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동화(童話)와 동화(同化)
아버지의 수술이 끝나고 엄마는 감기몸살과 장염으로 크게 앓았다. 주말에 집에 가서 엄마를 볼 때마다 엄마는 나날이 야위어 갔다. 누가 보면 아버지가 아닌 엄마가 수술을 받은 줄 알 것 같았다. 몸을 지탱해 줄 근육이며 살이 모두 빠져나간 것 같았다. 반원형으로 굽은 등을 한 채 엄마는 끊임없이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안 움직이면 집안 꼴이 뭐가 되니, 하면서. 딸은 엄마에게 누워 쉬라고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러나 딸은 힘이 없어진 엄마 손에서 득의양양하게 청소기를 빼앗았다.
딸이 이 몰골이었다면 엄마는 딸보다 더 크게 앓아누웠을 것이다. 과한 걱정이나 '그럴 줄 알았다'로 시작되는 공격을 받지 않으려면 좋지 않은 일은 아예 숨기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엄마에게는 '내 딸에게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의 긴 목록이 있었다. 삶은 동화가 아닌 현실이라, 일어나는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삶의 어려움을 마주할 때마다 딸은 남보다 태연했고 엄마는 남보다 동요했다. 고통을 증가시키는 함수라도 적용되는 것일까. 이미 엄마를 잃은 엄마는 작은 위기라도 감지될 때마다 딸마저 잃을 수 없다는 방어기제가 폭발하는 듯했다.
딸은 자신이 겪고 있는 어떤 일들보다도 엄마의 오열이나 비탄을 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사회에서 권장한 각종 도서와 이야기 덕분에 딸은 사람의 성장을 위해서는 시련이 필요하다고 쿨하게 생각할 줄 알았다. 가끔 감당하기 힘들어 질 때면 신화와 영웅담과 위인전을 떠올리며 애써 위안을 삼았다.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이런 일을 겪는 걸까, 조금 덜 훌륭해지고 평범한 아줌마로 살고 싶었는데. 혹은 더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고통의 비교급은 비겁한 일이지만 효과적인 일이기도 했다. 나의 고통이란 누군가의 더 큰 고통 앞에 맥을 추지 못하는 법이다.
제법 배포를 부리는 딸이었지만 엄마는 늘 아킬레스건이었다. 딸은 속내를 감춘 채, 무너져내리는 엄마 앞에서 한없이 매정하게 굴었다. 삶의 본질이란, 누구에게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나에게만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 그래서 엄마에게는 너무나 미안하지만, 엄마 딸에게 일어난 일은 엄마가 그토록 충격에 휩싸이고 비통해 할 일이 아니라는 것. 자라면서 엄마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이야기였는데 엄마는 다 잊은 모양이었다. 다 자란 딸은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엄마에게 다시 일러 주고 있었다.
엄마, 나에게만 일어나지 않는 비극은 없어. 엄마는 상상하기 싫겠지만, 사실 어떤 나쁜 일도 더 일어날 수 있어. 하지만 뒤집어 보면, 나에게만 일어나지 않는 좋은 일이라는 것도 없는 거니까 어떤 좋은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거잖아.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어, 하는 나쁜 일이 아니라, 와 나한테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구나! 하는 좋은 일도 생길 수 있는 거야. 엄마는 딸에게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엄마도 알지. 아는데, 그게 네 일이면 마음대로 안 되는 걸 어떡해.
딸은 매번 비틀대고 넘어지는 엄마의 심약함이 걱정스러웠다. 엄마를 비판하기도 하고 나무라기도 하고 간혹은 화를 내기도 했다. 엄마는 더 강해져야 한다며 다그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딸이 그 모든 시간을 쓰러지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등뼈를 세우고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엄마 덕분이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를 하며 허우적대던, 지난(至難)했던 지난날에는 언제나 그 깨진 자리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던 엄마가 있었다. 콩쥐야, 넌 걱정 말고 잔칫집에 가렴. 구멍난 물독을 메우고 있던 두꺼비처럼 있는 힘껏 버티어 주던 엄마가 아니었다면 딸은 항아리에 그토록 평온하게 물을 가득 채울 수 없었으리라.
언젠가 엄마가 곁에 있지 못하는 날이 오더라도 딸은 먼 심연의 밑바닥에서 기꺼이 몸을 낮춰 깨진 홈을 메꾸고 있는 엄마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요술도 마법도 부릴 줄 모르는 우직한 엄마지만, 삶은 동화가 아니며 요정이나 선녀나 산신령은 나타나지 않는 것을 알지만, 엄마는 그 모든 조력자의 총합보다 큰 존재기에. 도움닫기를 하는 것조차 늘 헤맸던 울보 늘보 딸에게 엄마는 늘 든든한 발판이었다. 엄마를 딛고, 엄마 등을 받치고 헤쳐온 세월이 너무 길어서 딸은 엄마의 앙상한 등을 바라보기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