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불쌍하지 않은 사람 없다

by 데이지

입사 동기의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를 위해 헌혈증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직접 헌혈을 하기도 하고 주위에 수소문해 받기도 한 헌혈증을 십시일반 모아 전달했다. 나와 우리 가족의 병원 출입도, 다른 누군가가 아프다는 소식도 점점 잦아진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무리 흔해져도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는 일들이 있다.

- 엄마, 엄마아빠가 아픈 걸 보는 거랑 자식이 아픈 걸 보는 거랑은 다르겠지.
- 그럼. 엄마 봐봐. 외할아버지가 십 년 넘게 누워 계셨어도 멀쩡히 문병 다니고 병수발 들고 다 했는데 너희가 어쩌다 한 번 아프면 아무 일도 못 하잖아.


지인들의 부고가 조부모님에서 부모님으로, 배우자로, 간혹 자녀로까지 불쑥 내려오는 것을 볼 때 마음이 덜컥 내려 앉는다. 무어라 조문사를 건네야 할 지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없어 끝내 입을 열지 못하고 돌아온 적도 다반사였다. 나는 영화나 책을 보고도 잘 울지 않는 강심장이다. '저건 허구야'라는 강한 자기암시를 걸어 슬픔을 무력화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문상을 가게 되면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는 눈물에 당황한다. 눈 앞에서 마주하는 상실의 아픔은 말없이 전이된다. 눈물은 언어 대신 조의를 전달했다.


주민등록상의 나이와는 별개로 모두가 다른 사회적 나이로 살아간다. 집이나 회사에서 막내인 관계로 적지 않은 나이임을 자꾸 잊는다. 그러나 관혼상제의 도리 중 혼례보다 부고의 소식이 더 잦아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카톡 프로필 사진에서 지인의 사진보다 아이들의 사진이 더 많아졌을 때, 나이의 무게는 조금씩 무거워진다. 인맥의 지층이 다양해질수록 경사도 조사도 늘어나고, 인간사의 대소사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났다.


사진 속의 아이들은 돌잔치를 하고, 유치원이며 초등학교 입학을 하며 빠른 속도로 아기에서 어린이가 된다. 부모들은 키나 학년 대신 다른 것들을 늘려 간다. 당수치나 혈압이라던가 체중같은 것들. 자동차 배기량이나 아파트 평수나 부채잔액 같은 것들. 그리고 삶의 무게와 부모의 책임 같은 것들. 철모를 때는 남의 이야기를 가십처럼 엄마에게 전했다. 엄마는 남 얘기를 정말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하는 딸을 나무랐다. 알고 보면 불쌍하지 않은 사람 없다. 사람 사는게 별 게 없어. 사람은 다 안된거야.

세상에는 잘 된 사람들도 많은데, 다 가진 것 같은 부러운 사람들도 많은데 엄마는 왜 사람들이 안됐다고 할까. 그건 아마도 엄마가 많이 아팠기 때문일 것이리라 생각했다. 엄마가 없었기에 늘 마음이 아팠고, 사고의 후유증으로 늘 몸이 아팠기 때문이리라. 직육면체의 숨겨진 면을 찾으시오, 와 같은 수학 문제처럼 엄마는 사람들의 아픔을 자연히 감지했다. 엄마의 감정에는 좀처럼 내성이 생기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가장 따뜻한 마음은 아마도 연민이 아닐까. 그러나 엄마는 딸에게만은 모순된 태도를 보였다.
- 알고 보면 불쌍하지 않은 사람 없어. 사람은 각자 다 자기 몫의 짐이 있는 거야.
- 엄마, 남걱정 하지 마. 우리가 제일 불쌍해.
- 우리가 뭐가 불쌍해. 말을 곱게 해야 복이 들어오지.
- 알았어. 우리가 제일 행복해. 됐지?
- 그래.

불쌍하지 않은 사람 없다더니, 우리는 또 불쌍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