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포기자가 읽은 E=mc²
난 뼈속까지 문과 인간이다.
고등학교 때 과학을 포기한 이후로 과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자동으로 고개가 돌아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과학책은 읽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고, 뉴스에 나오는 과학 용어들을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막상 과학책을 펼치면 어김없이 3장쯤에서 책을 덮게 된다. 수식과 전문용어가 나오는 순간, 내 뇌는 자동으로 셧다운 모드에 들어간다.
그래서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E=mc²』를 집어들 때도 사실 걱정이 앞섰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방정식이라지만, 나에게는 그저 외계어처럼 보이는 공식일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저자는 E=mc²를 설명하는 대신, 이 방정식의 '전기'를 쓰기로 했다. 마치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듣듯, E=mc²가 태어나기까지의 긴 여정을 들려주는 것이다.
E=mc²라는 방정식은 아인슈타인 혼자 만들어낸 게 아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수백 년에 걸쳐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춰온 결과물이다. E(에너지), m(질량), c(속도), 그리고 =(등호). 이 네 가지 요소 하나하나에는 각각의 발견자가 있고, 그들만의 드라마가 있다.
먼저 에너지(E).
패러데이는 전기와 자기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것이 얼마나 혁명적인 발견이었는지 상상해보라. 서로 다른 형태의 에너지들이 사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 화약이 폭발할 때 나오는 화학 에너지도, 신발을 문지를 때 나오는 마찰열도, 모두 같은 에너지의 다른 얼굴이라는 것. 저자는 이를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정해놓은 총량이라고 표현한다. 우주가 시작된 이래로 에너지의 형태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그 총량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질량(m)은 라부아지에의 몫이었다.
그는 정밀한 무게 측정과 화학 분석을 통해 질량 보존 법칙을 발견했다. 우주를 채우는 물질들은 타고, 찌그러지고, 부서질 수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레고 블록처럼 분해되었다가 다시 조립될 뿐, 전체 질량은 항상 같다. 에너지가 보존되는 것처럼, 질량도 보존된다. 이 두 가지 보존 법칙이 나중에 아인슈타인의 손에서 하나로 합쳐지게 될 줄은 당시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c²(속도의 제곱). 왜 하필 제곱일까?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뒤 샤틀레와 동료들은 네덜란드 과학자의 실험에서 답을 찾았다.
무거운 추를 진흙에 떨어뜨리는 간단한 실험이었다. 추를 두 배 빠르게 떨어뜨리면 진흙이 두 배가 아니라 네 배 더 깊이 파였다. 세 배 빠르게 하면 아홉 배. 이것이 바로 속도의 제곱이 갖는 의미다. 에너지는 속도에 비례하는 게 아니라,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
그렇게 수백 년에 걸쳐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을 아인슈타인이 1905년, 단 하나의 방정식으로 연결했다.
E=mc². 에너지는 질량에 빛의 속도의 제곱을 곱한 값과 같다. 이 간단해 보이는 등식이 가진 의미는 충격적이다. 에너지와 질량이 서로 교환 가능하다는 것. 패러데이가 발견한 '에너지는 보존된다'는 법칙과 라부아지에가 발견한 '질량은 보존된다'는 법칙이 사실은 하나였던 것이다. 에너지와 질량은 같은 것의 다른 형태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교환 비율이 어마어마하다는 게 문제다. 빛의 속도는 초속 30만 킬로미터. 이미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른데, 이 값을 제곱하면 훨씬 더 큰 수가 나온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작은 질량도 엄청난 에너지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가장 평범한 바위와 식물과 냇물에도 이 엄청난 힘이 잠들어 있다. 적절한 조건만 갖춰지면 말이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고작 몇십 그램의 질량을 에너지로 바꿨을 뿐인데, 도시 하나를 순식간에 파괴했다. E=mc²는 그런 방정식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과학자들의 이야기였다. 과학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은 대부분 정석에서 벗어난 사람들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공대 교수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이 기계적으로 일하면서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의 배경에 대해 결코 질문하지 않는 사람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패러데이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채워주지 못하는 공허한 설명에 만족할 수 없었다. 라부아지에는 선배들이 물려준 부정확한 화학이 못마땅했다.
특히 세실리아 페인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녀가 래드클리프 대학 기숙사에서 함께 살던 친구에게 어떤 다른 친구가 좋다고 말했을 때, 그 친구는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하지만 걔는 유대인이야." 페인은 솔직히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그들은 흑인에 대해서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1920년대 미국의 명문대학이라는 곳에서도 이런 편견이 만연했던 것이다.
이 과학자들은 모두 틀 안에 고정되길 거부했다. 튀어나온 못이 되었고, 그것 때문에 시기와 질투, 비웃음을 당했다. 하지만 그들은 꿋꿋이 연구했다. 과학에도 상상력과 폭넓은 이해력, 포용력이 필요하다는 걸 그들은 몸소 보여주었다. 과학이 단순히 공식을 외우고 실험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는 것, 기존의 틀을 의심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E=mc²가 실제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나온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제2차 세계대전 중 노르웨이의 틴쇼 호수 이야기였다. 연합국은 독일이 원자폭탄을 먼저 개발하지 못하게 하려면 노르웨이 베모르크 공장의 중수 생산을 막아야 했다. 공장은 철통같은 방어를 갖추고 있어서 직접 공격은 불가능했다. 유일한 방법은 중수를 독일로 운반하는 연락선을 침몰시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연락선이 베모르크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노르웨이의 다른 지역으로 가기 위해 타는 배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나들이 나온 평범한 가족들이 언제나 그 배를 탔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유명한 윤리적 딜레마와 똑같은 상황이다. 한쪽 선로에는 다섯 명이 묶여 있고, 다른 쪽에는 한 명이 묶여 있다. 기차가 오고 있고, 당신은 어느 선로로 갈지 선택할 수 있다. 한 명을 죽일 것인가, 다섯 명을 죽일 것인가.
E=mc²가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힘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이런 끔찍한 윤리적 타협을 해야 했다. 과학은 중립적이지 않다. 과학적 발견은 언제나 현실 세계로 나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도시 하나를 순식간에 파괴하는 원자폭탄으로, 때로는 암을 치료하는 방사선 치료로. 같은 원리가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가져다준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에 나오는 과학 이론을 100% 이해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E=mc²라는 방정식이 나오기까지 어떤 과학자들이 어떻게 노력했는지 알게 되었고, 과학이 단순한 공식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이 책은 E=mc²의 역사책이다. 교과서처럼 공식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그 공식이 태어나기까지의 긴 여정을 보여준다. 실패하고, 비웃음 당하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 발견이 우리 세계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과학을 어려워하는 문과 인간이라도, 아니 오히려 그런 사람일수록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과학이 조금은 친근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책장을 덮고 나니 E=mc²가 더 이상 낯선 공식이 아니었다. 수백 년에 걸친 인류의 호기심과 노력, 때로는 고통스러운 선택들이 담긴 하나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순간에도.
E=mc² -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방정식의 전기 데이비드 보더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