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쁜 습관이 있었다. 소보로빵이나 단팥빵을 먹을 때 이른바 ‘맛있는 부분’만 골라 먹는 것이었다. 소보로빵은 빵 위의 과자같은 부분만, 단팥빵은 빵 안의 앙금 부분만을 쏙 빼 먹곤 했다. 나와 오빠는 엄마를 놀리곤 했다. “엄마는 우리한테는 편식하지 말라면서 엄마가 편식하고 있잖아!“ 엄마는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그래도 빵의 밋밋한 부분을 고집스레 남겼다.
엄마가 남긴 빵은 고스란히 아빠의 몫이었다. “누가 또 아빠 먹으라고 이렇게 남겨놨구나?“ 하며 헐벗은 소보로빵에 잼을 발라 먹거나, 껍질만 남은 단팥빵을 커피와 함께 먹거나 하는 식이었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 아빠와 산다는 것은 엄마에게 큰 행운이었다. 그러나 정말 행운은 아빠와 엄마의 서로에 대한 마음이었다. 아빠는 엄마가 남긴 빵의 나머지 부분을 먹는데 전혀 불만이 없었다. 아니, 사실은 조금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엄마가 고맙다고 말하면 역시 나 만나길 잘했지, 하며 으쓱해하곤 했다. 아빠가 엄마를 이만큼 사랑한다는 증표같아 보이기도 했다.
아빠는 늘 퇴근이 늦었다. 우리는 주로 저녁을 9시쯤에야 먹었다. 다른 집에서는 저녁을 6시쯤 먹곤 한다는 것을 친구 집에 놀러가서야 알았다. 밤 늦게 자꾸 무언가를 먹는 습관은 아마 이 무렵부터 고착화된 행동이리라. 엄마는 나와 오빠가 8시쯤 배가 고프다고 보채거나 하면 우리에게 먼저 저녁을 먹게 했다. 그리고 엄마는 아빠가 아무리 늦더라도 꼭 아빠를 기다렸다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은 뒤라도 식탁에 앉아서 재잘댔다. 엄마는 저녁을 먹고 과일을 깎아 주곤 했다. 그 늦은 시간에 저녁을 먹고 나면, 설거지를 하고 음식 잔여물을 정리한 뒤 한밤중이 된다는 것을 어릴 때는 몰랐다.
그러니까,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우리에게는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식탁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와 오빠에게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법 소상히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고,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를 가만히 앉아 듣고 있을 때도 있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알 턱이 없었지만 그래도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은 퍽 재미있었다. 때로 오빠와 나는 서로 놀리거나 발장난을 하며 킥킥대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엄마아빠만 남겨놓고 방에 들어갈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강아지처럼 엄마아빠만 보며 앉아 있기도 했다. 가족이 함께 모여 있다는 자체로 아늑하고 평온했다.
모카빵의 과자같은 껍데기 부분을 떼어 먹다가 문득 아빠와 엄마 생각이 났다. 아빠는 사실 빵의 남은 부분을 굳이 먹지 않아도 되었다. 혹은 엄마에게 음식을 남기지 말라고 타박할 수도 있었다. 엄마는 아빠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우리와 저녁을 먹을 수도 있었다. 외식을 하고 들어오라고 할 수도 있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집밥을 차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빠가 집에 와서 혼자 늦은 저녁을 먹는 것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나와 오빠는 그 모습이 좋았다. 엄마아빠의 믿음과 애정 속에 우리는 더할 수 없이 안온했고, 온전한 보호의 울타리 속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 또한 그 사랑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든든함과, 그 사랑의 결과물이라는 묘한 뿌듯함 같은 것이 있었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은 기분 좋은 것이다. 나를 향한 것이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든.
이제는 과연 결혼을 하게 될지, 자녀를 낳게 될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마음이 가는 누군가를 만나면 넌지시 물어볼까. 혹시 내가 모카빵의 윗부분만 야금야금 떼어 먹으면 그 나머지 빵을 먹을 수 있겠냐고. 아니, 최소한 핀잔은 주지 않을 수 있겠냐고. 서로가 첫사랑인 엄마와 아빠는 이미 말하지 않아도 척척 호흡이 맞는 것들이 많았다. 서른이 훌쩍 넘어 만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과한 욕심일지도 모른다. 엄마아빠처럼만 살고 싶었는데 그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은 미처 몰랐다. 아직도 손을 꼭 잡고 걸어 다니시고, 소소한 장난을 치며 웃곤 하시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새삼 감사하다. 그 사랑이 아직도 나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