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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사탕 Feb 01. 2023

꼭 꼭 숨겨둔 마음

"오늘은 자기가 애들 데려와요~"


밥보다 야근을 더 많이 하는 신랑님이 웬일인지 퇴근이 빨랐다.


엄마와 아빠가 일을 하는 특성상 일주일에 두세 번은 늦게 하원하는 아이들을 나는 자연스레 그 공을 넘겼다. 단 10분 동안의 휴식시간. 

그 짧음 자유를 기대하며 말이다.


오랜만에 하원 도우미가 된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러 바깥으로 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 끝에서부터 재잘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밝음이 잠깐이지만 고요했던 적막을 깨기 시작했다.


아빠의 양쪽 손에 매달려 들어온 아이들은 자연스레 손을 씻고 가방을 벗는다. 하지만 이날은 조금 달랐다.



한쪽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는지 펴지 않았다는 아이.

집에 들어와 엄마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둘째는 환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와서 대뜸 자신의 소중한 마음을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엄마~ 사랑해요~"



추운 날씨 탓에 작은 얼굴을 뒤덮은 마스크 뒤로 빨개진 얼굴이 더 발그스름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린이집에서 자신이 만들었다는 선물을 혹여나 집에 오는 길에 잃어버릴까 얼마나 신경을 썼을지, 엄마에게 보여주고 웃는 얼굴을 바라며 왔을 터다. 


그저 하얀 종이 위에 좋아하는 핑크색 색연필로 색칠을 했을 테고, 분명 선생님이 하트 모양으로 가위질을 해 주었을 것이다. 얇은 종이 탓에 손에 힘을 주면 금방이라도 꼬깃꼬깃 해졌을 텐데 그리 자국이 많지 않은 것을 보니 하원길 내내 들고 있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엄마에게 빨리 전달하고 싶은 서두름이 그 안에 녹아 있었다.


평소에도 뜬금없이 사랑고백을 해 주는 아이.

엄마가 어디 아프다고 하면 세상 걱정스러운 얼굴로 괜찮냐고 물어봐 주는 아이.

집 밖을 나설 때에는 반드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는 아이.


잠깐이지만 10분간의 평화를 얻고 싶어 남편에게 하원을 부탁한 내 짧은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하루종일 엄마에게 이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서 얼마나 애가 탔을까. 그럼에도 엄마라는 사람은 자신의 짧은 평안을 선택했다.


나에게도 사랑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었지만 이제 5살이 채 되지 않은 따님보다 못한 모습을 이렇게 마주하니 미안했다. 스스럼없고, 뜬금없지만 감정을 감추지 않고 사랑고백을 하는 아이는 어쩌면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다. 부족하지만 그 민낯을 스스럼없이 또 드러내는 엄마라는 작자가 어쩌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이는 알까. 그럼에도 세상 전부라며 또 최고라고 치켜세워 주겠지.



마음은 내 안에만 있을 필요가 없다.

귀찮고 힘들다는 포장지 안에 있다면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선물이라도 포장을 풀러 확인해야 진위를 파악할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작은 분홍색 하트에 온 마음을 담아 가져온 아이의 감사한 선물. 나는 이렇게 또 한 번의 진리를 알아간다.


내 안에 꼭꼭 숨겨둔 마음은 포장지를 뜯어낼 필요가 있다.

그걸 풀러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하더라도 알맹이를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 


'츤데레'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마음을 '못됨, 차가움'등으로 포장을 한 채 보여주는 행위이다. 하지만 그 알맹이를 발견하는 것은 굳이 껍데기를 벗긴 사람에게만 보인다.


굳이 사랑스러운 내 아이에게 그럴 필요가 있을까?


있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아가들에게는 아무리 얇다 하더라도 어려울 테다. 그렇기에 굳이 꼭꼭 숨겨두지 말고 있는 그대로 알려주자. 게으름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하더라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엄마 자신이다.


사랑한다면 아이가 직접 들어와 어렵게 확인하지 않도록, 언제든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도록 숨기지 말고 대놓고 드러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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