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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Feb 14. 2023

내 뒤에 남편있다

있기만 할 뿐이지만…

회사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다. 남편에게 카톡으로 길게 하소연을 했다. 이제 회사를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고. 이 일은 도저히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남편은 좀처럼 전화라는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연애할 적에는 종종 오해를 하기도 했었다. 대체 왜 이 사람은 전화를 안하는 거지. 시작하는 연인들은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남편은 해외 출장갔다가 올 때라던가, 회식에 갔는데 늦어질 때라던가 할 때만 전화를 했다. 그러니까, 정말 자신의 안위를 증명해야 하는 때만 전화를 한 것이다.


그런 남편이 저녁에 전화를 했다. 남편이 전화를 했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첫째, 지금은 비상상황이다. 둘째, 부인이 몹시 걱정된다. 지방에서 달려올 수 없으니 전화를 먼저 한 것이다.


“회사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절대 축 처져있으면 안돼. 조금 힘들다고 처지는 사람한테 무슨 큰 일을 맡기겠어. 더 씩씩하게 행동해. 자기의 롤모델이 있지? 없으면 가상의 롤모델이라도 만들어 봐. 그 사람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행동했겠어. 자기도 그렇게 해. 남편이 뒤에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남편이 뒤에 있어도 사실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 돈도 빽도 없는 우리 둘이 있는다고 뭐 그리 크게 달라지나. 하지만 내 마음은 달라진다. 그래, 남편이 있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있지. 비록 작은 일에서는 주로 남의 편이지만 끝까지 내 곁을 지켜줄 사람이 있다.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나 역시 그럴 것이다.


한술 더 떠서 남편은 힘든 일이 있을 때 엄마아빠에게 말하는 부인을 나무란다. 그렇게 좋은 분들이신데 충격을 드리면 안된단다. 연로하신 부모님께 걱정 끼쳐드리지 말고 자기한테 얘기하란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이겨내지 못할 게 없다고 남편은 말한다. 갑자기 우리는 어벤져스 커플로 둔갑한다.


남편이 뒤에 있다. 물론 어디 가서 “이봐요, 제 뒤에 남편 있어요”라고 해 봤자 타격감 제로인 남편이지만, 남편이 있다. 어느 날 남편에게 나도 “남편 뒤에 부인 있다!”고 말해주기 위해서는 힘을 내야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있기만 한 것도 꽤나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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