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공자
저 대학원생 때에는 쌈닭이었어요.
회사의 같은 팀원에게 이런 말을 하면 다들 '말도 안 되요!' 하는 반응입니다.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합니다. 첫 번째는 '내가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구나.'라는 제 행동에 대한 나름의 칭찬이고, 두 번째 생각은 '내가 대학원생 때 반쯤은 이성을 상실했던 거 같긴 하다.'라는 일종의 반성입니다. 대학원생 때 연구실 운영의 초석을 잡기 위해 정말 욕 빼고는 다 했던 것 같거든요.
모두 아시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성인이 된 후 대학교에 입학합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저처럼 대학원에 입학을 하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성인이 된 후' 대학원에 입학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다들 대학교를 졸업하여 학사 학위를 받고 입학을 하게 되죠. 그래서인지 저는 대학원이 좀 더 정돈되어 있는 소위말하는 '어른들의 집합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분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 회사에 입사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잖아요. 그러니 회사에서처럼은 아니더라도 대학원에서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것은 지켜지는 생활일 것이라고 기대했거든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대체 왜 실험하고 뒷정리를 안 하는 걸까?'
'소모품을 다 썼는데 왜 주문을 안 하는 거야?'
'다 같이 쓰는 장비인데 망가지면 발견한 사람이 수리업체에 연락을 하면 되잖아. 왜 그대로 방치하는 거야?'
'왜 오피스에서 떠드는 거야? 연구실에서 롤도 한다고?
네, 현실은 달랐습니다. 저는 모든 질문들에 답을 찾지 못하고 스트레스만 받고 있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초등학교에서 다 배우는 내용 같은데, 다들 왜 이렇게 이기적으로 행동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우리는 분명히 성인이고, 대학원 밖 사회에는 나와 동갑인 친구들, 심지어 나보다 어린 후배들이 취업해서 회사에 다니고 있을 텐데,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나이에 입학한 대학원에서는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아마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저희 연구실만의 문제일 수 있고, 하필 제가 대학원생일 때 그런 성향의 학생들이 많이 입학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대학원이라는 공간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것일 수도 있겠죠.
제가 몇 번 이야기했던 가장 친한 선배 기억하시나요? 그 선배는 저희 연구실에 첫 번째로 입학한 대학원생이었습니다. 즉, 제일 선배였던 거죠. 저는 그 뒤로 다섯 번째였나 여섯 번째로 입학한 학생이었습니다. 그 선배와 저는 연구실 운영에 관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한 마디로 하면 '자유와 권리는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나온다.'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연구 분위기가 흐려질 때마다 그 선배와 저를 비롯한 몇몇 선배 대학원생들이 모여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전체 대학원생 미팅을 열어서 의견을 듣고 해결 방안을 실천할 방법을 논의했습니다. 그 후 실행해 보고 그 방법에 문제가 있으면 다시 대학원생 미팅을 열고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랩장(한 연구실 내 대학원생들의 대표로 보통 잡다한 행정일부터 교수님과 학생들 사이의 소통의 창 역할을 합니다. 저년차 때 랩장을 시키는 연구실도 있고 고년차 때 랩장을 시키는 연구실도 있는데, 저희 연구실은 연차 순으로 한 학기에서 일 년을 하고 다음 연차 학생에게 넘기곤 했습니다.)이 되고 본격적으로 연구실 운영을 할 때 그 선배의 행동이 계속 서운한 거예요. 분명 따로 의견을 이야기할 때는 저와 생각이 같았는데 제가 대학원생 미팅을 통해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할 때는 이상하게 거기에 동조해 주거나 힘을 실어주는 일이 적었거든요. 이런 일로 그 선배와 저는 건물 계단에서 엄청 자주 싸우곤 해서, 옆 연구실의 친한 대학원생에게 '너네 그만 좀 싸워. 진짜 살벌하게 싸운다.'라는 이야기도 들었었습니다. (둘이 워낙 친한데 또 연구실 일로 의견을 나눌 때는 불같이 이야기해서 놀리 듯 이야기 한 내용이었어요.)
정말 솔직한 그때 제 심정은 '분명히 내 편이 맞는데 내 편이 아니야.'였습니다. 최고년차인 그 선배가 말만 몇 번 더 거들어주면 연구실 운영이 훨씬 수월할 텐데 왜 아무 말 안 하고 본인 연구만 하는지 원망스러웠거든요. 하지만 웃기게도 이에 대한 제 나름의 해답은 입사 후 읽은 채사장 작가님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에서 찾았습니다. (참고로 이런 종류의 책이 제가 원하는 척척박사로 나아가게 해주는, 딱 제 스타일 책이에요.) 책에 나온 구절인데 조금 길지만 한 번 적어볼게요.
노자와 공자는 혼란한 세상이라는 공통분모 위에 발 딛고 있었지만, 그것에 대응하는 방법은 정반대였다. 노자는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그곳에서 떠나고자 했다면, 공자는 그곳을 바꾸고자 했다. 노자가 인위적 개입의 헛됨을 깨닫고 초월적 가치로 나아가고자 했다면, 공자는 개입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현세적 가치를 추구한 것이다. (생략) 어떤 이들은 그곳을 떠난다. 자신의 고결함과 올바름을 지키기 위해 진흙탕 싸움을 피한다. 반대로 다른 이들은 그곳에 남는다. 그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첨예한 논쟁과 갈등 속으로 뛰어든다. 그들은 어떻게든 그곳을 지켜내고자 한다.
제가 이 부분을 읽을 때 마음속으로는 이마를 탁 쳤습니다. 읽자마자 그때 그 선배가 취한 행동과 제가 취한 행동이 떠올랐거든요. 저는 그 선배를 '뭐가 옳은지 알면서 실천은 안 하는, 본인 일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의 노자와 그 선배의 행동이 다를 게 없더라고요. 글 속의 노자를 그 선배로, 공자를 저로 바꾸면 그 당시 상황과 딱 일치했습니다. (그렇다고 저희가 노자와 공자처럼 무언갈 깨달은 사람은 아니고 그냥 평범한 사람이지만요.) 그럼 제가 과연 선배를 원망하거나 비난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 노자의 행동을 저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한 낱 일반인이 평가할 수 없잖아요. 심지어 공자조차 노자를 찾아가 뜻을 구하고자 한 적이 있다는데.
아 이건 내가 옳고 선배가 그르거나, 내가 그르고 선배가 옳은 문제가 아니구나. 그냥 어떠한 상황에서 대처하는 길이 다를 뿐이야.
그 순간부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저는 공자의 생각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고, 그 선배는 노자의 생각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좀 더 나아가서 선배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까요? 졸업 후 같이 학교에 찾아가 후배들과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할 때 선배가 얘기하더라고요. "나도 초반에는 잘 못된 것 바로잡으려고 애들한테 잔소리도 해보고, 교수님이랑 상의도 해보고 다했는데 안되더라. 사실 자기가 문제가 뭔지, 어떤 게 진짜 옳은 건지 알아야 계속 그렇게 행동을 하지. 아니면 내가 한두 마디 할 때 찔끔 바뀌고 다시 돌아가더라고. 안 그래도 바쁜데 그런 걸로 스트레스받는 것도 지쳤고 사람이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손 놓게 되더라." 제가 입학하고 대학원에 적응한다고 여기저기 기웃기웃하고 있을 때 이미 그 선배는 혼자서 노력하고 있었답니다. 저는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이니 알아차리지 못했었던 거였고요.
제가 연차가 쌓이고 연구실 운영을 하기 위해 버둥거릴 때 선배가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네가 맞아.', '잘하고 있어.', '고생한다.'라고 이야기해 주던 것은 본인은 포기한 일을 제가 하고 있으니 괜히 제가 지쳐서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옆에서 조금이나마 응원을 해주고 있었던 거였어요. 하지만 이미 부질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나서서 무언가 행동을 하지는 않았던 거죠. 제가 그 선배와 다르게 쌈닭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저는 그런 상황에서 더 불타올라서 누가 이기나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와다다 추진하는 성향이었던 거죠. 허공에 소리를 치는 것 같은 상황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내가 속한 커뮤니티가 (제 기준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의 스트레스 중 저는 후자가 컸고, 선배는 전자가 컸습니다.
저는 제 행동이 더 옳거나 그 선배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수많은 일이 폭풍같이 벌어졌던 대학원생활을 보내고 나서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생각이 있으며 감히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저라는 사람은 너무 작은 존재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저는 인문학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 받는 스트레스보다는 어떤 이유로 그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을 때 스트레스를 더 크게 받는 사람이거든요.
고민하다가 이 글의 제목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정했습니다. 그 옛날 노자와 공자처럼 생각한 사람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과 그 선배와 제가 노력했던 것이 무색하게 제가 랩장을 내려놓고 졸업한 후 연구실은 다시 엉망진창이 된 결말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사람은 변하지 않잖아요. 여전히 연구실에는 노력하는 후배가 있고, 저는 서너 달에 한 번 연구실에 내려가서 그 후배를 만나 맛있는 걸 사주면서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답니다. 역사는 반복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