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이른 크리스마스

by 그냥사탕

11월의 첫 번째 주.

겨울이 왔다고 우겨대기에는 다소 덥다.

아침에 아이를 등원시키기 위해 옷을 입다가도 포근한 날씨 탓에 점퍼를 손에서 내려놓고 패딩 조끼 하나로 패션을 완성한다. 여기에 빠지지 않는 필수품 캡 모자와 얇은 보건 마스크 하나면 세상이 두렵지 않다.


과연 나만 그럴까?

전혀 아니다.


등원 길에 만나는 꼬맹이 친구들의 엄마들 역시 나와 같은 패션을 고수한다. 그리고 서로의 복장을 바라보며 마치 우리 또한 교복을 장착한 듯 당연하고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평일의 아침 길은 대부분 발걸음이 가볍다. 아이들은 친구들을 만나 놀 생각에, 엄마들은 찰나와 같은 시간을 그린다. 동상이몽이 따로 없다.


아이를 기관에 맡긴 후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을 들어오면서 두 팔을 걷어붙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실례합니다!"


집 안에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엄마라는 임무에 충실하기 위한 나만의 첫 번째 의식을 치른다. 허공에 울리는 씩씩한 나의 목소리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여 보겠다는 나와의 다짐으로 돌아온다. 화장실에 가서 뽀독뽀독 소리 나게 손 씻고 자연스레 타이머를 한 시간으로 맞추었다.


각 방을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이불, 장난감, 책 등을 제자리에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렸다. 한동안 노동요라고 해서 흥겨운 음악도 틀어 보았으나 성격상 오히려 정신이 산만해져서 이제는 조용하게 일을 진행한다. 청소기의 위잉~ 소리가 때로는 백색소음처럼 느껴져 일의 진도가 척척이 었다.


그러다 탁!

모른 척하고 싶은데 거실 한편에 자리한 트리가 청소기 머리에 계속 부딪친다.



이제 겨우 11월이 시작되었는데 우리 집은 벌써부터 크리스마스트리가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유교, 또는 무교였던 친정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내가 살아왔던 환경에서는 크리스마스라는 존재가 일상에 그리 큰 영향력이 없었다. 때문에 이 날은 그저 학교를 하루쯤 더 쉴 수 있는 찰나 같은 방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운이 좋으면 학원에서 나누어주던 색연필 세트가 고작이었다. 그런 내가 성장을 하고, 종교를 가진 집안의 남편을 만나면서 새로운 기념일이 하나 더 생기게 되었다.


그래도 그렇지... 11월에 웬 트리.


이제는 산타의 실체를 알아버린 큰 아이와는 달리 작은 아이는 세상이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처럼 여전히 그 할아버지를 기대하고 있다. 추운 날씨에 펑펑 내리는 함박눈은 여태 소식이 없는데 무엇을 그토록 받고 싶어 하는지 도대체가 알 수 없다.


울면 안 된다는 전설을 정설처럼 맹신하고 있다. 툭하면 울음소리부터 내던 아이가 어금니 꾹 깨물며 눈물을 참는 모습이 내 눈에는 귀엽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꽤나 진지하고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절대 받지 말라고 그리 교육을 시켰건만,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가 오밤중에 집 안에 무단 침입하여 선물 하나 주겠다는데 뭐가 좋다고 이토록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이라니. 그럼에도 하지 말라고 할 수 없는 부모 입장에서는 모순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혹여나 오시는 길이 멀고 험해서 우리 집에 못 찾아올까 미리부터 이정표를 만들어주는 것일까?


아이가 꿈꾸는 크리스마스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본다.

XX핑이라는 작은 꼬맹이들이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다는 믿음. 다이소에서 데려온 복슬복슬한 토끼 인형이 정말로 자신의 친동생이라고 여기는 확신. 어쩌면 허무맹랑하다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신뢰가 어린이가 꿈꾸는 동심의 실체일 수도 있을 거라 여겨본다.


아마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의 어린 시절에도 그런 것들이 있었을 테다. 그럼에도 지금 매우 빠르게 등장한 크리스마스 트리에 대해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이미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이 무엇인지, 왜 그토록 나한테만 차갑게 구는지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란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겨울바람처럼 매섭게 불어온다.


어쩌면 모든 어른들이 전부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같은 바람을 마주하며 나를 막아 세우는 뾰족함이 아닌 항해하기 좋은 힘찬 바람이라고 여기는 어른. 내 아이는 그렇게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그렇기에 하루라도 먼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려는 아이를 막아 세우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산타는 없다고 단호하게 못하고 그저 아이가 바라는 대로 묵묵히 트리를 꺼내는 엄마가 되어간다. 이런 나의 우유부단함이 무의식 중에 내 아이만큼은 나보다 어른스러운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같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관점은 본인이 직접 선택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 선택의 방법은 다양하다. 충격요법을 받은 이후에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있겠으나 어렸을 때 긍정의 기억이 차곡차곡 쌓아져서 자연스레 흐름을 탈 수도 있다. 나에게도 분명 이러한 좋은 기억이 많았을 테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때문에 지금 스스로 뒷 목을 끌어안고 그쪽으로 향하려 노력 중이다. 그렇기에 내 아이는 힘들이지 않고 항해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청소기로 툭툭 건드리며 주변 먼지를 없앤 후 떨어져 있던 아이의 별 모양 키링을 다시 나무 꼭대기에 올려놓는다. 꼬맹이의 키가 닿지 않아서 아빠가 대신 얹어놓았던 덕분에 움직일 때마다 흔들거리지만 이번에는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까지 시켜 주었다.


아이의 꿈과 희망을 힘껏 품어서인가 오전의 태양을 받아 유독 노란색이 선명하게 빛난다.


매우 이르게 등장한 크리스마스트리이지만 그 정점에는 노란 예쁜 별이 참 밝다. 아이의 별처럼 반짝반짝한 인생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엄마는 열심히 노력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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