포기하지 않고 처음 50m 왕복에 성공했을 때 놀라움, 접영을 하려고 악착같이 노력했던 그 시간, 이 모든 경험 덕분에 운동을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여전히 남들과 함께하는 모임에 나갈 자신은 없다. 수영이 그랬듯이 어떤 운동이든 내겐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모든 분야가 그렇다. 처음에는 배우는 재미로 마냥 즐겁게 달려간다. 달리다 보면 `마의 구간`을 만난다. 지금까지 7의 힘으로 달려왔다면 여기서는 10, 또는 11의 힘이 필요한 구간. 여기서 턱밑까지 차온 숨을 꾹 참고 부딪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구간을 넘어가 있다. 나의 자유형처럼 어쩌면 하루가 걸릴 수도 있고, 나의 접영처럼 어쩌면 두 달이 걸릴 수도 있다. 내가 쌓아온 그 조금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서 내게 추진력을 달아준다.
`마의 구간`을 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접영은 두 달이 걸렸지만, 사실 내가 자유 수영을 하며 접영에 투자한 시간은 일주일에 한 번에서 두 번 정도, 그것도 매번 한 시간이 조금 안되는 시간이었다. 작은 투자가 야금야금 모이면 새로운 하루가 만들어진다. 지금도 나는 여러 구간을 만날 때마다 수영에 쏟았던 시간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