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노부부

by 데이지


11월의 추위가 찾아왔다. 이제 산책을 하기에는 다소 쌀쌀해졌다. 밖을 거닐기보다는 따뜻한 곳에 들어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 기온. 엄마와 딸은 동네 빵집에 앉아 핫초코를 마신다. 창 밖에는 겨우 남아 있는 단풍 끝을 바람이 계속 스친다.. 조만간 가지는 앙상해질 것이다. 춥다 엄마, 겨울이 점점 추워지는 것 같아. 딸의 말에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옛날보다는 많이 따뜻해졌지. 엄마가 어릴 때만 해도 10월 중순부터 추워져서 겨울에는 한강이 매번 얼었는데, 요즘은 그만큼 춥지는 않잖아. 아 그런가. 지구온난화의 영향인가봐. 딸은 입가에 묻은 코코아가루를 훔쳐냈다.


11월은 경계선상에 위치해 있다. 가을도 겨울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가을과 겨울에 둘 다 속해 있는 것 같기도 한 달이다. 11월 초에도 이미 날은 충분히 쌀쌀해서 코트와 패딩을 만지작거리지만 아직 가을인가 싶어 망설이게 된다. 동화 <빨간머리 앤>에서 앤이 11월에 단풍을 들고 초록지붕 집의 층계를 달려 올라가며 흥분해서 외치는 것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아줌마, 11월은 정말 멋진 달이에요. 10월에서 12월로 건너 뛰었더라면 얼마나 재미가 없었을까요!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감수성 예민한 소녀 앤은 낙엽에도 가슴이 설렜겠지만 오는 길에 눅눅한 은행잎을 밟고 미끄러질 뻔한 딸은 엄마에게 투덜댄다. 저 은행잎 때문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지 뭐야. 엄마도 조심해.



길에 깔린 은행잎 위로 노년의 부부가 느릿느릿 길을 걸어가고 계셨다. 그 분들만을 중심으로 슬로우모션이 펼쳐지는 것과 같은 갑작스러운 느림이었다. 12월을 목전에 둔 11월이라는 농익은 만추의 시기가 연로한 부부와 꽤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만큼 단풍이 짙거나 풍성한 가을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도 아니고, 12월 만큼 연말의 설렘이나 화려함으로 들뜬 것도 아닌, 그 사이의 조용하고 묵묵한 11월. 그러나 결실과 마무리의 어딘가에서 숨고르기를 하는 달. 지키고 돌봐야 할 일상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달. 그 흔한 달력의 빨간 날 하나 없고, 직장인 보너스도 없는 밋밋한 달. 조금은 심심한 듯, 조금은 초라한 듯하지만 그래서 한가위 명절과 단풍놀이로 흥청대던 들뜬 마음에 경종을 울리는 모범적인 달이자, 1년의 마지막이 오기 전에 다시 한 번 한 해를 되돌아 볼 기회를 주는 자비로운 달이기도 하다. 아직 못다한 월동준비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여름옷도 모두 해결하면 될 것 같은 다듬질의 달이다.


회사 사람들은 휴일 하나 없는 11월이라며 투덜대기도 했지만, 내심 중간에 건너뛰지 않고 매일 같은 보폭으로 리듬을 회복할 수 있는 11월이 있음에 감사했다.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년의 부부는 그 보폭으로 걷기를 수십 년째일 것이다. 미색의 외투를 맞춰 입은 모습은 소위 '커플룩'을 연상시켰다. 부유하지 않아도 충분히 부럽고 다정해 보이는 노년의 모습이다. 젊은 사람들도 짝을 찾지 못해 헤매고 고뇌하는데 저분들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삶의 동반자로 살아왔을 것인가. 거기다가 아직 서로에게 서로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나도 저렇게 늙고 싶어, 하는 말이 무심결에 튀어나왔다. 젊은 연인이나 신혼부부에게서 볼 수 없는 익숙함과 편안함이 자연스럽게 묻어났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다가, 작은 한숨을 쉬었다. “저 나이까지 얼마나 힘겹게 살아왔겠니.”


어머니도 이제는 아버지와 함께 살아오신 햇수가 어머니 혼자 살았던 햇수보다 훨씬 많아졌다. 누군가와 함께 만 40년의 세월을 살 수 있을까. 아니, 혼자의 삶에 지나치게 익숙해진 내가 누군가의 삶을 함께 짊어지고 갈 수 있을까. 황혼을 함께하는 부부에게서 30대의 딸은 생을 나눠 온 평온함을 보고 60대의 어머니는 그들이 견뎠을 삶의 질곡을 본다. 아직 철이 덜 든 딸은 낭만을 찾고,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어머니는 지난하고 우여했을 여정을 떠올린다. 딸은 어머니가 겪어 왔을 날들을 생각한다. 한숨이 앞서지만 종래에는 미소로 마무리할 날들을. 엎치락뒤치락하는 웃음과 아픔의 어디쯤에서 쳇바퀴를 굴렸을 날들을. 찬란하고 화려한 날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무탈하고 무사한 날에 감사하는 지금을. 서둘러 걷는 행인들 사이에서 노부부는 느린 걸음조차 잠시 쉬어가며 고즈넉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대방이 발자국을 떼기 위해 조금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미리 인지하고 있는 까닭이리라. 서로의 동력이 충전된 것을 확인하고서야 두 분은 응차, 하듯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알고 있다. 누구나 다른 시간의 속도로 살아간다. 마음은 달리 반응했다. 나의 시계는 항상 종종걸음으로 살아야만 뒤쳐지지 않는다고 다그쳤다. 멀미가 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무의미한 뜀박질을 해 왔던 시간이다. 노부부의 선량한 느릿함은 그 속도를 초월한 데서 오는 넉넉함이자 그 속도를 모두 지났기에 가질 수 있는 여유이기도 했다. 아마 두 분도 어떤 시절에는 현재의 나처럼 동동대며 분주하기만 한 시간을 지나오셨을 수도 있다. 시간의 등고선을 넘었기에 이제는 느린 걸음으로 가도 괜찮은 지점에 이르신 것이리라. 등이 살짝 굽은 듯한 할머니와 다리가 조금 불편한 듯한 할아버지는 손을 꼭 잡고 계속 길을 가셨다. 나지막한 걸음을 옮기는 노부부의 뒷모습은 그들이 함께한 날들 만큼이나 견고해 보였다. 평화가 그들과 함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