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내 남은 인생에서 가장 덜 바쁜 날이다.

스스로 불러온 재미

by 정다감
제가 지금 취미로 사이버대학교를 다녀가지고요...


나름 꾸준히 다니던 센터를 한동안 가지 못하다 이제야 방문했더니, 강사님께서 왜 이제 오셨냐, 오랜만이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아 제가 지금 취미로 사이버대학교를 다녀가지고요... 생각보다 학기 중에 시간이 안 나더라고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취미로 공부를 하는 대단한 사람이 되어있었어요.




제가 지난번에 조만간 사이버대학교에 편입할 예정이라고 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2025년 2학기 부로 상담심리학과 3학년에 편입해서 이제 첫 학기를 마무리하고 겨울계절학기도 끝나서 다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쓰고 싶은 주제가 몇 있었는데,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된 나름의 사정을 설명하고 싶어서 제가 사이버대학교에 편입하게 된 이야기를 가지고 왔어요.


저의 앞선 글들을 봐주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저는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지금 회사에 취업한 게 2023년이라 취업한 지 이제 햇수로 4년, 만으로 2년 반 정도 되었습니다. 처음 사이버대학교에 대해 생각한 것은 2024년쯤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취업한 지 만으로 1년도 안되었을 때라서 회사에 좀 더 적응하면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회사 다니시는 분이라면 공감하실 것 같은데, 회사에 적응했다는 말은 더 바빠졌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업무가 늘어나고, 일이 처리되는 흐름이 보이는 건 제가 어디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업무에 적응하면 적응할수록 저는 점점 더 바빠졌습니다.


그러다 새삼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어요. 제가 대학원 때 배웠던 저만의 인생의 진리 중 하나인데, 바로 '오늘이 내 남은 인생에서 가장 덜 바쁜 날이다'에요. 때는 한창 바쁘던 대학원생 시절, 남자친구가 제 생일을 까맣게 잊고 그냥 지나간 적이 있었어요. 사실 제 생일 당일은 아니었고, 생일 전 주말이었던 것 같아요. 당연히 평일에는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평일에는 밤늦게까지 실험을 하고 주말에도 오후 느지막이 오피스로 출근했습니다) 그나마 주말에 뭐라도 해야 했거든요. 저와 남자친구 중에는 보통 제가 이런 이벤트들을 계획하는 편이었는데, 제 생일만큼은 제가 먼저 챙겨서 준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무런 언급이 없는 남자친구가 불안했지만, 뭐든 하자고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그 주말이 올 때까지 기다렸지만 아무 얘기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네 결국 싸웠어요. 주말이 됐는데 남자친구는 특별히 하자는 게 없었고 제가 이야기를 꺼내니 그 때야 제 생일 전 주말이었던걸 인지하더라고요. 당시 남자친구 말로는 그다음 주가 제 생일 전 주말이라고 생각했다고 사실 너무 바빠서 본인 아버지 생신조차 잊어서 어머니에게 혼났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잘 못한 건 잘 못한 거니까요. (당시 남자친구가 정말 바쁘긴 했지만 저는 1년 중 제 생일이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도 바빴어!)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말다툼 중에 제가 남자친구한테 한 말 때문이에요.


오늘이 너 인생에서 가장 덜 바쁜 날일 거야. 지난날들을 생각해 봐. 당시에는 이보다 더 바쁠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 근데 지금이 그때보다 더 바쁘다고 느껴지지 않아? 네가 되고 싶은 교수가 되면 지금보다 안 바쁠 것 같아?


이 것이 바로 제가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사이버대학교 편입을 강행한 첫 번째 이유입니다. 당장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 일정이 정해져 있고, 그 프로젝트가 올해 마무리 된다고 해도 새로운 프로젝트는 계속 생기겠죠. '이 파도가 지나가면 여유가 생기겠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회사일은 반복될 뿐입니다. 결국 제가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저에게 덜 바쁜 시기란 오지 않으며 시간은 마련하기 나름이었던 겁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저는 더 이상 대학원생처럼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회사가 덜 바빴고 제가 신입사원 교육을 받으며 지냈던 취업 초에는 일주일에 다섯 번은 운동을 가고 틈틈이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 퇴근 후 삶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회사 내 절대적인 업무량이 증가하면서 야근을 하는 일이 많아지자 (물론 그만큼 월말에는 휴무를 사용했습니다.) 퇴근 후 일상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팀원들과의 전우애만 커지다가 깨달았습니다. '지금이 대학원 다닐 때랑 뭐가 다른 거야!'. 저에겐 회사 생활 외에 저의 일상을 채울 (반 강제적인)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기 전에 책을 30분 읽는 것보다는, 출석 기간이 정해져 있는 사이버대학교 강의를 30분 듣고 자는 게 더 쉬운 일이었거든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하면서 저는 어떤 일상으로 인생을 꾸려나갈지 고민했어요. 대학원까지는 논문, 졸업, 취업이라는 목표가 주어지지만 회사생활은 명확한 목표가 없을뿐더러 끝나는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거든요. 회사원 4년 차인 지금 저에게 회사는 박사 학위를 활용하는 수단이자 경제력을 확보하는 도구입니다. 운 좋게 성격 좋고 부지런한 팀원들을 만났고, 회사 업무에는 충분히 적응해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큰 부분이 회사생활과 같이 외부 요인에 의해 크게 변화할 수 있는 것에 의지하고 있으면 제 인생에 대한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사이버대학교를 다니는 선택은 제 인생을 한 곳에만 몰아두지 않는 일종의 분산투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저에게는 같이 사이버대학교를 다니는 동지가 있습니다. 바로 제 남동생인데요. 저는 화학공학, 제 동생은 컴퓨터공학 전공인데 사이버대학교에서 선택한 학과는 각각 심리상담학과와 경영학과입니다. 우당탕탕 첫 학기를 끝내고 본가에서 만난 동생에게 "생각보다 너무 바쁜데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어. 이건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잖아."라고 했더니 동생이 해줬던 말이 생각나네요.


"스스로 불러온 재미라고 생각하는 건 어때?"


누나보다 나은 남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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