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책임인가?

by 그냥사탕

살다 보면 문제는 반드시 생긴다.

이는 인생 100년 안에 어떤 종류의 모습을 한다 해도 '위기'라는 이름을 달고 찾아온다.

이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보통의 사람은 세 가지 모습으로 대처한다.


첫 번째는 외면.

자신의 성격이라 생각하며 평화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그저 흘러가기만을 기다리는 유형이다. 스스로 해결할 의지가 없으며 대체적으로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라는 안일한 모습으로 손 놓고 있다. 물론 당사자의 내면 깊숙하게는 힘들겠으나 적어도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천하태평처럼 보인다.


두 번째는 노력.

내 앞의 문제에 대하여 본질을 파악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 사건을 더 나은 방향으로 풀어나가고자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할 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스스로를 믿는다. 번아웃, 포기등이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이겨내겠다고 아등바등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제각각이 된다.

안쓰럽다, 대단하다, 미련하다 등...

다양하지만 대체적으로 긍정과 부정 두 가지의 반응이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회피.

이는 내 잘못 때문이 아니라고 믿는 경우다. 보통 기업이나 어떠한 업무를 하는 무리에서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책임자를 색출하기도 한다. 그렇게 누구의 잘못인지 파악하고 처벌을 하며 해결을 해 나간다.


TV 드라마를 보다가 한 장면을 보았다.

한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설계해 놓은 길로 걸어갔고, 다른 사람은 일찍부터 자신의 꿈을 찾아서 스스로 도전하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의 유년시기에는 비슷했다. 부모가 설계를 해 준 쪽은 부유한 편이었으며 반대로 한쪽은 소박함에서 약간 부족한 집안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다양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 둘의 가정은 모두 화목해 보였고, 아이는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성인이 되었다.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유명 대학의 의사로서, 교수로서 활동을 하는 남자.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했던 두 번째 남자는 오랜 시간을 삽질하면서 여전히 큰 성공을 향해 애쓰고 있었다.


외형적이니 모습을 보더라도 부유함에 모자랄 것 없는 첫 번째 남자는 성공을 했고, 두 번째는 투자를 받으려고 여기저기 기웃대는 모습을 통해 그렇지 못해 보였다. 하지만 보통의 드라마가 그렇듯 일련의 사건이 터진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그들의 행동은 여기서 차이가 났다.


당연하게도 부족함이 없던 쪽이 수월하게 치고 나갈 것이라 여겼지만 그는 계속 꼬여가는 상황을 앞두고 힘들어한다. 그리고 끝내 그 압박감을 버리지 못하고 부모 앞에서 폭발한다.

'엄마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어!'

그동안 자신을 위한 부모의 노고를 외면했고,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만든 부모의 책임이라고 단정 지어 버린다.


반대로 두 번째 남자는 자신 앞에 놓여있는 상황을 해결하고자 스스로 문제점을 찾는데 온 힘을 쏟았고, 가족들은 늘 그랬든 뒤에서 응원을 해 주었을 뿐이다.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쏟은 결과 정답의 키를 찾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영광은 그의 손에 들어갈 수 있었다.


드라마라는 유희를 위하여 선과 악이 다소 섞여있기는 했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는 그 본질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덕분에 흐름이 끊길까 정주행 하면서 완결까지 보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이를 통해 보통은 잘생긴 두 남자의 얼굴과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여자의 삼각관계를 주의 깊게 볼 테다. 하지만 나는 두 남자의 태도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결혼한 몸이어서 그런지 로맨스와 주인공의 흑심은 미리 따로 챙기기로 했다.




우리는 인생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굳이 회사라는 조직을 들먹이며 대입을 해 보고자 한다. 사람을 기업이라고 치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경영이라고 볼 때 우리는 하나의 기업을 운영하는 CEO가 된다. 당연하게도 인간은 탄생과 동시에 스타트업의 오너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부모라는 존재가 멘토가 되어 인생이란 사업을 어떻게 꾸려가는지 알려준다. 때로는 조언을, 때로는 훈육이라는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챙겨가는 방법을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 뱃속에서 꼬물거리던 기억과 세상에 태어나 처음 얼굴을 마주하며 첫인사를 나누던 때가 머리와 가슴에 각인되어 있다. 때문에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스스로 세수하고, 옷을 입으며 숙제를 하는 모습에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은 든다. 그러나 여전히 내 눈에는 모든 것을 해 주어야 할 꼬맹이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무언가에 대하여 대화를 할 때 자신의 생각을 표현을 하는 모습을 마주할 때면 이 꼬마조차 생각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렇기에 부모라는 존재는 무조건 내가 다 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앞서 말했든 한 사람이 CEO가 되어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온전히 꾸려나갈 때까지 부모는 멘토가 되어 길을 알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약 20년 정도가 되면 나라에서 인정하는 온전한 성인이 된다. 보통은 그때 까지다. 스타트업이 멘토의 손을 빌리지 않고 독립하는 시기기 바로 그 때다. 물론 각자 가정에서의 기준점이 있을 테지만 이는 금전처럼 물질적인 것을 말하지 않는다. 정신적인 독립이다.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성인'이란 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을 일컫는다. 보통 만 19세 이상을 표현하는데 이쯤 되면 스스로 자기 몸 하나는 챙길 수 있다고 판단되는 시기다. 그러면 우리는 어른으로서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해본다.


'책임'


그동안 어린이, 청소년기에는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양식 삼아 먹고 자라는데 집중해왔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본인이 '나'라는 기업을 꾸려가야만 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선택한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비록 삶의 환경이 달랐다 할지라도 어른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내가 힘들 때 멘토에 기대어 잠시 쉴 수도 있다. 충전을 통해 다시 일어설 힘을 기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싼 똥은 직접 뒤처리까지 해야 진짜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남 탓을 한다는 것은 아직 정신적 독립이 온전치 못하다는 증거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어떤 기사에 따르면 지금의 3040 세대는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고 불렀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고 내딛는 걸음마다 힘듦이 산적해 있더라도 그 와중에 자수성가했다는 MZ들은 많다. 다만 내가 거기에 껴있지 못했을 뿐이지.


내가 지금 이모양이라는 사실이 나의 선택에 따른 결과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의도로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무리 삶이 고단하다 할지라도 나의 문제는 내 것이다. 그렇기에 상황을 직시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의 몫은 내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주변에서 종종 들리는 소리가 있다.

'부모가 제대로 된 뒷배가 되지 못한다'

'많은 재정적 지원을 해 주지 않는다'


이는 부모가 해왔던 그간의 노고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부모의 재력은 그들의 몫일뿐 자녀는 그것들을 당연히 바랄 이유도 의무도, 지분 또한 없다. 우리는 이미 성인이고 어른이기에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뿐 누구의 책임을 따진다면 직접 염치없다고 광고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책임을 따지기 보다 문제를 직접 바라보자. 그리고 걸어가자.

아무리 내 앞의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고 할지라도 목숨이 붙어있고, 꾸준히 발을 놀린다면 지금 보이는 어두운 터널의 출입구를 찾게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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