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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Jan 09. 2019

왜 꼭 전남친보다 잘난 남자를 만나야 할까?

'난 1분만에 전남친보다 잘난 남자 만난다'

포털사이트에 떠 있는 결혼정보회사의 광고 문구였다. '전남친보다 잘난 남자' 라는 말이 문득 씁쓸했다. 소위 말하는 'O차 가고 벤츠 온다' 는 21세기의 속담은 어쩌면 이렇게 정확하게 사람들의 가치를 물질로 규정짓는 것일까. 그들이 헤어진 것은 누가 더 잘나고 못나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헤어질만한 그들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결혼정보회사의 미끼 문구인 것은 알지만 왜 꼭 전남친, 전여친보다 잘난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걸까. 전에 만났던 사람을 잊었다는 전제 하에, 혹은 잊기 위해 새로운 사람을 찾으려 할 텐데 그 자리에서도 전남친과 소개팅남을 비교하고 있다면 상대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 아닐까. 그렇게 해서 전남친보다 잘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저 회사를 찾으면 그 곳에는 또 자신보다 잘난, 혹은 전여친보다 잘난 여자를 만나려는 사람들이 나의 외모를 관찰하고 나의 가치를 계산기로 두드려보고 있지 않을까.


'잘난' 사람의 기준은 무엇일까. 잘났는지는 모르지만 내 눈에만 잘나고 내 눈에만 멋진 사람이 있다. 누가 더 아깝다, 누가 결혼을 잘했다 잘못했다는 이야기들을 사람들은 쉽게 한다. 얼마 전 지인의 결혼식을 갔었다. 신랑은 누가봐도 훤칠한 미남이었는데, 사람들은 신부의 얼굴을 보며 몰래 수군댔다. "OO(신랑 이름)씨가 생각보다 눈이 낮네." 남의 결혼식장에서 오가는 그 말들이 참 냉정하게 느껴졌다. 그의 눈에는 자신의 신부가 가장 예뻐 보일 것이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신랑과 신부는 눈에서 꿀이 떨어지고 있었다.


가끔 회사에서 마주치는 신랑은 아직도 얼굴에서 빛이 난다. 누군가 그에게 "결혼하니 좋냐?" 고 물으니 그는 쑥스러워하며 "행복합니다." 라고 답했다. 이 예쁜 커플을 보며 나는 내심 그 날 결혼식에서 신부의 외모를 품평하던 사람들에게 고소한 마음이 든다. 남들이 뭐라 하든 이 부부는 이토록 서로를 아껴주며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고 있지 않느냐고. 당신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신부의 아름다움을 저 신랑은 독차지하며 살고 있으니 더욱 운이 좋은 것 아니겠느냐고.


사람들의 평가나 사회적 기준에 연연하지 않고, 내 눈에는 더없이 완벽한 사람이 있다. 아니, 완벽하지 않은 것을 알지만, 그의 부족과 불완전을 모두 알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기에 괜찮은 사람이 있다. 나 역시 완벽하지는 않기에. 내 단점은 나만 알고 있는 것처럼, 그 사람의 장점은 그의 짝꿍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실수투성이에 소심하고, 남들은 엄청 꼼꼼한 줄 알지만 사실은 허당끼 가득하고, 밤에 늦게 다니는 건 아직도 무섭고, 엄마한테 혼나는 일은 아직도 하기 싫은 덜 자란 어른인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그래도 한 명은 있을 거라는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다.


물론 나 역시 '잘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함께 산책이나 걷기를 자주 할 수 있고, '너는' 이라는 호칭 대신 꼭 이름을 불러 주고, 욕설이나 불평이나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짜고 매운 음식보다는 슴슴한 음식을 좋아하고, 가족들과 사이가 좋고, 놀이공원이나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내가 제대로 꾸미지 못하고 나왔을 때도 오늘 예쁘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런 사람을 결혼정보회사나 중매쟁이를 통해 만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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