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렇지 못한 이들도 분명 존재하겠지. 여름휴가나 방학이 다들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장마라고 하기에 정신 차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지나갔다.
하늘이 뚫린 듯 시원하게 쏟아지던 물줄기는 맑은 하늘을 남기고 뜨거운 태양 열기를 선물로 두고 가버렸다.
비가 오면 어딘가 수해라도 날까 걱정, 안 오면 또 뜨거워서 걱정.
사람은 애초에 걱정을 만들어내는 종자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부쩍 무더위에 조심하라는 폭염경보 안내문자가 자주 온다. 덕분에 앞으로 두어 달 정도는 이놈의 열기와 사투를 벌여야 하겠지.
한낮의 기온은 해가지면 조금 식을까 기대를 해 보지만 길어진 낮의 길이만큼 그 열기가 가라앉기도 전에 다음날 태양이 뜨다 보니 의미가 없어진다.
콧구멍에서조차 뜨끈 거리는 바람이 나온다.
"역시~ 열대어야!"
아이가 며칠 전부터 물고기를 자꾸 말하기 시작했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 고요함 속에서 또다시 열대어를 이야기하길래 무슨 뜻인고 싶어 귀를 기울여 보았더니 밤에 엄청 덥단다.
‘아하~ 열대야!’
어디서 들은 것인지 온전치 않은 단어이지만 본인이 습득한 내용을 여기저기 남발하는 것이 자신의 똑똑함을 어필하고,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내가 가르쳐 준 적 없는 언행들.
최근 들어 부쩍 어려운 단어를 종종 쓰는 것이 초보 엄마는 이런 면에서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까지 무조건 내 손을 거쳐야만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가끔씩 튀어나오는 아이의 성장은 더 이상 내 품 안에서 꼬물거리던 작은 아기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준다. 뜨거운 기온 탓에 짜증 지수는 올라가지만 그 와중에 땅속의 씨앗은 조금씩 새싹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나의 태도가 여전히 씨앗을 다루고 있다.
대지의 품 안에서 평온하게 지내왔을 작은 씨앗과 이미 머리가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 새싹은 그 모습도 필요로 하는 자극의 양과 종류도 모두 다르다. 내 품 속이 가장 안전할 것이라고 단정 짓고, 눈앞에서 보이지 않으면 오히려 마음이 불안해하는 것은 내가 그만큼 덜 컸기 때문 아닐까.
뜨거운 열기를 가린 채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운다면 육신은 안전할 수 있겠으나 아이의 알맹이는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쓰린 마음을 감추고 더 나아가고 더 많이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당장의 어려움은 내 손끝을 파르르 떨리게 만들지만, 훗날 아이에게 좋은 영양분이 된다. 지금의 삽질들이 헤매지 않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나부터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이가 커나가는 만큼 나 또한 성장해야 하는 과업이다. 식지 않는 열대야의 기온을 견뎌야 시원한 가을바람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멈추지 않는 에너지와 지금의 각종 힘듦을 버텨야 이후의 즐거움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 그리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