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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Jun 07. 2022

내 생애 최악의 해에 당신을 만났다

미드 ‘내가 그녀를 만났을 (How I Met Your Mother)’의 주인공 테드는 정말 간절히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 운명의 그녀를 만났다고 생각해 결혼하기로 했는데 그녀는 결혼식날 전남친과 눈이 맞아 도망간다. 직장에서 잘리고, 식장에서 버림받,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가 망하고.  모든 일을 겪은 해에 테드는 그 도망간 여자 남편의 ''으로 (엄밀히 말해서는 동정심으로) 인해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된다.  강의실에는 훗날 그의 아내가 될 사람이 있었다. 그러므로 생애 최악의 해는 실제로는 생애 최고의 해였다는 .


남편을 만나던 해에 내가 그랬다. 서른, 아홉. 스물아홉과는 달리 농익을 대로 농익은 감정과 체력은 서서히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삼십 대 후반 사십 대 초반의 미혼 여성을 보는 시각은 이십 대후반 삼십 대 초반의 미혼 여성을 보는 시각과는 많이 다르다. 뭘 하다가 이렇게 되었느냐, 눈을 낮춰야지, 라는 힐난조의 눈빛과 저 나이 먹고 안됐다는 듯한 측은함의 눈빛. 내가 이룬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눈빛. 엄밀히 말하면, 내가 남편을 만난 해가 최악의 해는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그 전부터도 나는 최악의 해를 거쳐오고 있었으니까. 시도하는 일마다 실패로 돌아가고,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것 같을 때.


코로나가 터지고 재택근무가 대세가 되며 커리어에 슬럼프가 왔다. 부서 이동을   얼마 되지 않을 때라 부러 출근을 도맡아 했다. 문제는 일이 아니었다. 재택근무 하는 사람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일이 지쳤다. 재택근무 pc 꺼졌다며 다시  주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모르는 우편물이 오면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 알아보는  한참이 걸렸고, 수시로 사무실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대면 업무를 하느라 일의 흐름이 자꾸 끊겼다.   사무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대체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하는 회의감이 몰려왔다.


회사 일이라는 것이 본래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심부름만 하려고 하는 일도 아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유학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도피성 유학이었다. '무슨 공부를 하겠다'나 '무엇이 되겠다'가 아닌 '여기를 탈출하겠다'가 목표인. 그러나 장기화된 코로나로 시험 응시 자체가 어려워지고 유학생에 대한 문은 더욱 좁아졌다. 경기는 잔뜩 불황인데 당장 그만두고 유학을 간다고 하면 기회비용이 너무 커지는 것이 아닌가도 걱정이 되었다. 도피성 유학은 현실의 계산기 앞에서는 간절함을 잃는다. 성과 없는 노력 앞에서는 자존감도 잃게 된다.


그 와중에 간혹 기회가 생기는 소개팅이나 선은 번번이 실망스러웠다. 나이가 차 만나는 사람들은 상호간에 적극성이 없다. 연애란 어느 정도의 무모함이 있어야 하는데 세월이 우리에게 신중함을 가르치는 까닭이다. 이룬 것이 많으면 가진 것을 잃기 싫어 상대가 눈에 차지 않고, 이룬 것이 없으면 절박해져서 상대의 눈에 차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이 많으면 상대를 과소평가하고, 하고 싶은 것이 없으면 상대를 과대평가한다. 나이가 들수록 그 간극은 분명해지고 사리분별은 냉철해져 연애의 시작 자체가 어려워진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할 사람을 만나면 한눈에 알아보거나 귓가에 종이 울린다거나 머리에 후광이 비친다거나 등등 한다지만,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에 나는 아무런 기대감이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 지금, 여기'에 있는 것보다는 '나 혼자, 언젠가, 해외'에 있는 것이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남편에게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저는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나중에 남편은 진심으로 어이없었다고 했다. 소개팅을 하려고 나온 사람이 유학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이건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을 돌려 하는 건가 싶었다는 것이다.


고난의 시기가 남편을 만나며 갑자기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듯 급변한 것은 아니었다. 남편이 내 인생의 구세주도 아니었다. 다만 그 긴 터널을 뚫고 나가기 위해 몸부림치던, 심해에서 수면 밖으로 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던 오랜 노력의 끝무렵에 남편을 만난 것이리라. 그러나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고난의 시기가 끝나가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은 나의 최악의 시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전령사와도 같았다. 단숨에 이 사람이다, 하는 확신이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만날 수록 이 사람과는 함께하는 삶이 그려졌다. 왠지는 모르지만 남편을 생각하며, 남편과 함께 하는 삶을 생각하며, 나는 자주 웃었다.


이제 결혼 6개월차를 맞은 우리는 가끔 싸우기도 하고, 투닥대기도 하고, 단점을 지적하기도 하고, 단점을 인정하기도 한다. 토라지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표정이 굳은 채 언쟁을 하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우는 것은 주로 내 쪽이다). 그러다가 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미안하다고 하고, 사랑한다고 하고, 꼭 안아주고,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걷는다. 마음고생을 하기도 하고 물가나 집값이나 하는 것들에 속이 타들어가기도 하지만, 적어도 결혼해서 인생이 더 나빠졌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남편도 그러기를 바란다. 우리가 함께 이뤄나갈 앞날이 더 멋질 것이라는 막연한 긍정, 그것이 당신과 함께이기 때문이라는 소박한 확신.


언젠가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말하게 될 지도 모른다. 내 생애 최악의 해라고 생각했던 그 해가 사실은 내 생애 최고의 해였다고. 당신을 만났다는 이유 하나로 그 해는 생애 최고의 해가 될 가치가 충분하다고. 우리의 삶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 언제쯤 결론을 내릴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만약 당신을 만난 해가 내 생애 최고의 해였다는 판단을 내린다면 그 결과는 우리 둘 다에게 동일했으면 좋겠다. 시기는 조금 늦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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