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조각
어린 시절 어느 날, 저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 앉아 '짱구' 과자를 먹으며 지루함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과자 봉지에 그려진 그림을 들여다보았는데, 거기에는 '짱구 과자 봉지를 들고 있는 짱구'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 속 짱구가 들고 있는 봉지에도 짱구가 있고, 또 그 안에도 짱구가...'
"어? 짱구가 계속 들어있네?"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이 그림은 끝이 없었습니다. 내 손 안에서 끝없이 많은 짱구가 계속해서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이 작은 그림 속에 무수히 많은 짱구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고, 약간은 무섭기도 한 오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무한'이라는 신비로운 세계를 처음 경험한 날입니다.
성인이 된 뒤에도 여러 곳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들었습니다.
•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담겨 있다."
• "모래알 속에서 세상을 본다."
• "모든 존재는 우주 전체를 반영한다."
• "인간은 작은 우주다."
그리고 어머니도 종종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하셨습니다.
• "쯧쯧... 하나를 보면 열을 알아!"
그 말들을 곱씹으며 저는 점점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문장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는 인생을 비추는 커다란 힌트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하나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요.
자연과 우주, 그리고 인간의 삶까지 관통하는 법칙.
바로, 신의 지문이라 불리는 '프렉탈의 법칙'입니다.
프랙탈(fractal)은 쉽게 말해, “조각 하나에 전체가 담겨 있는 구조”, 즉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을 가진 구조를 의미합니다. 작은 패턴이 반복되며 큰 구조를 만들고, 그 큰 구조가 다시 더 큰 전체와 닮아가는 방식이죠.
프랙탈은 1970년대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Benoît Mandelbrot)가 처음 소개한 개념입니다. 그는 해안선, 나무, 구름처럼 자연에 존재하는 형태들이 모두 작은 부분이 전체를 닮은 구조라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이 구조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시각화했고, ‘망델브로 집합(Mandelbrot set)’이라는 아름다운 프랙탈 이미지를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이후 프랙탈은 단지 수학 이론을 넘어 자연과학, 천문학, 예술, 생물학, 심지어 경제 패턴이나 인간의 감정 흐름 등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는 '통찰 프레임'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 과학, 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기본 질서로서 받아들여지게 된 것입니다.
세상이 왜 이런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아무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작은 것 안에 큰 것이 숨어 있고,
하나를 통해 전체를 엿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과학이든, 예술이든, 우리 삶이든 예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놀랍게도 프랙탈의 법칙은 '삶의 패턴'속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작은 것이 큰 것을 닮아 있고, 사소한 장면에 인생 전체가 녹아 있는 순간들을 삶의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식당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습관,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의 반응, 실수했을 때 나타나는 표정 하나에도, 그 사람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아이와 대화하는 부모의 말투에서 그 가정의 분위기가 보이고, 직원 한 명의 표정을 통해 그 조직의 문화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의 '내면'은 어떨까요?
우리가 자주 느끼는 감정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삶의 구조를 닮아 있습니다. 마치 나뭇가지처럼, 그 감정은 삶의 여러 장면 속으로 뻗어나갑니다.
예를 들어, 분노를 자주 느끼는 사람은 피해의식이나 열등감이라는 깊은 감정적 뿌리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인간관계 속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자기 자신과의 대화 속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되풀이되며 그 사람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작은 감정 하나가, 나라는 사람 전체를 비추는 거울이 되는 셈이죠.
40대가 되니,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삶의 미세한 결'에 관심이 생깁니다.
사사로운 말투, 눈빛 하나, 무심코 내뱉은 말과 그 뒤에 따라오는 침묵까지. 그 작은 흔적들이 내 삶의 어디에서 왔는지 거꾸로 더듬어 보곤 합니다.
예전엔 타인의 말투나 행동만 보였다면, 이제는 내 안에서 반복되고 있는 감정의 흐름과 반응의 패턴에도 눈이 갑니다.
왜 나는 자꾸 불안한가?
왜 나는 똑같은 말에 상처받고, 같은 방식으로 화를 내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지다 보면, '오늘 하루'가 내가 살아온 모든 날들의 축적이자 요약본처럼 느껴집니다. 외부의 행동도, 내부의 감정도, 결국은 하나의 구조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프랙탈의 법칙은 말합니다.
오늘의 말투와 감정, 사소한 선택 하나에도
내 삶 전체가 담겨 있고,
그 삶 안에는,
우주의 질서가 조용히 숨 쉬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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