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수술

by 데이지

"느이 아빠랑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니."

아버지의 건강 검진 결과가 좋지 않았다.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을 전하며 엄마는 언제나와 같이 말문을 열었다. 엄마는 딸 역시 아버지와 33년을 넘게 함께 살았다는 사실을 잊은 사람처럼 말했다. 연애를 하는 친구들이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고, 결혼한 친구들이 남편 이야기를 하듯 엄마는 매일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딸이 회사나 친구 이야기를 하듯 엄마는 아버지 이야기가 주요 소재였다. 가장 가깝고 흔한 사람과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까닭이다. 내용은 대체로 짐작 가능했다. 아빠가 얼마나 '남의 편'만 드는지, 아빠가 얼마나 엄마 말을 듣지 않는지, 아빠가 얼마나 엄마 속을 썩이는지.


엄마가 아직 여고생일 때 엄마에게 한눈에 반한 아버지는, 엄마의 대학 시절 내내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엄마를 쫓아다녔다. 교문 앞이며 대문 앞이며 엄마가 가는 길목마다 밤낮으로 기다리고 있었다던 아버지는, 오빠와 내가 태어나자 아이들이 밤낮으로 울어대도 숙면을 취하는 능력을 발휘해 엄마의 배신감을 초래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와 결혼한 엄마에게는 비교 대상이 없었다. 엄마는 아버지 외에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으니 비교할 '전남친'도 없었고, 여중-여고-여대를 졸업한 데다 사회생활을 해 본 적이 없으니 다른 '남사친'도 없었다. 객관적인 시각보다는 주관적인 경험만이 작용했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늘 '평생 고생만 시킨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


아내가 보는 남편과 딸이 보는 아버지는 달랐다. 아버지는 자상하고 다정했다. 고등학교 때 통학버스를 타려면 새벽같이 일어나야 했다. 아침잠이 많은 딸이 일찍 일어나는 것을 힘겨워할 때면 아버지는 최후의 수단으로 볼뽀뽀를 했다. "아빠 저리 가라니깐!" 딸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초등학교 남학생들이 짝사랑하는 여학생을 부러 쫓아다니며 짖궂게 행동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지금도 매일 아침마다 긴 문자를 보내고, 눈이나 비 예보가 있을 때마다 우산을 챙겼는지 전화를 하신다. 아직도 엄마와 길을 다닐 때 손을 꼭 잡고 다니는 아버지의 핸드폰 주소록에 엄마는 '나의 사랑 OO' 으로 저장되어 있다.


"내가 연애를 한 번만 더 해 봤으면 느이 아빠랑 결혼을 안 했을 거라니깐."

엄마가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는 늘 칭찬보다는 흉을 보기 위한 경우가 많았다. 엄마가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남편 흉보기는 주부들의 일과 중 하나인 것이다. 결혼한 친구들은 모이면 경쟁이라도 하듯 설전을 벌였다. 남편이라는 족속들은 어찌하여 바지며 양말을 늘상 뒤집어 벗어 놓는 것이며, 빨래통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며, 장을 봐 오라고 내보내면 꼭 뭔가를 빼먹고 사 오는 것인지에 대하여. 왜 시키지 않으면 잠옷을 개어놓을 줄 모르는지, 왜 버젓이 있는 식탁을 두고 TV 앞에서 무언가를 먹다가 흘리는지, 왜 집안일을 하고 나면 꼭 잘했다는 말을 해 주기를 바라는지에 대하여.


그러나 이것은 사소한 트집이기에 가능했다. 배우자나 가족에게 진정으로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경우에는 타인에게 말하기조차 어렵다. 모두가 알고 있는 부족함은 구태여 드러낼 필요도 없다. 오히려 동정을 피하기 위해 그것을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일로 만들고자 한다. 남편이 실직을 했거나, 사업이 부진하거나, 중병에 걸렸거나 한 경우에는 오히려 밖에 나가 남편을 감싸는 것이 아내들이다. 남자들의 수다는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 남편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느이 아빠랑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니."

도돌이표다. 2절이 시작되려나 보다. 토를 달거나 잘못 변호를 하려 들었다가는 엄마의 분노를 북돋을 수 있다. 딸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아버지의 수술을 앞두고 엄마는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큰 수술이 아닌 시술 수준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했지만 가족은 늘 걱정이 되기 마련이다. 엄마의 걱정은 아버지에 대한 푸념으로 에둘러 방출되었다. 일생 마음 졸여 살았는데, 칠순이 다 된 지금도 끝끝내 연말에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속상함과 불안함이 북받친 엄마는 기어이 눈물을 보였다. 딸은 엄마의 등을 쓸어 주었다. 잘 될 것이다. 잘 될 것이었다. 딸이 울고 있을 때 엄마는 딸 앞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 딸은 엄마에게 휴지를 건넸다. 딸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