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속담 중 '언 발에 오줌누기'라는 말이 있다.
비슷한 말로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는 속담이 있고 말이다.
주로 근본적인 해결 없이 눈앞의 문제만 모면하려는 급급한 행동을 비꼬는 말이다. 그저 어리석게 보일 뿐이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 본다면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 사람에게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따뜻한 집이 있거나 핫팩, 또는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두터운 방한 용품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정말로 언 발에 소변을 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우리는 감히 그 사람을 멍청하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한 남자가 있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매서운 눈 폭풍과 칼바람을 맞이한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은 고작 얇은 트렌치코트뿐. 목도리도 장갑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분명 조금만 더 가면 작고 허름하지만 눈과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곳까지 찾아가기에는 스스로 목적지까지 걸어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문제는 급격하게 떨어진 기온으로 인하여 발가락의 감각이 점점 무뎌진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지금은 버텨야만 된다. 그래야 걸을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어리석다며 손가락질하려 했던 그 사람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뒷 일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일을 저지르는 사람 또한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둔하다 말을 들어도 할 말은 없겠지. 그러나 문제의 남자는 지금 당장 어찌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고자 그런 선택을 한다. 그렇게 자신의 발을 보호한 다음 더 얼어버리기 전에 훈기가 도는 곳을 찾아 들어간다는 계획을 세운 것뿐이다.
이럴 때 우리는 과연 비난의 대상일까?
'언 발의 오줌누기'를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어떤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까.
대안, 응급처치, 또는 임기응변
분명 같은 말 일진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 사람은 어리석게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임기응변에 뛰어난 현명한 인재로 볼 수도 있다. 그 차이는 지켜보는 관찰자 입장의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물론 그 남자의 판단 실수로 고작 찰나의 따뜻함을 얻고 더욱 꽁꽁 얼어버린 발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그를 비난하지 않고자 한다. 순간의 선택지가 다소 당황스럽지만 결정은 본인이 했다. 아주 짧았을지는 몰라도 고통을 가져오는 혹한의 추위를 벗어나는 마음의 안정을 맛보았을 테다.
타인이 나의 의지와는 다른 게 내 발에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자기가 스스로 본인 발에 행하였기에 관찰자는 그저 관찰을 하면 된다. 평가라는 것은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를 고정하는 행동이다. 그렇기에 관찰을 하고 평가를 하면서 한 사람이 어떻다고 각인시킬 필요는 없다.
때문에 이를 행한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뭐라 하면 안 된다.
순간의 결정이 후에 발목을 자르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그 남자는 허물어져가는 빈 집을 찾아낼 수 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난로나 마른 장작을 발견하여 몸의 온기를 녹일 수 있는 환경을 새롭게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미래의 일은 알 수 없기에, 본인의 계획을 알 수 없기에 멋대로 판단하면 안 된다.
만약 그가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였고, 그에 대한 결과가 따뜻함이 감도는 병원에 도착한다는 해피엔딩이라면 어떠할까? 비난 또는 질책하던 손가락들은 금세 자취를 감추고 현명하게 대처했다며 칭찬을 할 테다. 그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언 발에 오줌을 누었던 자 보다는 섣부르게 놀렸던 자들에게 생각이 짧다며 화살이 돌아갈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단 한 편의 장면을 두고 임기응변을 펼친 자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여론에 휘둘려서 손가락질하다가 금세 얼굴을 바꾸는 관찰자가 되고 싶은가? 상황은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때문에 원인-결과의 제대로 된 사연을 모를 때에는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언 발에 몹쓸 짓을 하기 전에 작게나마 핫 팩이나 따뜻한 물 한 잔을 주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
우둔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계획이 확실하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내 앞의 고난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여기에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지 않을 그런 신중함을 가지고 싶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힘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