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이에는 이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

by 데이지

자고 일어나면 동계올림픽의 뉴스가 업데이트 되는 환희의 날들이기도 하나, 밤 사이 묻혀있던 성범죄자들이 하나씩 수면에 드러나는 참극의 날들이기도 하다. '절대 그렇지 않을 것 같던' 사람들 조차 가해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위선이었는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조작인지, 얼마만큼을 믿어야 하며 얼마만큼을 걸러내야 할 지 혼란에 빠진다.


성범죄가 이토록 만연한 사회였으며 약자는 보호받지 못했다. 다행히 용기있는 자들은 입을 열었으나 아직도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어둠의 기억에 갖혀 있을지, 가려지고 묻혀지고 은폐된 악행은 얼마나 주위에 도사리고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엉뚱한 곳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피해자가 아닌 언론에 사과를 전달하며 무마하려는 자들도 있었다.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고도 하였고 원수를 사랑하라고도 하였으나 이는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가 더 공정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변모할 수 있을 때의 얘기다. 성서는 또한 이렇게도 역설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을 때려서 죽인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때린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탈출기 21장)


어찌보면 동해보복법, 혹은 동태복수법이란 가장 원시적이고 단순하나, 또한 가장 공정하고도 이의 없는 해결책인지도 모른다. 처벌보다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현재의 형벌이 사회 안전망과 '가해자의 인권'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피해자의 상처와 '결국 당한 사람 손해'라는 사회적 공포심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사필귀정, 상선벌악, 권선징악과 같은 교과서적 진리들이 사회에서 실현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후대에게 이것을 진리로 가르치고 사회를 선한 방향으로 이끌고 싶다면 사람의 힘으로라도 이것을 지켜내야 한다. 문명사회란 결국 긍정적 목표를

향한 공동체의 욕망에서 출발하여 건전한 집단 이기주의를 통해 발전하나 종래에는 집단 지성의 힘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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