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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미 Nov 29. 2023

시부모님은 '시'부모님이구나

관계의 변화(2)

나는 나의 시부모님을 굉장히 좋아했다. 시아버지는 내게 무한한 사랑을 주셨고, 시어머니는 늘 며느리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한마디로 센스있는 분이었다. 아이를 가지기 전까지 시부모님과 나 사이에는 이렇다 할 갈등이 전혀 없었다. 종종 집안행사가 있을 때 뵈었고, 그때마다 사랑을 듬뿍 주셨으니. 시부모님을 흉보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자랑하고픈 마음을 꾹 참아야 했다. 



그런데 아이를 갖게 되자 시부모님의 조언(?)이 약간 늘어났다. 내가 먹는 것에서부터 아이의 이름까지, 자꾸 전화를 걸어 의견을 주셨고 내가 다른 결정을 내리면 서운해하셨다. 그때까지는 ‘자식의 일에 의견 주시고 따르지 않으면 서운할 수도 있지’, 하고 시부모님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시부모님은 코로나 때문에 한 달이 지난 후에야 아이를 품에 안아보셨다. 두 분 다 입이 귀에 걸리셨다. 아이를 한참 예뻐한 후에 나를 보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떡하니, 너 닮은 데가 없어서 서운하겠다."     





시어머니는 아이의 손가락이며 발가락, 귓바퀴까지 모두 살펴본 후에 나에게 아이의 혈액형을 물어보셨다.

"B형이에요."

"아니, 왜 B형이야? O형이 아니고?"

아들이 혼자서 아이를 낳았다고 생각하시나? 당연히 당신 아들의 혈액형일 거라 예상하시는 시어머니의 물음이 나는 좀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좀 힘주어 대답했다. 

"제가 B형이니까요."

시어머니는 멋쩍게 덧붙이셨다.

"다행이다. 혈액형은 너 닮았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나의 역할은 자연스레 변했다. 며느리였던 새아가는 손주의 엄마로서 기능하게 된 것이다. 시부모님은 이전보다 자주 전화를 걸어 아이의 안부를 물어오셨고 영상전화나 사진을 보내는 일이 뜸해지면 진심으로 서운해하셨다. 나는 영상전화 때마다 ”아이 옷이 너무 얇은 거 아니니.“ ”애 밥이 그게 전부니?“ 등의 이야기를 듣는 게 싫어 전화를 걸기 전에 집을 치우고, 아이의 옷을 갈아입혔다. 



아이가 생긴 후로 시부모님을 더 자주 뵙게 되었다. 아이를 가까이서 보고 싶어하셨고, 우리 역시 육아로 지칠 때 종종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곤 했다. 그러나 딱 하루만이었다. 나는 하룻밤을 시댁에서 보내고 나면 남편에게 이제 어서 집에 가자고 재촉하곤 했다. 아이를 최고로 생각하고 돌봐주시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지만, 나의 육아방식이 쉽게 무시되곤 하는 것을 내가 참을 수 없었다. 먹이는 것도 씻기는 것도 재우는 것도 모두 시어머니의 방식을 따라야 했다. 



아이는 시댁에서 단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 설사를 했다. 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내가 애써 아이와 함께 만든 규칙과 패턴은 쉽게 무시되었다. 아이에게 단호하게 훈육을 할라치면 언제나 ‘아이를 울리지 마라’는 말씀과 함께 아이의 바람을 금세 이루어졌다. 아이는 나와 시부모님의 관계를 금세 눈치챘다. 집에서는 엄마가 왕이지만 할머니 집에서는 아니구나. 시댁만 가면 아이의 떼가 늘었다. 나는 자연스레 시댁과 약간의 거리두기를 하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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