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겨울, 겨울의 엄마

by 데이지

추위를 많이 타는 딸은 여름이 좋았다. 똑같이 추위를 많이 타는데도 엄마는 겨울을 좋아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크리스마스가 있다는 것. 매년 반복되는 크리스마스다. 별다른 이벤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늦여름이 생일인 엄마는 생의 첫 기억을 초록이 만개한 풍경으로 간직하고 있어야 마땅할 터이다. 그래도 엄마는 눈이 소복한 풍경과 연말, 연초의 들뜬 분위기에 설렜다. 캐롤과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산타할아버지와 루돌프에, 반짝이는 전구와 번쩍이는 전광판에 딸보다 눈을 빛내는 엄마가 있었다.

딸은 추위가 달갑지 않았다. 겨울옷은 값이 많이 나간다. 옷의 값어치가 제법 큰 차로 벌어지는 까닭에 여름보다 겨울은 늘 버겁게 느껴진다. 여름은 옷도 옷값도 가볍다. 지출이 줄어드니 덩달아 흥이 난다. 재난 수준의 더위가 종종 덮치는 요즘은 고마움이 덜해졌지만 해가 길어 불도 덜 밝히게 되고 여행을 가도 짐이 한층 가뿐하니 여름이 늘 반가웠다. 장마철만 없다면 완벽할텐데. 연중 온난한 기후가 이어지는 하와이나 플로리다 같은 곳은 얼마나 살기 좋을까. 나이가 들면 꼭 따뜻한 곳에 가서 노후를 보내야지, 딸은 다짐하곤 했다.

-엄마는 12월이 제일 좋아.
가로수에 휘감긴 led 전구를 보며, 건물을 수놓은 빛의 캔버스를 보며 엄마는 들뜬 목소리로 말하곤 했다. 연말의 조명은 절로 감탄사를 연발케 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해마다 진화하는 세밑의 루미나리에는, 빛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경지를 해마다 경신시켰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는 것에 익숙해진 대중에게 내년에는 또 어떤 광경을 선사하려나. 그 자체로 기쁨을 주는 공공 예술작품이 된 설치미술이다. 한 철 밝히고 묵히기에는 아까울 지경이었다. 겨울은 밤이 길어서 불만인 딸도 이런 전구들이 길을 밝혀 준다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빛이 많으니까 좋잖아, 어둡지 않고.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12월이 이렇게 휘황찬란해서 더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도 있어 엄마.
딸은 괜한 타박을 했지만 실은 엄마가 웃는 것이 좋았다. 엄마의 철없는 모습을 보는 것도, 조명을 보다 말고는 고개를 돌려 엄마랑 핫초코 먹을래? 하고 천진하게 묻는 엄마를 보는 것도. 엄마, 내가 사줄 테니까 그냥 한 잔씩 마시자.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굳이 혼자서는 한 잔을 다 못 마신다며 한 잔만 사서 나눠 마시자고 한다. 핫초코를 마시는 엄마의 표정이 세상 행복해 보여서, 딸은 두세 모금을 마시고는 내키지 않는 척을 한다. 이제 엄마의 웃음에 조금씩 활기가 없어지는 것을 보며 딸은 마음이 시리다. 가뜩이나 겨울이라 시리고 추워서 시린데, 엄마가 시리다. 엄마의 웃음이 없는 크리스마스는 아무리 시끌벅적하고 호화롭더라도 성냥팔이 소녀처럼 춥게 느껴질 것 같다. 딸은 엄마가 있어 사계절이 축제였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엄마가 없었던 엄마는 또다른 축제가 필요했음을.

엄마는 여전히 겨울을 좋아하지만 부쩍 춥다는 말이 잦아진 것을 느낀다. 나이 들수록 겨울 나기가 힘들다는 말은 매년 빈도가 증가한다. 여름도 겨울도 모두 힘들다며 힘없이 웃는다. 겨울의 나목같이 자꾸 야위어가는 엄마를 보며 딸은 부러 철없이 툴툴댄다. 엄마 여름이랑 겨울은 누구나 다 힘들어. 그러나 엄마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자꾸 가슴이 시리다. 추위 탓만은 아니다. 엄마와 있는 겨울이, 엄마가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며 소녀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겨울이 문득 소중하게 느껴지는 탓이다. 생의 겨울을 맞이하며 서 있는 엄마를 보며 어찌할 수 없는 딸은 자꾸 춥기만 하다. 이번 주에 엄마를 만나면 말해야지. 엄마, 나도 12월이 너무 좋아. 퇴근길, 백화점을 밝힌 눈부신 크리스마스 조명을 보며 딸은 엄마의 웃음을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