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힘들고 외롭다.
그래서 우리는 내 어려움만 감당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고통도 함께 짊어지며 가는 것이다.
너는 혼자 힘든 일을 이겨냈다고 생각하지만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기도와 노력이 함께 했기에 그 터널을 지날 수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잘 된 것은 모두의 기도 덕분이며 잘 못 된 것은 내 탓이라고. 딸은 엄마가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도와준 사람들은 정작 내가 힘들 때는 모두 연락이 뜸해지며 외면하던 걸?
조금 괜찮게 사는 것 같아 보이니 갑자기 앞다투어 연락하던 걸?
연락해서는 또 도움을 청하고 앓는 소리를 하던 걸?
엄마 때문에 나는 맨날 손해만 봐.
엄마 혼자 힘들게 살면 될 걸 왜 나까지, 자식까지 힘들게 만들어.
엄마에게 화풀이를 할 때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은 엄마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남의 공도 가로채서 내 것처럼 포장하고, 내 실책은 최대한 남에게 떠넘길 줄 알아야 한다. 진심어린 조언보다는 입에발린 아부를 하고, 아랫사람은 쥐어짜고 윗사람에게는 엎드려야 한다. 효과적인 친절과 기회주의적인 선행을 베풀고, 적당한 이기주의와 선택적 이타주의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권모술수와 약육강식이 판치는 사회에서 원칙대로 정석대로 하려 해서는 뒤처질 뿐이다. 조직에 헌신하고 남의 일도 내 일처럼 생각하다가는 일찍 몸져 누울 뿐이다. 내 앞가림 하나 하기 힘든데 남의 고통까지 부러 보듬어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얼마 전 회사에서 다른 부서로 이동하기 위해 공모 절차를 밟은 적이 있다. 면접 대상자로 선정되어 지원서를 제출한 부서의 부장님과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이전부터 친분이 있는 부장님이었지만 지원했다는 사실을 사전에 밝히지는 않았다. 면접 대상자는 인사부에서 먼저 심사하여 해당 부서로 통보한다. 만약 1차 관문을 통과하여 면접을 보게 된다면 자연히 아실 것이고, 면접을 보지 않게 되면 굳이 알릴 필요도 없는 일이 될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미리 알려 공정성에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부장님은 놀라시며 왜 지원했다고 미리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물으셨다. 그런 당연한 걸 묻다니 의아했다. 면접을 보게 될 지 여부조차 알 수 없는데 구태여 지원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다. 면접 대상자가 되었다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작은 절차지만, 비공식적인 경로로 청탁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비도덕적인 일로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부장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씀하셨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도 어떻게든 연줄을 동원해 연락하는 통에 수십 통의 전화를 받으셨다고.
면접을 보고 나오며 실소가 터졌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름의 잣대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사는 동안 남들은 다 트랙을 벗어나 지름길로 달리고 있었다. '남들 다 해도 너는 그래서는 안 되는' 방법으로 살다 보니 어느 새 뒤로 밀려나 있는 기분도 든다. 잘 하는 것인지 어리석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미련한 방식이라 한들 이제 바꾸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30년을 넘게 고수해 온 가치관과 삶의 관성은 쉽사리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에게 바보같다고 타박하던 딸은 더한 바보로 자랐는지도 모를 일이다. 딸은 앞으로도 똑똑해질 수 없을 것이다. 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바보다.
엄마같은 바보가 되고 싶다.